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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쿨대디

쿨대디 (1)

by romainefabula 2019. 5. 16.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선우가 등교하기 위해 문을 나서기 전 최소한의 인사를 남기고 빠져 나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쉽게 보내 줄 수 없다는 듯 선우의 뒤통수에 잔소리를 날리기 시작했다.
"준비물은 다 챙겼니? 어제 했던 숙제 가방에 잘 넣었어? 신발주머니는 챙겼니? 길 건널 때 차 조심하고. 대답 안 하니?"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나가려고 하다가 엄마가 쫓아 나와 한 번 더 잔소리를 할까 봐 결국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챙겼어요."하고 대답하며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려서 밀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 또다른 소리가 들려 왔다.
"잠깐 아들. 같이 나가자."
선우는 나가려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기다렸다. 만나기만 하면 잔소리를 쏟아내는 엄마에 비해 아빠는 그나마 잔소리도 잘 안 하고 가끔씩은 엄마의 잔소리에 방패막이 되어 주기도 해서 같이 나가도 크게 부담스러운 존재는 아니었다. 어쩌면 아주 약간은 유익한 존재일 수도 있다. 가끔씩 돈이 필요할 때 마치 그때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엄마 몰래 슬쩍 용돈을 찔러 주기 때문이다.
선우가 자세히 물어 본 적은 없지만 아빠는 좀 특이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른 아빠들이 9시 출근시간을 맞추기 위해 8시 혹은 7시 전부터 일어나서 급하게 준비하고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이용해 나가는데, 선우 아빠는 8시 넘어서 일어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롭게 씻고 다니는 중학교가 코앞에 있는 선우와 함께 9시가 다 되어 출근을 한다. 엄마에게 언뜻 듣기로는 아빠는 직장을 다니면서 스마트폰 앱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것이 인기가 많아져서 어떤 회사에 비싼 가격에 팔았고, 그후로 회사를 그만 두고 혼자 집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구해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가 매일 정시에 깔끔한 비즈니스 캐주얼을 차려 입고 정시에 출퇴근을 하지만 그 사무실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엄마도 잘 모른다고 했다. 아빠가 매월 조금 많은 편의 생활비를 꼬박꼬박 입금해 주고 엄마가 생활비와 자신만의 취미생활까지 즐기는 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더 자세한 걸 알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엄마는 그 이야기의 끝에도 어김없이 잔소리를 붙이긴 했다.
"아빠가 돈을 벌어서 좀 여유롭게 살고 있긴 해도 네가 평생 놀고 먹을 만큼 번 건 아니야.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 네가 알아서 벌어 먹고 살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알았지?"
선우가 느끼기에도 아빠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는 거리에 흔하게 돌아 다니는 벤츠 E클래스를 타고 다녔고, 한 번 아빠를 따라 가서 봤던 사무실도 15평대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오피스텔 정도였다. 아빠 성격답게 내부에 가구나 물건은 많지 않았고 책상 두 개와  커피를 만들기 위한 커피머신과 드립 도구들 정도가 전부였다.
선우와 아빠가 현관을 나서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필 엘리베이터는 20층까지 올라갔고 17층, 12층, 10층 그렇게 여러 번 멈췄다가 내려 오고 있었다. 선우가 있는 7층까지 내려 오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둘은 아무말 없이 엘리베이터의 현재층 표시만 멀뚱멀뚱 바라 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10층에서 또 멈춰 서자 기다리는데 약간 짜증이 난 선우가 한숨을 쉬었다. 이때 아빠가 불쑥 선우에게 말을 했다.
"아들 용돈 필요해?"
그렇지 않아도 다음주에 여자친구 생일이라서 선물 사 줄 돈이 필요했는데, 게임 아이템 뽑는 데 용돈을 써 버려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중이었는데 아빠의 질문에 내심 희망이 생기는 걸 느꼈다. 하지만, 좋아하는 내색을 하진 않고 그냥 무심한 척 "네."하고 대답했다. 이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둘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선우와 아빠가 각각 등교와 출근을 위한 갈림길 쯤에서 아빠가 선우를 불렀고 선우가 멈춰 서자 아빠는 지갑에서 5만원권 2장을 꺼내서 선우에게 건넸다. 선우는 마음 속으론 고맙지만 표시나지 않게 하지만 무례해 보이진 않게 슬쩍 팔을 뻗어 두 손을 모아 아빠가 주는 돈을 받고 말 없이 돌아서 학교로 향했다. 아빠는 선우의 등에 대고 "잘 다녀 와."하고 외치고 사무실로 향했다.

아빠와 헤어져 50미터 정도 가자 선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이어폰을 꽂은 후 잠금을 풀고 쿨대디 앱을 실행했다. 앱이 켜지자 이어폰에서 음성이 나왔다.
"어, 아들"
음성을 듣자 선우가 이어폰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했다.
"아빠, 여자친구 생일선물 뭘 하면 좋을까?"
"저번 여자친구 그대로인 거지?"
"당연하지." 선우는 여자친구 얘길 물어 볼 때마다 앱이 으레 묻는 질문이지만 처음 사귄 여자친구이고 아직까지 헤어질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을 정도로 사이가 좋은 여자친구에 대해 이렇게 묻는 게 짜증이 나긴 했다. 그래도 여자친구의 성격이나 취향 등에 관한 정보가 자동저장되어 있어 매번 설명하지 않아도 거기에 맞춰 대답해 주는 건 만족스러웠다.
"속옷 어때?" 앱이 대답했다.
선우는 실망한 표정으로 스마트폰 화면에서 '아빠 왜 그래' 버튼을 짜증스럽게 눌렀다. 그러자, 앱에서 바로 응답이 왔다.
"아 그렇지? 아빠가 너무 갔지? 음, 그럼 립스틱은 어때?"
선우는 뭔가 떠올랐는지 반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립스틱? 저번에 립스틱 사고 싶다고 했던 것 같아." 
"그래? 다행이네." 앱이 대답했다.
"그런데, 어떤 립스틱을 사 줘야 돼?"
"돈 얼마 있어?" 앱이 물었다.
"아빠한테 10만원 받았어."
"입생로랑 루쥬 볼륍떼 샤인이 좋겠는데. 4만원대니까 이거 사 주고 둘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면 딱 되겠네."
"아빠, 근데 색깔은 어떤 게 좋을까?"
"사서 주려면 매장에서 여자친구 설명하고 인기 있는 걸로 사다 주고 마음에 안 들면 바꾸라고 해도 되고, 같이 매장에 가서 직접 고르라고 해서 사 줘도 되고."
선우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아빠 Cool' 버튼을 누르고 앱을 껐다. 그리고, 만족한 표정으로 학교로 향했다.

선우도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 유행하는 쿨대디 앱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이와 성별만 입력해서 중고등학생 나이에 남자면 가입이 되는 앱이라서 개인정보 유출 같은 문제는 없다고 한다. 앱의 설명에는 인공지능으로 남자 중고등학생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쿨한 아빠 같은 앱이라고 나와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앱의 대답은 처음엔 중고등학생 남자들이 올리는 질문에 답변해 주는 게시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 게시판의 운영자가 공개적으로 모집한 남자 중고등학생의 쿨한 아빠들이 한 대답들 중 질문자가 'Cool Answer'라고 선택한 답변들만 모은 빅데이터 중 인공지능이 선택한 답변으로 대답한다고 한다. 쿨대디앱 출시 초기에는 엉뚱한 대답도 자주 하고 고리타분한 대답도 많이 했다. 이런 대답을 걸러내기 위해 쿨대디 앱에는 선우가 눌렀던 '아빠 왜 그래', '아빠 Cool' 버튼 외에 '아빠 뭐라는 거야?'와 '아빠 꼰대' 버튼도 있다. 물론 인공지능이 신은 아니니까 이 버튼들도 가끔 눌리기는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데이터가 점점 쌓여 가고 대답을 선택하는 알고리즘이 고도화되면서 '아빠 뭐라는 거야?'와 '아빠 꼰대' 버튼을 누르는 비율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