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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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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9. 2.


일요일 낮 12시가 다 되어서 눈을 떴다. 전날 케이블 TV에서 미드 연속방송을 하는 바람에 궁금한 마음에 결국은 새벽 5시까지 최종화를 보고 잠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늦게 일어나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으니 자유로워서 좋긴 한데, 허기를 해결해 줄 사람의 부재는 그에 따르는 불편함이다. 바로 깼을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배고픔이 강하게 밀려 왔다. 든든하게 먹을 뭔가가 필요했다.

팔도 짜장면 하나를 꺼냈다. 액상스프의 양이 많고 맛도 진짜 중국음식점 짜장면과 유사한데 짠맛이 좀 강한 게 흠이다. 그래서, 이걸 먹을 때는 항상 양파를 추가했다. 먼저 냄비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바로 양파를 하나 까서 반을 쪼갠 후 빨리 익혀야 하니까 잘게 다졌다. 냄비 옆에 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을 두른 후 다진 양파를 볶는다. 이때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고, 후라이팬에는 액상스프를 넣고 함께 볶는다. 면이 다 삶아질 즈음 면을 꺼내 후라이팬에 넣고 함께 볶아준다. 1분 정도 잘 저어준 후에 그릇에 먹기 시작했다. 달콤한 볶음 간짜장 맛이 정말 예술이다. 허겁지겁 면을 먹은 후에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남은 소스에 비벼서 깨끗하게 비웠다.

든든하게 먹고 나니 삶의 의욕이 마구 생겨났다. 먼저 예약해 놓은 샵에 가서 싸이클 휠셋을 사서 교체해야 한다. 새로운 휠을 제대로 느껴 보기 위해서는 바로 타 봐야 하니까 복장도 모두 제대로 장착하고 싸이클을 타고 출발했다. 딱 붙는 민망한 의상을 입었으니 누가 알아 보지 못 하게 하기 위해 날이 약간 흐린데도 썬글라스를 써 줬다. 샵에 도착해 휠을 장착하고 보니 카본의 느낌이 아주 고급스러웠다. 혹시나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 준비해 간 5만원짜리 현금으로 지불하고 나왔다. 나오고 나서 생각난 건데, 현금이니까 할인을 좀 받을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페달을 밟을 때마다 쭉쭉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전에 쓰던 싸구려 휠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시큐보이스의 전화수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형, 안녕하세요."

"어, 앤더썬아. 주말 잘 쉬고 있나?"

"네. 싸이클 휠 바꾸고 방금 집에 도착했어요. 이거 굉장해요. 다음주 라이딩 때 보여 드릴께요."

"그래? 너 돈 생겼다고 너무 막 쓰고 다니는 거 아니야?"

"그동안 사고 싶었던 것 몇 개만 더 사려구요."

"그래, 누려라. 근데, 일이 하나 들어왔는데 좀 도와주라."

"이번엔 뭔데요?"

"내가 좀 아는 형인데, 형수가 없어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엔 내가 좀 기다리면 올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둘이 사이도 좋았는데 무슨 사고나 당한 게 아닌가 걱정이다."

"그 형님하고 형수님 인적사항 보내 주세요. 오늘 오후에 할 일도 없었는데 잘 됐네요."

"근데 이번에는 돈을 주기가 좀 어려울 거다. 그 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서 말야. 그 대신 내가 술 한 번 거하게 살께. 괜찮지?"

"그럼요. 아는 분인데 도와 드려야죠."

"그래, 고맙다. 인적사항은 텔레그램으로 보낼께."

"네."


잠시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1972년 5월 17일 전상득, 1977년 4월 5일 정미화'

특성상 한번 조사할 때마다 하루가 걸리니까 이번에는 관련된 사람들을 한꺼번에 조회해 보려고 남편까지 요청한 것이다. 그 외에도 추가로 조회해 볼 만한 사람이 없는지 두 사람의 SNS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카카오스토리에 부부와 아이들의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 보였고, 함께 여행 다니면서 찍은 사진도 많이 보였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까페를 뒤지다 보니 정미화가 등산동호회에 가입되어 있었다. 까페 게시판에는 회원들이 산에 올라 함께 찍은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등산 동호회에 불륜이 많다는 얘기가 떠올라 사진에 같이 찍힌 남자들도 찾아서 함께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 외에 다른 곳들도 열심히 찾아 봤지만 더 이상은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로 조회대상자들을 정리하고 경유서버에 정보를 올려 놓았다.


그렇게 2시간 정도 흐르니 저녁 때가 되어 배가 고팠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긴 했지만 인스턴트여서 그런지 집밥 같은 느낌의 밥이 먹고 싶었다. 이럴 때면 항상 들르는 식당이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하시는 백반집인데 반찬도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해 주시던 맛이고, 혼자 가면 계란 후라이도 하나 서비스로 주신다.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집을 나섰다. 식당에 도착하자 손님은 없었고 항상 주방에 계시던 할머니가 홀에 나와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지금 식사 되는 거죠?"

"그럼. 뭐 먹을래?"

"김치찌개 주세요."

"돼지고기도 넣어 줄까?"

"네."

할머니가 주방에 들어가시자 잠시 후에 탁 하고 계란 깨는 소리가 난 후에 폭폭 하면서 계란 후라이 익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를 듣자 입안에 군침이 확 돌았다. 할아버지가 음식을 쟁반에 들고 오셔서 식탁에 올려 놓으셨다. 잘 익은 신김치로 만든 찌개는 시큼하고 칼칼한 맛이 일품이었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야들야들한 돼지고기도 맛있었다. 물론 계란후라이는 두말할 것도 없는 맛이었다. 너무 맛있어 반찬조차 남기기가 미안해 모두 싹싹 긁어 깨끗하게 먹고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하는 인사와 함께 5천원짜리를 내고 나오면서 월요일 출근을 앞둔 일요일 오후의 우울함이 한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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