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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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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9. 10.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들려오는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여보세요. OA팀이죠?"

"네. OA팀입니다."

"제가 실수로 파일을 지웠는데 살려낼 방법이 없을까요? 1시간 후에 사장님 보고가 있는데 그 파일이 꼭 있어야 하거든요."

"휴지통은 확인해 보셨어요?"

"네. 없어요. 뭐에 홀렸는지 왜 파일을 지우고 휴지통 비우기까지 했어요. 제발 좀 도와 주세요."

"자리가 어디세요?"


마침 이혜진씨 근처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전화한 사람 자리로 걸어가면서 그녀의 자리를 힐끗 쳐다 보았는데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보면 눈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파일이 지워진 컴퓨터를 살펴 보면서 지웠던 파일의 위치를 확인하고 휴지통까지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 파일은 남아 있지 않았다. 준비해 간 삭제파일 복구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실행해 보니 지워진 파일이 보였다. 옆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사람이 그것을 보더니 소리쳤다.


"아, 저 파일이예요. 저거 맞아요."

"이거요? 이것만 복구해 드리면 될까요?"

"네. 빨리 해 주세요."

"네. 복구했고 열어서 잘 복구되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기 열었으니까 파일 내용이 완전한지 확인해 주세요."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살펴 보더니,

"네. 모두 무사하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중요한 파일은 꼭 다른 곳에 복사해 놓으세요. 그래야 문제가 생겨서 지워졌을 때에 꺼내 쓸 수 있습니다."

"네. 앞으로는 꼭 그래야겠네요."


그리 어려운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니 보람이 느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나오면서 이혜진씨 자리를 쳐다 보았더니 그녀도 앤더슨을 보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보내니 그녀 또한 수줍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 돌아와 컴퓨터를 보니 사내메신저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하고 얼른 확인해 보니 이혜진씨가 보낸 메시지였다.

'진혁씨 저희 층에 지원 오셨던 거예요?'

'네. 거기서 누가 좀 도와 달라고 해서요.'

'잘 해결하셨어요?'

'네.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서 금방 해결했어요.'

'역시. 전문가시네요.'

'그 정도 가지고 전문가라고 하면, 진짜 전문가들이 화내요.'

'다른 전문가가 있을지 몰라도 제가 보기엔 진혁씨가 전문가예요.'

'그렇게 봐 주시면 고맙구요.'

'이번주말에 시간 어떠세요? 지난주엔 제가 얻어 먹었으니까 이번엔 제가 살께요.'

'일요일은 약속이 있고, 토요일은 괜찮아요.'

'아, 그래요. 토요일 저도 괜찮아요.'

'뭐 사 줄 건데요?'

'나머지는 나중에 카톡으로 알려드릴께요.'

'비싼 건 사지 마세요. 저도 지난주는 특별한 경우였어요.'

'네네. 알겠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있다가 카톡으로 얘기해요.'

'네.'


모처럼 이번 주말은 바쁘게 보낼 것 같다. 그녀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기운이 있는 것 같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했지만 업무시간이라 꼬치꼬치 캐물을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들어와 자리에 앉아 있는데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회가 열리는데 함께 가자고 했다. 전시회를 다녀 본 적은 거의 없지만 그녀와 함께 간다면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아 좋다고 대답했다. 이번 데이트 때는 지난주처럼 무얼 입고 나갈지 고민하기 싫어 미리 옷과 신발을 사 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오후에는 요즘 어떤 옷이 유행하는지 살펴 보면서 자신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찾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퇴근시간이 되자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회사를 나섰다. 집에 가는 길에 서브웨이에 들러 샌드위치를 하나 샀다. 오늘은 무슨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어서 빨리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착해서 옷을 갈아 입고 샌드위치와 차가운 우유를 함께 먹은 후에 컴퓨터를 켰다.

경유서버에 들어가 수집된 정보를 확인해 보니 김숙자씨 가족 중 딸의 명의로 최근에 핸드폰 하나가 개통되었다. 아마도 정미화씨를 위해서 새로 개통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핸드폰의 위치는 김숙자씨 집인 안양시 안양3동 근처와 안양역 근처를 오가고 있었다. 김숙자씨 집 근처에 방을 구한 것으로 보이고 안양역 근처에 일자리를 구해서 거기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 정도면 찾아 볼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찾은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고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블랙라이더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앤더썬. 형수님 찾았나?"

"형. 그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어, 뭔데? 얘기해 봐."

"만약에 그 형수님이 어려운 상황에 있어서 어딘가 피해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도 찾아서 그 형님한테 데려 갈 거예요?"

"형수님한테 문제가 있는 거야? 무슨 문젠데?"

"먼저 대답부터 해 주세요. 그 형님 잘못이 있어도 형님 편을 들 거예요?"

"내가 의리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전에 정의의 사도 아니겠냐. 나는 누가 뭐래도 정의의 편이다. 어서 얘기해 봐라."

"그럼 형만 믿고 얘기할께요. 조사해 보니까 그 형님이 의처증으로 가정폭력이 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는 사람 통해서 숨어서 살고 있더라구요."

"그래? 그 형님 밖에선 무지 순한데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네. 형수님은 어디 사노?"

"저도 그냥 어디쯤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지 확실하진 않아요. 지금 제 생각은 그냥 무사하게 살고 계신지만 확인만 했으면 하는데요. 거기까지만 도와 주시고 그 형님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찾아서 데려 가면 어제 제 추리처럼 진짜 죽일지도 몰라요."

"걱정 마라. 나도 확인만 할 생각이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

"안양역 근처에서 핸드폰 신호가 자주 잡히는 걸 봐선, 안양 1번가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되요. 주변 주소 보내 드릴 테니까 내일 좀 찾아 보세요."

"그래, 고맙다. 앤더썬. 내일 내가 나가서 확인해 보고 알려 줄께."

"네."


통화를 마치고 괜히 얘기한 건 아닐까 하고 후회가 되었다. 자신이 직접 찾아서 확인해 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블랙라이더형이 평소 행동은 껄렁껄렁해도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믿고 싶었다. 그래도 자꾸 생각할수록 불안한 마음이 들어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형, 내일 잘 살고 계시는지 확인만 하셔야 해요. 찾아서 집으로 데려 가면 다음부터 형 일 안 도와 드릴 거예요.'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나? 걱정 마라.'

형의 대답에 걱정스럽던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그 형수님이 잘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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