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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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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12. 14.

앤더슨의 차는 골목을 빠져 나와 큰 도로로 들어섰다. 차를 운전하면서 어디로 가야 따라오는 차를 따돌릴 수 있을지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뒷차는 소나타로 보였는데 이런 도로는 신호도 많고 차도 많아서 빠른 미니의 이점을 살리기엔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행히 신호에는 걸리지 않아 잘 빠져 나가고 있었는데 고속도로 진입 전 마지막 신호에서 횡단보도에 도착할 때쯤 노란색 불이 빨간색으로 바뀌었지만 사람이 아직 건너가지 않아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 나갔다. 뒤따르던 차는 앤더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경적을 계속 울려 사람들이 건너지 못 하도록 하고 횡단보도를 지나갔다.

앤더슨이 고속도로 진입로에 도착했을 때 차들이 몰려 서행하는 중이었다. 재빨리 갓길로 빠져 속도를 내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정체구간을 지나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뒤따르던 차는 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서 갓길로 달려 가는 미니를 보고 갓길로 들어섰으나 길이 좁아 차가 가드레일과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하지만, 차가 긁히는 것 쯤 아무렇지 않은듯 가속페달을 밟았고 가끔씩 차가 가드레일에 긁혀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입로를 지나쳐 앤더슨을 계속 쫓아 갔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정체가 풀리자 미니는 저만치 멀어지기 시작했고 소나타는 가속페달을 밟으면서도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는 미니를 보면서 욕을 내뱉을 수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앤더슨이 전속력으로 달려 휴게소를 두세개 정도 지나치고 난 후엔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 아무돗이나 산길쪽으로 접어든 후에 작은 샛길쪽으로 차가 안 보이게 주차한 후 블랙라이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앤더썬 파일은 잘 받았다. 의뢰인이 아주 좋아하시더라. 근데 무슨 일이고?"
"형, 저 지금 쫓기고 있어요."
"뭐, 쫓긴다고? 누구한테?"
"모르겠어요. 몸이 안 좋아서 조퇴하고 집에 갔는데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이 문을 따고 들어가서 얼른 차 타고 도망 나왔어요. 차로 계속 따라 오는 걸 겨우 따돌리고 전화하는 거예요."
"이 놈들이 냄새를 맡았구나. 너는 일단 숨어 있어야겠다. 내가 주소 하나 찍어 줄 테니까 거기로 와라. 그 주소 도착하면 길이 없을 거야. 근데 자세히 보면 오른쪽으로 풀숲에 가려진 길이 보이는데 거기로 쭉 따라 오면 된다. 그리고, 휴대폰 추적당할 수도 있으니까 전원 끄고 버리고 출발해라."

앤더슨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블랙라이더로부터 받은 주소를 입력하고 휴대폰을 초기화한 후 창을 열어 휴대폰을 버렸다. 아끼는 휴대폰이었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찾으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출발할 때 왼쪽 사이드미러에 아까 자신을 쫓던 검은색 차가 보였다. 감시카메라를 통해 앤더슨의 위치를 추적해 따라온 것이었다. 급하게 가속페달을 밟았지만 정지상태에서는 달려 오는 차를 따돌릴 수가 없었다. 달려 오던 검은색 차는 왼쪽 차선으로 옮긴 후에 앤더슨의 차를 앞지르자 급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어 멈추며 앤더슨의 차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검은색 차는 속도를 이기지 못 하고 미끄러지며 180도 회전을 하고 반대쪽 차선 끝에 걸치면서 멈춰 섰다. 이때 기회를 잡은 앤더슨은 빠르게 가속페달을 밟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달리는 중에 자주 과속이라고 속도를 줄이라는 안내멘트가 나왔지만 추격을 당하는 입장이라 어쩔 수 없다며 매번 미안하다고 대답하면서 계속 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급커브를 한 번 돌자 불과 50미터 정도 앞에 길 양쪽을 가로로 막고 서 있는 검은색 차를 발견했다. 뒤에서도 검은색 차가 따라 오고 있는데 앞길까지 막혀 꼼짝 없이 잡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길을 가로막고 있는 차 옆에 작은 갓길 공간이 보였다. 잡히더라도 한번 시도는 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속페달을 밟아 길끝에 바퀴가 걸칠 정도로 붙어서 달리자 검은색 차 앞부분에 부딪혀 그 차의 범퍼가 떨어져 나갔고 앤더슨은 그곳에서 빠져 나가 2킬로미터 정도 가자 고속도로를 만나 그 차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뒤따르던 차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 중간에 또다른 차가 뒤쫓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속도는 줄일 수 없었다. 고속도로를 30분 정도 달렸을 때 내비게이션이 고속도로 출구로 나가라고 안내했다. 출구로 나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다 보니 점점 깊은 산속길로 접어 들고 있었다. 워낙 산속 깊은 곳이라서 그런지 그 흔한 방범용 CCTV도 없었다. 앤더슨 입장에서는 추적을 당하지 않게 되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후에 한참을 더 가고 나서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이 나왔다. 블랙라이더의 말대로 길이 없었다. 오른쪽을 봐도 풀이 무성해서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차에서 내려 어디에 길이 있는지 살펴 보니 희미하게 길이 보였다. 재빨리 차를 타고 그 길로 올라가니 흙길이 나타났고 쭉 따라가니 평범한 시골집 하나가 나타났다. 거기서 길이 끊겼기 때문에 여기일 것 같긴 하지만 선뜻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일단 차를 세우고 그 집을 밖에서 한참동안 살피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포폰을 하나 마련해 둘 걸 하는 후회도 했다. 그랬으면 이럴 때 고민할 필요 없이 블랙라이더에게 바로 전화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때 그 집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왔다. 앤더슨쪽으로 걸어 오면서 어서 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블랙라이더였다. 누군지 알 수 없어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앤더슨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차를 이동시키니 블랙라이더는 손짓을 해 집 옆의 허름한 창고 같은 곳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문이 열려 있는 창고 안으로 차가 들어가자 블랙라이더가 뒤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차의 시동을 끄고 나오자 블랙라이더는 등을 두드리며 고생이 많았다고 위로해 줬다. 집에서 검은 양복 입은 남자들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시간동안 숨쉴 틈 없이 쫓기느라 차 안에만 앉아 있던 앤더슨은 긴장이 조금 풀리자 소변이 너무나 급했다.

"형, 저 일단 소변 좀 봐야 되겠어요. 급해요. 창고 밖으로 나가면 되죠?"
"가긴 어딜 나가냐. 여기로 가면 되는데."

이 말을 하면서 블랙라이더가 창고 구석에 있는 전등 스위치 쪽으로 다가가자 앤더슨은 '불을 켜고 어디를 간다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위치를 누르자 한쪽 벽이 징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건물 밖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사무실과 방이 갖추어져 있었다. 너무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 입을 못 다물고 보고 있는 앤더슨의 어깨를 툭 치면서 블랙라이더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앤더슨이 따라 들어가자 문을 다시 닫았다.

블랙라이더가 화장실 위치를 알려 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앤더슨은 급하게 뛰어가 시원하게 아주 오랫동안 소변을 보았다. 배설욕구를 해결하고 나자 식욕이 고개를 들었다.

"형, 뭐 먹을 거 없어요?"
"먼길 오느라고 출출하겠구나. 잠깐만 기다려 봐라. 원래는 일 해 주시는 허두순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이번주 휴가라서 영 먹을 게 없다. 즉석식품 밖에 없는데 괜찮지?"
"그럼요. 지금은 뭘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요."

잠시 후 블랙라이더는 컵라면과 즉석밥, 연어 통조림, 김치를 가져 왔다. 앤더슨은 숨도 쉬지 않고 음식들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다 먹고 나서 포만감을 느끼게 되니 산속에 있는 이 신기한 건물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형, 그런데 이 건물은 뭐예요? 어떻게 산속 깊은 곳에 이런 시설이 있는 거예요?"
"니가 배가 엄청 고팠었구나. 이 정도 건물이면 들어오자마자 물어 봤을 텐데, 화장실 갔다 오고 다 먹은 후에 물어 보네."
"헤헤. 본능에 충실한 것 뿐이죠."
"본능? 그럼, 내가 여자였으면 나한테 뽀뽀하려고 막 덤볐겠네."
"거울을 좀 보세요. 그럴 일 절대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어쭈, 내가 이렇게 보여도 나가면 여자들한테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남자들은 몰라도 여자들에게만 보이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네네, 당연히 그러시겠죠."
"그러니까, 알아서 잘 모셔라, 임마."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뭐하는 곳이예요?"
"내가 모시는 분이 만들어 두신 곳이야. 너도 조금 있다가 인사하게 될 거야?"
"그래요? 누구신데요?"
"그놈 성질 참 급하네. 조금만 기다려 봐라."

기다리는 동안 앤더슨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고급스럽게 생긴 소파에 앉아 보기도 하고, 예쁘게 생긴 장식품을 만져 보기도 하고, 특히 여러 대의 컴퓨터와 모니터 6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방에 관심이 꽂혀 의자에 앉아서 기계식 키보드를 눌러 보기도 했다. 그때 블랙라이더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방 밖으로 급하게 걸어 나갔다. 밖에는 트위드 정장 차림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머리가 반 정도 하얗게 센 대학교수 느낌의 신사가 앤더슨을 보자 반갑게 환한 미소를 띠며 그에게로 걸어 왔다.

"반가워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진혁씨라고 해야 하나, 앤더슨이라고 해야 하나?"
"앤더슨이라고 불러 주시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앤더슨.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저쪽이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여서 이렇게 우리가 만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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