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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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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12. 31.

앤더슨을 놓쳤다는 소식을 들은 김비서관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컴퓨터쟁이 회사원 하나를 못 잡았다고? 너희들 밥 먹고 맨날 하는 짓이 그건데,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죄송합니다. 저희 차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 차 핑계야? 전국에 CCTV 쫙 깔려 있는데 그건 뒀다 뭐 하게?"
"그놈이 CCTV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버려서..."
"마지막으로 CCTV에 잡힌 곳이 어딘데? 그 주위 싹 뒤져. 그리고, 차량번호 알잖아. 주변에 버려진 차나 혹시 또 움직일지 모르니까 CCTV 계속 감시하고 있어."

이때 김비서관의 전화에서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놀란 눈으로 방 밖으로 나가서 복도 구석에서 전화를 받았다. 김비서관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고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었고 욕도 자주 들렸다. 통화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욕을 듣는 시간이 지나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김비서관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그놈 빨리 잡아서 막지 못 하면 너희나 나나 다 끝장이야. 목숨 걸고 찾아내야 돼. 알았어?"


앤더슨이 잠에서 깨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9시가 넘어 있었다. 처음 온 곳에서 이렇게 늦게까지 자고 일어났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웠다. 일단 밖에 나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가득했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는데 이 냄새를 맡자 잠이 확 깨면서 허리가 몰려 왔다. 코너를 돌아 주방쪽으로 가자 식사를 마친 이교수와 블랙라이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옆에는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근처 동네에서 바로 온 듯한 느낌의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가 먼저 앤더슨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저 애가 앤더슨이야?"
"모두 안녕히 주무셨어요? 제가 너무 늦게 일어났네요."

이교수와 블랙라이더는 하던 대화를 멈추고 앤더슨을 돌아 보았고 앤더슨을 아주머니에게 인사시켰다.

"앤더썬, 이쪽이 어제까지 휴가 가셨던 허두순 아주머니야. 인사해라."
"안녕하세요."하며 앤더슨이 꾸벅 인사했다.

"어 그래, 총각 잘 생겼네. 어서 이리 와서 아침 먹어."
"된장찌개 냄새 정말 좋네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앤더슨은 먼저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먹어 보았다. 입안에 구수한 맛이 쫙 퍼지자 '카'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얼른 찌개를 떠서 하얀 쌀밥 위에 올려서 떠먹기 시작했고,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모두 비웠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얘기했다.

"밥 참 복스럽게 먹네. 한 공기 더 줄까?"
"네. 제가 원래 아침을 잘 안 먹는데 이 된장찌개는 정말 맛있어서 더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요리 정말 잘 하시네요."
"내가 요리만 잘 하는 줄 알아? 이 미모도 대단하지."
"아, 네 그러시네요."
"젊을 때는 나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줄을 섰지. 요즘도 밖에 다니면 데이트 신청하는 사람 많아."

앤더슨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블랙라이더에게 말했다.

"혹시 형 어머니세요?"

그러자 아주머니가 버럭 화를 내며 대답했다.

"저런 애가 내 아들이라고? 어떻게 나한테서 저렇게 못 생긴 아들이 나올 수가 있겠어? 어림도 없지."
"아니, 제 외모가 어때서요? 저도 밖에 나가면 저 좋다는 여자 엄청 많아요."
"그 여자들 취향이 특이한 거겠지. 나 젊을 때는 너 같은 남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
"저도 마찬가지네요."

둘은 예전부터 자주 그랬었던 듯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았고 주방은 밝은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러는동안 앤더슨은 또 밥 한 공기를 금새 해치웠다. 혼자 살면서 집에 있을 때면 언제나 혼자서 밥을 먹었는데 즐거운 분위기에서 즐겁게 식사한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고 느꼈다. 앤더슨이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씻고 나오는데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외부 감시용 모니터 앞으로 모여 섰다. 모니터에는 앤더슨이 차를 타고 왔던, 길이 끊겨서 더 이상 갈 수가 없는 곳에 차 한 대가 들어와 있었다. 어제 앤더슨을 쫓았던 차와 비슷한 검은색 소나타였다. 그걸 보자 앤더슨은 온몸이 얼어 붙은 것 같았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들어온 걸까, 혹시 위성으로 추적이라도 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 차는 1분 정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더 이상 갈 곳을 찾을 수가 없었는지 차를 돌려 나갔다. 이 모습을 보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잔뜩 얼어 있는 분위기를 깨듯 블랙라이더가 말문을 열었다.

"저 놈들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 온 거죠?"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아직 정리가 안 되어 한참동안 말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이교수가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었는지 안심시키려고 말을 했다.

"저기까지는 길이 있으니까 여기저기 다니다가 들어왔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까지 들어올 일을 없을 거예요."

그러자, 블랙라이더도 거들었다.

"그러게요. 여기는 아는 사람들이나 찾아 오지. 길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고 오겠어요. 오더라도 제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예요.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하긴 우리 화순이가 있으니까 걱정할 게 없겠네요. 자, 이제 안심하고 오늘부터 무슨 일을 할지 얘기해 봅시다."

다들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지만,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면서 회의실로 이동했다. 블랙라이더와 앤더슨이 자리에 앉자 이교수가 유리로 만든 벽에 마커로 글씨를 쓰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밖에서 다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 놀라서 모니터 앞으로 달려 갔다. 모니터에는 아까 왔다가 돌아갔던 차가 다시 왔고, 거기서 한참을 멈춰 있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천천히 이들이 있는 집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사색이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멍하게 서 있는데 허두순 아주머니가 쪄 뒀던 감자 한 바구니를 들고 바깥 집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설 때도 온 것 같구만. 걱정 말고 조금만 기다려."

잠시 후 집쪽으로 올라온 차는 마당에 차를 세우고, 한 남자가 내려서 집에 대고 누구 안 계시냐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아주머니가 방에서 문을 빼꼼히 열면서 밖을 보면서 대답했다.

"누구요?"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여기 사세요?"
"그런데요, 왜요?"
"아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혹시 파랗고 조그만 차 타고 다니는데 혹시 이 사진에 있는 사람 본 적 있으세요?"
"글쎄, 우리 영감이 파란 경운기를 타고 다니기는 하는데 이렇게 젊고 잘 생기지는 않았는데."
"아, 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침은 먹었어요? 시장하면 이 감자라도 먹어요."
"아,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중이라서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요, 조심해서 가요."

차가 완전히 간 후에 아주머니가 다시 안쪽 집으로 돌아왔다. 뭐라고 얘기해서 보냈는지 잔뜩 궁금했던 블랙라이더가 보자마자 질문을 했다.

"아주머니 쟤들이 뭐라고 했어요?"
"앤더슨 찾더라."
"그래서, 뭐라고 해서 보내셨어요?"
"뭐라긴, 못 봤다고 했지."
"하나도 안 떨리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세요? 쟤들 국정원이잖아요."
"국정원이 뭐 대수냐? 국정원 할애비가 와 봐라 내가 무서워하나."

질문과 응답시간이 끝나고 3명은 다시 회의실로 돌아갔고, 아주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쉬러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는 벽을 기대고 털썩 바닥에 주저 앉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양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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