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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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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11. 5.

앤더슨은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잡지를 보며 최신 하드웨어 동향을 살펴 보며 요즘은 어떤 CPU와 RAM, SSD가 나왔는지 살펴 보고 있었다. 직원들이 물어 보는 것은 이렇게 복잡한 것과는 관계 없이 아주 단순한 것들 뿐이지만, 가끔씩 컴퓨터에 관해서 나름 안다고 자부하는 젋은 직원들이 자신에게 도발하듯 질문을 하거나 아는 척을 하는데 이럴 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 하면 아는 것도 없이 자리만 지키며 돈을 받아 간다고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라는 것이 몇 개월이나 몇 년에 한번씩 새롭게 등장하기는 해도 매달 바뀌진 않는다. 잡지를 매달 구독하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기술이 보이지는 않는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잡지를 본다는 것은 미용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거나 염색이나 파마를 하는 동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패션잡지나 남성잡지를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일이었다.
잡지를 거의 끝까지 봐서 다음은 어떻게 시간을 때워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쯤 블랙라이더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른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 밖 복도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앤더썬, 요즘 심심했지?"
"네. 하도 심심해서 저 혼자서 일 하나 만들어서 하기도 했죠."
"그래? 무슨 일을 했는데?"
"이거 어디다가 얘기하시면 안 돼요. 며칠 전에 하루에 연예인 스캔들 기사 수십개 났던 것 아시죠? 그거 제가 한 거예요."
"그래? 누가 이렇게 기특한 짓을 했나 했더니 너였구나."
"그냥 세상 돌아가는 게 답답해서요."
"그래도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우리가 움직이는 걸 누군가 알아채서 추적하기 시작하면 피곤해진다."
"네. 저도 당분간 조용히 지내려구요."
"근데, 잠깐 할 일이 생겼다. 이거 하면 한동안 지루하진 않을 거다."
"뭔데요?"
"페이스북에 자기 일상을 자주 올리는 사람이 의뢰인인데, 이 사람 페이스북 친구한테서 메시지가 왔는데 어떤 페이지에 가 보니 이 사람이 올렸던 사진이 그대로 있는데 다른 내용으로 글이 올라 온다는 거야. 그래서, 혹시 계정 2개를 갖고 운영하냐고 물어 봤단다. 근데 이 여자는 그 다른 걸 올리지 않았던 거지. 그 페이지 들어가서 보니까 소름이 쫙 끼쳤겠지. 다른 사람이 자기 사진 갖고 자신이 뭘 하는 것처럼 글을 계속 올리고 있었으니. 그래서, 그 계정 주인한테 메시지를 보내서 이런 짓 하지 말고 지워 달라고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고, 아직까지도 이 사람이 글 올리는 것 갖고 글을 계속 올리고 있는 거야. 경찰에 신고하려고 알아 봤는데 이런 건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야. 너한테 딱 맞는 일인 것 같아서 전화했지."
"정말 황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겠네요."
"미친년이지. 제정신이면 그런 짓을 하겠냐?"
"그러게요. 일반적인 정신으론 이해가 잘 안 되네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짓을 하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그 페이스북 계정 2개 모두 저한테 좀 알려 주세요."
"그래. 내가 메시지로 보내 줄께."

퇴근 후 집에 도착한 앤더슨은 받은 페이스북 계정 중에 오리지널 페이지에 먼저 접속했다. 꽤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돈이 많은 사람인지 비싸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녔고,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고, 시간도 많은지 수시로 피트니스센터에 가거나 필라테스를 하는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가끔 거울 앞에서 얼굴을 포함한 전신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는데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잘 관리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짝퉁 페이지에 접속했다. 미리 얘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혹시 굉장히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올린 것을 착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실제로 본 페이지는 경악 그 자체였다. 오리지널 페이지에 올려진 사진을 갖고 이것저것 짜깁기를 해서 마치 자신이 무슨 일을 한 것처럼 글을 올리고 있었다. 이 글이 가짜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은 사진을 보며 재미있었겠다거나 맛있었겠다는 등의 댓글을 남기며 좋아요를 눌러 주고 있었다. 한참 짝퉁 페이지의 글을 보다 보니 어떤 것이 오리지널인지 앤더슨도 혼동이 오기 시작했다. 혹시 이 페이지가 오리지널이고 의뢰한 사람이 짝퉁인데 블랙라이더가 속아서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뭔가 하기 전에 그것부터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블랙라이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앤더썬. 뭐 좀 찾았냐?"
"아뇨, 아직이요.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다가 궁금한 게 생겨서요."
"그래? 뭔데?"
"이 사건 의뢰한 게 진짜 오리지널 페이지 주인이 맞는 거예요? 짝퉁 페이지도 워낙 진짜 같아서요."
"그럼, 그 여자가 아빠하고 직접 우리 사무실로 찾아 왔었지. 얼굴도 엄청 예쁘고 몸매도 끝내 주더라. 아빠하고 비서까지 온 걸 보니 꽤 사는 집 같은데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찾아 왔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 사무실 컴퓨터에서 로그인해서 그 페이지 주인이라는 걸 확인시켜 달라고 했었지. 내가 그런 것도 확인 안 하고 일을 맡았겠냐?"
"형이 당연히 확인을 했으리라고 생각은 들지만, 이 짝퉁 페이지 정말 SA급이라 저도 분간할 수가 없네요."
"하긴 나도 헷갈리긴 하더라."
"아무튼 궁금한 건 모두 알았으니 이제 알아 봐야겠네요."
"그래, 예뻐서 그런지 왠지 더 열심히 도와 주고 싶더라."
"저두요."
"야, 너는 여자친구도 있는 놈이 어디다 신경을 쓰고 그러냐. 그냥 내가 하라는 일이나 잘 해라."
"제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고 싶다는 건데 뭘 그걸 갖고 그러세요."
"자고로 일을 할 땐 의뢰인이 누구든 성심성의껏 일 한다는 게 내 좌우명이다. 너도 이런 나를 본받았으면 좋겠다."
"네, 어련하시겠어요."
"어허, 이 놈이. 뭐 좀 찾으면 연락해라."
"넵!"

먼저 짝퉁 페이지에 들어가 이 사람의 개인정보가 있는지 둘러 보았다. 다행히도 프로필에 이메일 주소가 공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짝퉁 페이지에 들어가서 사진을 훔쳐다가 쓰면서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취향이 반영되어, 자신이 더 따라하고 싶은 내용을 많이 올렸으리라고 예상했다. 훑어 보면서 아무리 따라 하고 싶어도 새로 태어나 돈 많고 외모 뛰어난 부모를 만나기 전에는 어쩔 수 없는 돈과 외모에 관한 내용은 제외했다. 그러고 보니 오리지널 페이지에 있는 수많은 맛집에 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해외여행에 관한 내용은 보다 상세히 정리해 원본보다 더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 관한 내용은 오리지널 페이지에 있지 않은 사진까지 찾아다 넣어 가며 체계적으로 작성해 여행갈 때 출력해서 가져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취향이 파악했으니 트로이목마를 설치할 차례가 되었다. 짝퉁 페이스북 계정의 프로필에 나와 있는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메일 제목은 이렇게 정했다.

'프랑스 파리 왕복항공권 땡처리 30만원'

가격이 터무니 없긴 하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진짜든 가짜든 눌러 보기라도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짝퉁 페이스북 계정 주인이 메일을 열어 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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