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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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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10. 22.

월요일에 앤더슨이 출근해서 다음뉴스를 보니 백명인 전 대통령의 수천억원 횡령 소식이 뉴스 제일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해 먹은 건지 파도 파도 끝이 없고, 해도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횡령의 명인이라서 이름이 백명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나랏돈을 뼛속까지 빼 먹고도 아직까지 감옥에 가 있지 않다는 것이 분할 뿐이었다. 스크롤을 내려서 댓글을 봐도 대부분이 욕을 했고, 추천수도 엄청나게 높았다.

오전 11시쯤이 되어 다시 다음뉴스에 들어가자 톱스타 조현식과 문지인의 스캔들 뉴스가 맨위에 올라가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 또한 조현식과 문지인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검색어 순위를 모두 살펴 보았는데 백 전 대통령의 이름은 이미 20위 밖으로 밀려난 뒤였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뭔가 정치적으로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될 만한 사건이 나오면 얼마 안 가서, 심지어는 그 뉴스가 나오기 약간 전에도 연예인 스캔들이나 도박 등의 뉴스로 국민들의 눈과 귀와 뇌에 마취주사를 놓은 것이다. 이번에도 이전과 똑같은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뉴스를 보는 국민들도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당한다는 것이다. 전 대통령의 횡령 뉴스로 미친 듯이 짖어대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톱스타의 스캔들이 발표되자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스캔들에 매달려 버리고 말았다.

앤더슨은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몇 년째 계속 해 오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들어와선 컴퓨터 앞에 앉아 그동안 전 대통령의 비리나 횡령 등의 뉴스가 있을 때쯤 연예인 스캔들 기사를 낸 기자들을 모두 찾아내서 정리해 놓았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앤더슨은 회사에서 찾은 기자들에게 트로이목마 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그 기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기사제보 내용으로 위장했다. 내일 저녁쯤이면 이 스캔들 뉴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꼬리 정도는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메일을 보내고 나서 크게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 순간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 예전에는 사회의 부정한 모습에 그저 욕이나 하고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 추천수를 올리는 것에 그쳤던 자신이 언젠가부터 정의감에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계기가 지난번 온성제약 사건을 맡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위험하긴 하지만 최근 몇 년동안 자신이 이렇게 열정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스스로에게 이 길이 잘못된 길이 아닐 거라고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퇴근한 앤더슨은 가장 먼저 경유서버에 들어가 기자들에게 보냈던 트로이목마가 수집한 정보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기자들이 별 의심없이 메일을 열어 보았던 것 같다. 메일을 열어 보았던 기자들의 메일 계정과 패스워드는 경유서버에 잘 수집되어 있었다. 앤더슨은 수집된 메일 계정과 패스워드를 가지고 메일을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메일을 확인하다 보니 이 기자들이 스캔들 기사를 내기 얼마 전에 그 기사에 대한 내용과 심지어 사진까지도 누군가로부터 받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메일을 보내는 계정이 모두 똑같았다.

이 계정을 가진 사람의 컴퓨터만 뒤질 수 있다면 이 일들의 흐름을 모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컴퓨터에 그의 말 잘 듣는 트로이목마만 심어 놓으면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메일을 보내는 인물에 대한 개인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메일을 보낼 때는 그 사람의 직장정보나 SNS를 통해서 취향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메일을 보냈고, 기자들은 당연히 기사제보로 위장해서 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개인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무슨 메일을 보내야 이 사람이 메일을 열게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어떤 메일 제목이 좋을까? 성별을 알 수 없으니 남자들이 대개 좋아하는 전자제품 한정수량 할인하고, 여자들이 대개 좋아하는 명품백 한정수량 할인을 시차를 두고 보낼까? 하지만, 이건 확률이 그나마 높을 뿐이지 이런 취향이 아닌 사람도 많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사람이 돈이 많은지 적은지도 모르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비싸지 않은 물건의 할인에 열광해서 클릭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저것 여러번 시도하다 보면 뭔가 하나는 이 사람의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메일의 내용보다는 누가 이렇게 시도하는지 흥미가 생겨 메일 발신자를 추적하려고 들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메일만으로 궁금해서 누르지 않고는 배기지 못 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의 메일에 접속해서 자신이 어떤 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온 메일을 열고 싶은지 유심히 메일 리스트를 살펴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홍보성 메일이 도박, 조건만남, 포르노 싸이트에 대한 내용으로 보였다. 이런 메일들은 너무나 많이 오고 예전에 몇 번 내용을 확인해 봐서 별 거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확인조차 하지 않고 지워 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졸업앨범 보다가 생각이 났어. 너도 나 아직 기억할까?'

이런 기가 막힌 제목이 있었다니. 누구나 학교는 다 다녔을 테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중에 어떤 학교인지도 모르고 성별도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이 메일 제목을 보면 자신이 가장 기억하고 싶은 한 이성을 떠올릴 것이다. '혹시 그 애일까?'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여기서 바로 클릭해서 내용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은 열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자려고 이불 덮고 누웠을 때 생각이 계속 날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그 애가 보낸 메일이 아니면 지우면 되지.' 하는 위안을 하며 결국은 열어 볼 것이다. 앤더슨 자신도 이 메일을 보고 있자니 자꾸 초등학교 4학년 때 여자 짝이 생각나 결국은 메일을 열어 보았고 도박 광고 메일임을 확인하고 말았다.

앤더슨은 이 기발한 메일 제목으로 연예인 스캔들 메일을 기자들에게 보내는 계정으로 메일을 보냈다. 이번에는 이 사람의 IT 실력을 판단할 수 없으므로 의외의 사태를 대비해, 트로이목마의 기능도 더 줄여서 원하는 것을 찾아서 경유서버로 보내는 즉시 스스로 복구할 수 없도록 삭제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경유서버에는 연예인 스캔들 관련 자료를 모두 찾으라는 명령을 올려 놓았다.

다음날 회사에서 퇴근한 앤더슨은 이번에도 경유서버에 들어가 혹시 어떤 결과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직 결과가 없었다. 이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을 보냈는데 안 열어 보았다니, 안타까웠다. 아직 누워서 이불을 덮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이 이불 덮고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박차고 일어나 메일을 확인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그 다음날 회사에서 퇴근한 앤더슨은 이번에도 경유서버에 들어가 혹시 어떤 결과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있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이렇게 많은 스캔들을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썼다는 것이다. 내용도 지금까지 보던 스캔들의 패턴과 유사했다. 톱스타의 연애, 연예인 부부의 비밀이혼, 연예인들의 도박, 성매매, 마약 등이었다. 자료를 모두 받아서 하나씩 보다 보니 자신도 그 내용에 빠져 들고 있었다. 일단 이걸 갖고 뭔가 조치를 취하기 전에 자신의 궁금증을 채우는 게 급선무였다. 모두 읽고 나니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 이렇게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연들이 있었다니 새삼 놀라웠다.

이 스캔들 자료들의 주인공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단 이야기는 모두 흥미롭게 읽었고,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가 문제였다. 어제와 오늘 회사에서 있는 시간 내내 궁리했던 방법을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언론사의 연예부 기자들 중에 의문의 계정으로부터 메일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만을 추렸다. 아무래도 그 메일을 받던 기자들은 지시를 받거나 돈을 받고 기사를 냈을 것이므로, 메일을 보내도 기사로 올라올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린 기자 한 사람당 스캔들 기사 하나씩을 보냈다. 바로 올려도 될 만큼 충분한 검증자료와 사진이 포함된 특종을 받고 기사를 싣지 않을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다. 내심 스캔들 당사자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차피 이슈 하나 생길 때마다 언론에 공개되다 보면 언젠가는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앤더슨이 이렇게 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이슈가 생길 때 사용할 수 있는 연예인 스캔들 기사가 하나도 없어서 국민들이 이슈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출근길에 다음뉴스를 보자 톱뉴스의 대부분이 연예인 스캔들 기사였다. 신문이나 TV나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연예인 스캔들을 다루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기사의 댓글을 보면 대부분 그 스캔들에 대한 느낌을 적는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눈에 띄는 댓글도 하나 보였다.

'이번엔 얼마나 큰 걸 덮으려고 그러는 거야? 연예인 스캔들 핵폭탄이 터졌네.'

또 다른 댓글 하나도 눈에 띄었다.

'연예인 스캔들 이제 지겹다. 걔들이 사는 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시끄럽냐?'

연예인 스캔들에 무감각해지는 것. 어쩌면 이런 자세가 앤더슨이 가장 바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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