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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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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9. 18.


라이딩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한 후에 지하철을 타고 뚝섬유원지역으로 이동했다. 역에서 내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회원들 대여섯명이 모여서 이야기중이었다. 그 사이에 블랙라이더형도 앉아 있었다. 앤더슨이 오자 다들 돌아보며 인사했다.


"오 앤더슨, 오랜만이다."

"앤더슨, 빨리빨리 다녀야지. 지각하면 어떡하냐."

"형, 안녕하세요."


그 중에 두 명이 가장 듣고 싶던 반응을 보였다.


"앤더슨, 이거 뭐냐. 이 휠 이거 못 보던 휠인데. 펄크럼 레이싱 제로 카본?"

"오~ 이 카본의 포스. 깨끗한 걸 보니 중고도 아닌 것 같은데. 이 비싼 걸 어떻게 샀냐?"


"헤헤. 형들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잘 따라 가려고 카드 할부로 질렀어요."


돈의 출처를 아는 블랙라이더형은 앤더슨과 눈이 마주치자 겸연쩍은 미소를 보이고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 후에 회원 4명이 더 온 후에 모두 목적지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역시 돈이 힘을 발휘하는지 페달을 밟을 때마다 싸이클은 쭉쭉 미끄러져 나갔다. 팔당에 도착해 초계국수를 먹은 후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때 블랙라이더가 앤더슨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아까는 잘 했다. 나하고 일 하는 건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네. 그럴 것 같아서 다 비밀로 하고 있어요. 휠 살 때도 흔적 안 남게 현금으로 결제했어요."

"이놈, 좀 아네. 그래도 앞으로는 돈 쓸 때도 다른 사람들한테 표시 안 나네 잘 해라."

"큰 돈 들어가는 건 다 샀어요. 앞으로는 표시 안 날 거예요."

"앤더썬아, 일이 하나 들어왔다. 메시지로 보낼까 하다가 오늘 보니까 그냥 직접 얘기하려고 안 했다."

"일이요?"

"걱정마라. 이번엔 지난번 같은 일 아니야. 너도 들으면 흥미가 생길 거야."

"생각 좀 해 보고 결정해도 되요?"

"그래. 일단 있다가 메시지로 내용은 보내 줄 테니까, 보고 결정해라. 고민할 새도 없이 하고 싶을 거야."

"그러니까 자꾸 궁금해지긴 하네요. 그래도 생각은 좀 해 볼께요."

"알았다. 알았다. 이 소심한 놈아."

"소심한 게 아니라 조심성 있는 거예요."

"그래, 아무튼 있다가 보고 결정해라."


앤더슨은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이 일을 별로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떤 일인데 블랙라이더형이 이렇게 자신 있게 흥미 있어 할 거라고 하는지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머리나 식힐 겸 나온 라이딩에서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회원들과 싸이클을 타고 다시 돌아오는 내내 일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과 어떤 일일까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너무 깊이 생각에 빠져서 한 번은 자전거도로 밖으로 벗어나 옆으로 굴러 떨러질 뻔하기도 했다. 뒤따라 오던 제이슨이 휠이 너무 좋아서 속도 제어가 안 되는 거냐고 농담을 건넸다. 이 상태로 계속 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아 제이슨과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달렸다.

뚝섬유원지에 도착해서 헤어지기 전에 블랙라이더가 앤더슨의 어깨를 툭 치면서 너무 고민하지 말고 마음이 가는대로 하라고 했다.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인사를 꾸벅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조커형과 같아서 함께 지하철을 타고 이야기를 하면서 가느라 고민할 시간이 줄어 들었다.

집에 도착해 땀에 전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땀과 함께 고민도 씻겨 나가기를 바랬지만 역시 샤워로는 잘 씻겨지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에 소파에 앉아 아이폰을 집어 들어 홈버튼을 누르자 텔레그램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블랙라이더형이 보낸 것이었다.


'온성제약 진통제 태아기형유발물질 임상시험 결과'


장거리 라이딩을 다녀와 따뜻한 물로 샤워한 상태라서 몸이 나른했었는데 메시지를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지난번에 했던 사람 찾는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것은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사건 아닌가? 온성제약에서 만든 진통제인 필리사이드를 복용한 임산부들 수백명이 기형아를 출산하는 일이 벌어졌다. 더구나 이 회사에서는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임산부도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다고 해서 피해가 더욱 큰 사건이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사람을 찾는 일만 하다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에 엮이는 건 아무래도 겁이 났다. 한편으로는 약의 위험성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 제약사의 태도가 얄미워 자신이 한 번 밝혀 볼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누가 의뢰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블랙라이더형이 그냥 해 달라는 얘기가 없었으니 돈을 준다는 것인데 도대체 누가 이런 일에 돈을 준다는 것인가? 피해자 가족인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무래도 블랙라이더형에게 직접 물어 보는 것이 빠르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시큐보이스로 전화를 걸었다.


"어, 앤더썬. 금방 전화할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형, 이 사건 진짜 캐고 싶은 거예요?"

"나도 궁금하긴 한데, 의뢰인이 좀 알아 봐 달라고 해서. 구미가 확 당기지?"

"저도 궁금하긴 했었는데, 누가 그렇게 알고 싶은 거예요?"

"돈 많고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고 해 두자. 너한테는 피해 안 가게 할 테니까 정보만 잘 가져 와 봐. 위험한 거면 너한테 안 시켰지."

"흠, 그런데 이 결과를 빼낸다고 해도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것도 질문할 줄 알고 있었지. 호기심 많은 분이니까 증거로 못 쓰는 걸 찾아 달라고 하는 거야. 우리의 호기심도 해결하고 돈도 벌고 좋잖아. 이 의뢰인이 돈도 꽤 많으셔서 보수도 두둑할 거야."

"돈의 문제를 떠나서 이건 진짜 해킹이예요."

"벌써 두 번이나 해킹 했잖아."

"그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약간의 정보를 모아서 본 거고, 이번엔 진짜 회사 기밀문서를 빼내는 거니까 그렇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시도해서 너무 어려우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냥 시도만 해 보자."

"제가 마음 먹으면 뭐든 가능한 거긴 한데, 마음에 걸린다는 것 뿐이죠. 알았어요. 해 볼께요."

"그래, 생각 잘 했다. 이럴 때 보면 이놈 성격이 화끈하다니까. 그럼 뭐 좀 나오면 연락해라."

"네."


고민하고 있는 앤더슨에게 어려우면 하지 말라는 말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방법이 잘 통했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블랙라이더의 방법이 이번에도 잘 통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앤더슨은 괜히 자존심 때문에 덥썩 한다고 한 건 아닌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형의 심리전술에 말려든 게 분명해 보였다. 형의 한 마디 말에 자제력을 잃은 게 문제였다. 이런식으로 한참을 고민한 끝에 기왕 하겠다고 한 것 바로 시작했다.


먼저 링크드인으로 가서 온성제약 직원들을 검색해 경력을 하나씩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임상시험 경력을 주로 살폈고 되도록 필리사이드 임상시험을 찾았다. 필리사이드가 문제가 되어서 그런지 이 약에 대한 임상시험 경력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게으른 것인지 한 명의 경력에서 필리사이드 임상시험이 보였다.


김민수 부장. 


이 사람의 SNS를 뒤지기 시작했다. 요즘 이 사람의 관심사는 온통 드론이었다. 각종 드론 사진이 올려져 있고 동호회도 가입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찍은 사진은 보급형 기초 버전을 산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트로이목마 메일의 주제는 정해졌다. SNS에서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기종으로 'DJI 팬텀3 프로페셔널 30대 한정 50% 특별 할인'이란 제목의 메일을 작성하고, 원격경유 메일서버를 통해 보낸사람을 추적할 수 없는 메일을 보냈다. 이제 이 메일을 열면 그 사람의 컴퓨터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트로이목마를 설치되고, 링크를 클릭하면 가짜 홍보메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별일 아닌 듯 욕 한 번 내뱉고 메일을 지우면 앤더슨이 의도한 작업은 모두 완성이다. 가끔 이런 메일을 보낼 때 '제가 돈 많이 벌면 다음에는 진짜 50% 할인가에 살 수 있게 해 줄께요.'라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이번엔 진짜 보수가 크다니 이 사람에겐 꼭 할인가에 사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온성제약 직원을 링크드인에서 찾아 김민수 부장이 필리사이드 임상시험을 한 비슷한 시기에 임상시험 경력이 있는 세 사람들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트로이목마 메일을 보냈다. 온성제약 메일서버에서 걸리는 것에 대비해 모두 다른 메일서버를 통해서 보냈다. 내일쯤이면 이 사람들 중 몇 명이 메일을 열어 트로이목마가 설치될 것이다. 앤더슨은 그때를 위해 미리 경유서버에 트로이목마가 찾아야 할 것들을 올려 놓았다. 사이버흥신소를 시작하면서 가장 궁금하고 흥분되는 일이 시작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침대에 누워서도 한참동안 뒤척이다가 새벽 2시쯤에야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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