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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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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9. 29.

 

월요일 아침부터 앤더슨의 마음은 이미 집에 가 있었다. 어서 빨리 온성제약의 뻔뻔한 얼굴 앞에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들이밀어 고개 숙이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기 의해선 자신이 입력해 놓은 명령의 결과가 꼭 나와야만 했다. 그 정보가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꼭 있었으면 좋게다는 마음은 간절했다.
초조하게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혜진이 생각났다. 주말에 친구들과 여행을 잘 다녀왔는지 궁금했다. 가지 않는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보단 혜진과 얘기하는 것이 자신의 정신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메신저의 대화상대 리스트에서 혜진을 더블클릭했다.

'혜진씨 여행은 즐거웠어요?'

한참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응답이 왔다.

'미안해요. 지금 회의중이라. 있다가 끝나고 얘기해요.'
'네'

'하필 이럴 때 혜진씨마저 바쁘다니. 그럼 나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 건가? 이게 다 온성제약 때문이다. 으이 나쁜 놈들, 나쁜 놈들, 나쁜 놈들.'

기다림에 지쳐 자신이 미쳐 가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흡연자들은 이럴 때 담배를 피우는 건가? 담배는 안 피우지만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간 후에 크게 숨을 들이마셔 폐 안의 초조한 공기를 모두 밀어내고 느긋한 공기를 가득 채웠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주변을 보면서 걷다가 공원이 나오길래 벤치에 앉아 아이폰을 꺼내고 유튜브로 재미있는 영상을 한동안 보았다.
느긋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가 앉자 바로 메신저로 혜진이 메시지가 도착했다.

'방금 회의 끝났어요.'
'여행은 재미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맛집 찾아다니고 실컷 수다 떨다가 왔어요.'
'술도 많이 마셨어요?'
'아니요. 조금 밖에 안 마셨어요.'
'조금이면 소주 1병?'
'어머, 저 그렇게 술 잘 마시지 않아요.'
'음, 그럼 소주 5잔?'
'제 친구 중에 첩자 심어 놨어요? 얘들 조사 좀 해 봐야겠네요.'
'그냥 찍은 건데. 조금이 5잔이면 혜진씨 술이 꽤 센데요.'
'술은 좀 마시는데 잘 안 마셔요. 이번처럼 친구들하고 있을 때만 마셔요.'
'혹시 오늘도 술냄새 나는 거 아니예요?'
'아니예요. 전혀 안 나요.'
'음, 직접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혜진씨 오늘 컴퓨터 문제 없어요? 가서 점검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문제 없어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네요. 누가 나 없는 사이에 업그레이드해 놨나?'
'ㅎㅎ 잘 다녀 온 것 같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요.'
'네~ 진혁씨두요~~~'

즐거운 대화가 끝나고 그 이후의 시간은 비교적 잘 흘러갔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자 얼른 가방을 챙겨 퇴근했다.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경유서버로 들어가 찾은 정보가 있는지 확인했다. 정보가 들어와 있었다.

'필리사이드 임상시험 참여자 명단'

이중에 한명이 기형아를 출산했을 텐데, 누구인지는 찾지 못 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 명단의 여자들 중에서 임상시험 이후 10개월 이내에 출산기록이 있는지 찾아 보면 될 것이다. 여자 임상시험 참여자 명단과 출산 기록을 찾는 명령을 경유서버에 올려 놓았다. 내일이면 건강보험공단에 설치된 트로이목마가 앤더슨이 찾으려는 사람을 알려 줄 것이다. 온성제약이 거짓말로 세상을 현혹하는 모습을 며칠이나 더 봐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답답하게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다음날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TV에 뉴스채널이 켜져 있었다. 특종인 줄 알고 급하게 보도한 뉴스에 온성제약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처지에 있는 언론은 누가 그런 위조된 문서를 만들어 기자들에게 전달했을까 하는 의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답답한 상황이었다. 뉴스를 보던 동료들도 몇 마디 거들었다.

"주말에 저 뉴스 보고 정말 온성제약 끝난 줄 알았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말이야. 모든 언론이 신나서 떠들더니 이제는 숨기 바쁘다니까."
"그래도 온성제약은 여전히 의심스러워요."

퇴근시간이 되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경유서버에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길 바라면서 확인했다. 결과가 있었다. 1977년 5월 27일생인 홍미애라는 사람만 그 기간에 산부인과에서 출산기록이 있었다. 바로 이 정보를 경유서버에 올려 놓고 사는 곳과 전화번호 등을 찾도록 했다.

다음날 회사에 있는데 텔레그램으로 블랙라이더가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못 찾았어?'
'거의 다 왔어요. 오늘 저녁 쯤에 전화할께요.'
'그래?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께.'

퇴근해서 경유서버에 들어가자 홍미애에 관한 정보가 수집되어 있었다.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경기도 광주시, 그런데 최근의 휴대폰 위치는 충청북도 충주쪽이었다. 충주에 여행을 간 건가? 이렇게 되면 두 곳을 모두 확인해 봐야 한다. 어디에 있을 확률이 더 높을까? 일단 촉이 좋은 블랙라이더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

"어, 앤더썬. 드디어 나온 거냐?"
"네. 보고서에서 기형아 출산했다는 여자를 찾았어요."
"아, 그렇지. 그 사람 찾아서 내놓으면 빼도 박도 못 하는 거지. 역시 이놈 참 똑똑하단 말이야."
"그런데,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경기도 광주인데, 휴대폰 위치는 충청북도 충주예요. 어디부터 찾는 게 빠를까요?"
"음, 가까운 데부터 찾아 봐야지. 가까운 데 있는데 멀리 가서 못 찾고 돌아오면 열 받잖아. 주소 2개 다 보내 줘라. 내일 새벽에 나가서 찾아야지."
"형, 일단 위치만 찾아 놓으세요. 우리는 찾아도 언론으로 데려 나갈 수가 없으니까, 기자한테 알려서 그쪽에서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찾는대로 연락할께."

다음날 11시쯤에 블랙라이더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광주에서는 주말쯤에 여행 간다고 떠나서 아직 안 돌아왔단다. 바로 충주로 간다'

오후 4시쯤 지원을 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블랙라이더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찾았다."
"찾았어요? 다행이네요. 위치가 어디예요?"
"조금 있다가 메시지로 보내 줄께. 그런데, 이 여자 여행 온 분위기가 아니다."
"그럼 뭐 하러 가요?"
"아무래도 여기가 부모님 집인 것 같다. 가정집에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같이 지내네."
"왜 갑자기 거기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일단 주소부터 보내 주세요."
"그래, 알았다. 나도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주소를 받은 앤더슨은 먼저 어떤 기자에게 보낼지 생각했다. 많은 기자들에게 주소를 보내면 우르르 몰려가 오히려 홍미애가 놀라 도망쳐 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믿을 만한 한 명을 골라서 보내야 했다. 먼저 온성제약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다 열심히 취재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추려냈다. 그중에서 언론으로서의 비판정신이 강한 신문인 명성일보의 이대기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지난번 보낸 보고서는 사실입니다. 온성제약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보고서에 나온 임상시험 후에 기형아를 출산한 여자를 찾았습니다. 이기자님에게만 이 메일을 보내니, 잘 설득하셔서 꼭 진실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름:홍미애  주소: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XXX'

잠시 후,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던 이대기 기자의 스마트폰이 띠링 하고 울렸다. 무슨 메일이 왔나 하고 살펴 보았다. 얼른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내려가 얼른 가방을 들고 나섰다. 그 모습을 보자 부장이 물었다.

"대기야, 너 갑자기 어디 가냐? 오늘 할 일 없다고 했잖아."
"깜빡하고 있던 일이 있었습니다. 다녀 오겠습니다."
"저놈 저거 수상해. 뭐 하나 문 것 같은데."

사실 이대기 기자도 보고서가 위조되었다는 것을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서 그 보고서는 아무리 봐도 위조가 아니었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데 온성제약에 쳐들어가 압수수색을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자신의 갈길을 알려 주는 불빛 같았다. 물론 지난번 메일로 보냈던 보고서도 위조이고, 오늘 받은 메일도 장난일 수는 있다. 하지만, 허위나 잘못된 제보를 한두 번 받아 본 것도 아니고 이번은 특히 자신의 육감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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