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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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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7. 4. 8.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블랙라이더와 앤더슨은 나란히 앉아 앞에 있는 길로 언제 차가 지나갈지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진 않았었지만 막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자니 시간이 슬로우비디오처럼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한참이 지난 것 같은 데도 차가 보이질 않아서 시계를 보면 겨우 2~3분이 지나 있었고, 그런 일을 몇 번 반복하다가 스스로 너무 조바심을 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번엔 정말 오래 참고 참다가 시계를 봐도 불과 5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앤더슨이 기다리다 지쳐서 블랙라이더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형, 진짜 시간 안 가네요. 언제 오는 거죠?"
"야, 조용"이라고 조용하게 외치며 블랙라이더가 급하게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그때 흰색 소나타 한 대가 지나갔다. 짙게 썬팅을 해서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차가 길을 따라 올라가서 음성파일에서 들었던 주소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김비서관 아니면 로비스트인 스티브정이라고 예상했다. 그로부터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검은색 제네시스가 지나갔다. 이런 동네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눈에 띄는 차라서 설마 했는데 이 차도 역시 좀전에 소나타가 들어간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한국 물정에 어두운 스티브정이 타고 온 것이었다. 차가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블랙라이더가 말했다.

"참나, 평범한 차를 타고 오랬더니 제네시스를 타고 오네. 평소에 얼마나 좋은 차를 타길래, 그나마 아주 평범하다고 고른 게 저건가? 나도 로비스트나 할까?" 블랙라이더가 한심스럽다는 말투로 혼자 중얼거렸다.
"에이, 형은 성격상 정의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어요.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건 어울리지 않아요."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구나. 이런 비밀은 어디 가서 많이 얘기해라."
"그렇지 않아도 언제 한 번 TV에 광고 한 번 하려구요."
"헤헤 이놈.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움직일 시간이 왔다."

블랙라이더는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고 박스 안에서 물건 몇 개를 꺼냈다. 꺼낸 드론을 자동차 트렁크 위에 올려 놓고 조종기의 전원을 켰다. 조종기에는 핸드폰을 장착시키고 연결과정을 거쳤다. 그러자, 드론 아래에 달린 카메라에서 찍는 영상이 핸드폰의 화면에 보였다. 블랙라이더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드론을 띄워 화면을 보면서 두 명이 들어간 집의 담장 위에 조심히 올린 후 정지시켰다. 지붕은 한옥의 기와가 얹혀져 있고, 집의 벽은 빨간 벽돌로 쌓아 올렸고 가운데는 거실로 보이는 중간은 커다란 유리가 있었는데 앞에는 베란다가 있었다. 영상에는 먼저 집에 있던 김비서관이 나중에 온 스티브정을 맞이하러 나와 악수를 하고 웃으면서 인사말을 나누며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집안으로 들어가서 더 이상 둘의 모습을 볼 수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잠시 후에 큰 유리로 밖이 잘 보이는 거실 창가에 둘이 마주 앉은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담이 높아서 밖에서 볼 수 없을 거라고 방심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자리에 앉자 서로 웃음을 지으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스티브정이 서류가방에서 문서를 꺼내서 김비서관에게 건넸다. 이때 블랙라이더가 조종기를 작동시켜 드론을 위로 띄워서 그들의 눈에 띄지 않을 높이를 유지한 채 집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면서 카메라의 각도를 조정해 문서의 내용을 줌으로 당겨서 확인했다. 그 위치에서 드론은 고도유지모드로 들어갔고, 문서를 확인한 후 김비서관이 스티브정에게 건넨 쪽지까지 모두 영상에 담았다. 그후에 둘은 웃으면서 악수를 했고, 이야기가 모두 끝난 것으로 판단한 블랙라이더는 드론을 출발위치로 돌아오도록 명령을 했다. 블랙라이더는 처음 출발했던 자동차 트렁크 위로 돌아온 드론을 챙겨서 자동차 뒷좌석에 다시 넣고 앤더슨과 다시 자동차 앞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형, 출발 안 해요?" 일에 끝났는데도 왜 출발하지 않는지 궁금했던 앤더슨이 블랙라이더에게 물었다.
"쟤들 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가야지."
"아, 그래요? 근데 저 오줌 마려운데요. 잠깐 나갔다 올께요."
"야, 임마.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그냥 참아."
"아까 기다릴 때부터 참고 있었어요. 이러다 쌀 것 같아요."
"아, 이놈. 도움이 안 되네. 여기 이 통에다 싸라."
"통에요? 꼭 여기에 싸야 되요?"
"원래 잠복할 때는 이러는 거야. 아니면 참던가."
"아, 아니예요. 그럼 이쪽 보지 말고 저 앞쪽만 보세요."
"안 본다. 안 봐. 관심도 없으니까 편하게 싸라. 으휴, 내가 못 산다."

한숨을 쉬며 몸을 창쪽으로 돌려 앉은 블랙라이더는 괜히 앤더슨을 데려 와 짐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다가, 그래도 옆에 얘기할 사람이 있어서 지루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앤더슨은 부스럭거리며 바지 지퍼를 내린 후에 한참동안 쪼로록 소리를 내며 통에 소변을 봤다. 꽤 큰 통이었는데 소변이 거의 가득차 있었다.

"휴, 살았다. 정말 죽는 줄 알았네요."
"아, 냄새. 창문도 못 여는데. 그러니까 잠복 나가기 전에는 되도록 물을 마시면 안 된다. 다음부터 잘 기억해 둬라."
"네."

둘이 차안에 앉아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제네시스가 먼저 지나갔고 잠시 후에 소나타가 지나갔다. 그 뒤로도 30분 이상 그 자리에 있던 블랙라이더는 시동을 걸고 조용히 숨은 곳에서 빠져 나와 아지트로 돌아왔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뒷좌석에서 박스를 꺼내 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감시카메라를 보고 블랙라이더와 앤더슨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이교수와 아주머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다녀 왔습니다."
블랙라이더가 먼저 인사했다.

"어, 화순이 무사히 잘 다녀 왔니?"
"네. 드론 띄워서 찍었는데 잘 찍었는지는 얼른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앤더슨은 어땠어요?"
"형이 설렁설렁하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실력자네요.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 했습니다."
"재미 있었다니 다행이네요. 자, 그럼 화순이가 뭘 찍어 왔는지 보러 갈까?"

이때 아주머니가 말을 꺼냈다.

"멀리 갔다 왔는데 배 안 고파? 얼른 김치콩나물국 끓여 줄 테니까 밥 먹고 하지."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쉬었다가 식사 후에 봅시다. 김치콩나물국 얘기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네요."

이교수가 침을 꿀꺽 삼키며 식탁 쪽으로 먼저 이동했고 블랙라이더와 앤더슨도 그 뒤를 따라 갔다. 아주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셋은 드론을 띄웠던 일과 앤더슨이 차 안에서 급한 소변을 해결한 이야기를 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아주머니는 뒤에서 하는 이야기가 들려 가끔씩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거들고 싶었지만 먼 곳 다녀 오느라 배고팠을 사람들에게 빨리 저녁을 먹여야 할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은 세 명은 잠시 휴식 후에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회의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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