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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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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7. 1. 8.

3명 모두 회의실에 앉자 앤더슨이 먼저 입을 뗐다.

"아주머니 굉장하시네요. 요리도 잘 하시고 강심장이시네요. 겉으로 보기엔 그냥 옆집 사는 아주머니 같은데."
"아주머니가 젊었을 때는 도시에서 살면서 연극배우도 하고 완전히 도시여자였다 아이가. 근데 아저씨하고 사랑에 빠져 결혼하면서 여기로 따라 내려 오면서 저렇게 사시는 거지. 너는 아직 한 번도 못 들었지만 교수님하고 나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너도 이제 자주 듣게 될 거다."
"어쩐지 보통 시골 아주머니하고 느낌이 다르다 했어요."

그때 이교수가 말을 시작했다.

"쟤들이 우리 턱밑까지 왔다 갔으니 우리도 뭔가 일을 시작해야겠죠? 화순아, 앤더슨이 김비서관 핸드폰에서 꺼내 온 음성녹음파일 좀 틀어 봐."

블랙라이더가 컴퓨터를 켜자 화면이 벽면에 붙어 있는 커다란 모니터에 나타났다. 폴더를 열자 앤더슨으로부터 받은 파일들의 목록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앤더슨이 이야기했다.

"원래 핸드폰에서 꺼내 온 파일은 훨씬 많았아요. 그런데, 다운로드 받는 중에 에러가 나서 봤더니, 저기에 있던 파일들만 제 컴퓨터에 다운로드되었고 원래 있던 파일들이 다 사라져 버렸더라구요."
"앤더썬 니가 실수로 다 지워 버린 건 아니고?"
"다운로드 시작하고 컴퓨터를 건드리지도 않고 기다렸으니까 그럴 일은 없었을 거예요. 그 다음날 국정원이 저희집에 쳐들어 온 걸 보면 아마 그들이 파일이 유출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서버를 찾아 들어와 파일을 지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버에서 흔적을 찾아서 저희 집까지 찾아낸 것 같구요."
"니가 파일을 받았다는 것까지 다 아는 거 아니가?"
"그건 확실하지 않아요. 제가 파일을 받고 있는동안 그들이 다 지웠으니까, 제가 파일을 미처 받기 시작하기도 전에 다 지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제 컴퓨터는 깨끗하게 지웠으니까 파일을 받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구요."
"기왕이면 다 받은 다음에 지웠으면 좋을 텐데. 어쩌면 30개 정도라도 건진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교수님 어떤 것부터 열까요?"

이교수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들어보자고 대답했다. 블랙라이더가 첫번째 파일을 실행했다.

'스티브 정, 오랜만입니다.'
'김비서관님도 오랜만입니다. 지난번에 얘기되었던 건 결정을 하셨습니까?'
'예, VIP께서 그 금액에 동의하셨습니다.'
'예, 이렇게 좋은 전투기를 이렇게 좋은 금액에 사신다니 잘 하신 겁니다.'
'그럼, 커미션 2%는 어떻게 입금해 주실 건가요?'
'이건 계약서 작성할 때 계좌번호를 받으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계약서는 언제 어디서 작성할까요?'
'7월 5일 오후 4시, 경기도 양평군 옥수면 이서리 산 254번지로 오세요. 참, 시골동네니까 너무 튀지 않게 평범한 차로 오세요.'
'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파일을 듣자마자 모두 휴대폰을 열어 오늘 날짜와 시간을 확인한 후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고 있었다. 오늘이 7월 5일이고 현재 시간은 오후 12시 10분이었기 때문이다. 잠시후에 이교수가 블랙라이더에게 얘기했다.

"화순아, 네가 할 일이 생긴 것 같구나."
"이렇게 빨리 움직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교수님, 앤더슨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보조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앤더슨은 이런 일을 한 경험이 없을 텐데, 괜찮겠어요?"

앤더슨은 겁이 나긴 했지만 어제 차를 타고 도망칠 때에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 했던 짜릿함이 생각나기도 했고, 블랙라이더가 어떻게 일하는지도 궁금해서 따라 나서겠다고 대답했다. 블랙라이더와 앤더슨은 옷을 갖춰 입고 장비가 든 큰 가방을 들고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허두순 아주머니가 둘이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나오셔서 비닐봉지 하나를 건넸다.

"점심 때 다 되었는데 나가면 배고파서 어쩐대? 여기 오전에 쪄 놨던 고구마인데 이 우유하고 같이 먹어."
"역시 아주머니 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배가 조금 고팠었는데 잘 됐네요. 잘 먹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잘 다녀 와."

둘이 주방 옆으로 난 복도를 따라 가서 코너를 돌자 문이 하나 나왔다. 블랙라이더가 문을 열자 큰 공간이 나왔고 거기에는 차가 5대 있었는데 3대는 비싼 수입 세단과 SUV였고, 2대는 평범한 국산 승용차였다. 앤더슨은 이번에 비싼 수입차를 타 보나 하고 기대했는데 블랙라이더는 수입차들을 다 지나가고 그나마 있던 국산 중형차까지 지나서 맨끝에 있는 준중형인 크루즈까지 걸어갔다. 블랙라이더는 뒷좌석에 장비가방을 넣은 후에 운전석에 탔다. 앤더슨은 내심 약간 실망하면서 조수석에 탔다.

블랙라이더가 리모콘을 누르자 앞에 있던 벽 일부가 열렸고 차는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 앞에는 모니터가 달려 있었고, 화면중 하나에는 터널 안의 모습이 하나 보였고, 나머지 2개는 터널 양쪽 바깥방향의 모습이 보였다. 블랙라이더는 모니터를 보고는 차를 앞의 어두운 쪽으로 이동했다. 앤더슨은 차가 벽에 충돌하는 줄 알고 '어, 어' 하고 소리를 냈는데 차는 벽에 부딪히지 않고 스르륵 빠져 나갔고 차는 터널 안의 갓길에 있었다. 블랙라이더가 가속페달을 깊이 밟자 부우웅 소리와 함께 튀어 나갔다. 목적지를 입력한 내비게이션에 표시되는 도착예정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었다.

앤더슨은 방금 차에 탈 때부터 차고를 나오는 것까지 현실 같지 않고 영화 같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서 어떻게 된 건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블랙라이더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형, 우리가 방금 어떻게 차고에서 나온 거예요?"
"신기하지? 나도 처음엔 어찌나 신기하던지. 우리가 있던 집 차고가 아까 나온 터널 벽쪽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모니터 봤지?"
"네."
"모니터가 터널 안쪽하고 양쪽 바깥을 보여 주는 거다. 우리가 거기서 나오는 걸 보면 안 되니까 차 없을 때 나오려고 확인하는 거다."
"그런데, 벽은 어떻게 뚫고 나온 거예요?"
"아 그거? 아래가 고정되지 않은 천이야. 겉으로 보기엔 벽 같은데 천이라서 그냥 밀고 가면 통과하는 거야. 무슨 굉장한 거라도 상상한 거야?"
"그래요? 너무 신기해서 난 공간이동이라도 한 줄 알았네요."
"이놈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출발한지 30분 정도 지나자 점심 때가 지나 배가 고파왔고, 블랙라이더는 앤더슨에게 아주머니가 주신 고구마를 달라고 했다. 앤더슨은 고구마를 까서 블랙라이더에게 쥐어 주고 자신도 고구마를 먹기 시작했다.

"앤더썬, 고구마 조금만 먹어라."
"왜요? 아주머니가 고구마 많이 싸 주셔서 둘 다 배불리 먹어도 되요."
"고구마 먹고 방귀 뀌면 냄새 지독하다. 우리는 차 밖으로 맘대로 나갈 수도 없고 창문도 열어 놓을 수 없으니까 방귀 뀌면 죽음이다."
"아, 근데 이 고구마 정말 맛있는데요. 우유하고 먹으니까 더 환상적이네요."
"아, 임마 그래도 참아라. 있다가 집에 가면 아주머니가 훨씬 맛있는 거 해 주실 거다."
"네. 저녁 먹고 또 먹어야겠어요. 형, 그런데 차고에 엄청 비싼 차도 있던데 왜 이렇게 싼 차를 타요?"
"이것도 일종의 잠복이잖아. 잠복할 때는 눈에 띄는 차를 타면 걸리기 딱 좋다 아이가."
"아, 그렇군요."
"그리고, 이 차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2.0 디젤엔진이고 내부는 완벽하게 튜닝을 해서 자동차레이싱 나가도 될 정도다."
"어쩐지 터널에서 출발할 때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질 정도이긴 했어요."
"지도앱으로 그 주소 위성사진 좀 확인해 봐라."
"네, 잠시만요... 어 여기네요. 그런데 여기 완전히 산속이네요."
"멀더라도 근처에 차 숨겨 놓고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되는데."
"산속에 길 하나 나 있고 그 속에 있어서 그럴 만한 곳이 있을까 모르겠네요."
"그럼, 그 주소로 들어가는 외길 전에 어디 차를 숨길 만한 곳을 찾아야겠네."

한 시간 정도 더 이동하자 아까 찾아 두었던 차를 숨길 만한 곳에 도착했고, 블랙라이더는 거기에 차를 멈추고 시동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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