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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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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7. 5. 7.

앤더슨은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회의실에 있는 컴퓨터로 복사하고 만약에 대비해 외부에 있는 서버에도 복사했다. 그리고 회의실 벽에 붙어 있는 대형모니터에 영상을 출력되도록 한 후에 영상을 실행했다. 드론이 출발해 담장 위에 멈춰서 있는 동안 김비서관과 스티브정이 만나 악수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이때 이교수는 "잠깐 멈춰 보세요."라고 했다. 앤더슨은 재빨리 영상 재생을 멈췄다.

"저 사람들이 김비서관과 스티브정인가요?" 교수가 물었다.
"예. 왼쪽이 김비서관인 것 같고 오른쪽이 스티브정인 것 같습니다." 블랙라이더가 대답했다.
"앤더슨 이 화면 좀 캡쳐해 주세요." 교수가 얘기하자, 앤더슨은 화면을 캡쳐한 후 파일을 저장했다.
"자, 계속 볼까요?" 교수가 얘기했다. 앤더슨은 화면을 이어서 재생시켰다.

화면에선 집안으로 들어간 김비서관과 스티브정이 잠시 후에 거실창 안쪽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가 창앞으로 이동해 내려다 보는 동안 스티브정이 김비서관에게 문서를 건넸다. 문서가 보이자 교수가 화면을 멈추라고 했다. 앤더슨이 급하게 멈췄지만 김비서관이 문서를 받아서 돌려서 자신쪽으로 기울였기 때문에 내용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멈췄다. 앤더슨은 조금씩 화면을 앞으로 되돌려 문서 내용이 잘 보이는 장면에서 화면을 멈췄다. 그러자 문서의 내용이 선명하게 보였다. 보다 크고 자세히 보고 싶다고 교수가 얘기하자, 앤더슨은 화면을 캡쳐해서 문서가 세로로 보이도록 회전한 후 확대했다. 문서는 전투기 구매 계약서였고 F-32 40대를 80억달러에 구매한다는 내용이었다.

금액을 보고 깜짝 놀란 블랙라이더가 "와, 저게 0이 몇 개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그럼 80억 달러? 그럼 우리돈으로 얼마죠?"하고 말했다.
"8조원이 넘는 거네." 이교수가 대답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문제는 저런 계약서를 왜 저렇게 은밀한 장소에서 건네느냐 하는 거지. 사람들이 알지 못 하는 은밀한 거래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지. 앤더슨, 이 그림도 잘 저장해 두고 계속 이어서 볼까요?"

앤더슨은 캡쳐한 화면을 저장하고 화면을 이어서 재생했다. 김비서관은 만족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접어 자켓의 왼쪽 안주머니에 집어 넣고 오른쪽 안주머니에서 조그만 쪽지를 꺼내서 스티브정에게 건넸다. 이때 또 교수가 멈추라고 외쳤다. 화면을 보던 앤더슨도 이쯤에서 멈추라고 할 것 같아 준비를 하고 있다가 버튼을 눌렀지만 스티브정이 너무나 짧은 시간동안만 내용을 확인한 후 주머니에 넣으려고 움직이는 바람에 쪽지의 내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영상의 약간 앞쪽으로 이동하자 내용이 잘 보이는 위치에 멈췄다. 쪽지에는 '스위스 브루크 140416-18-503'라고 씌여 있었다.

"저건 뭐죠?" 블랙라이더가 외쳤다.
"그렇지. 저런 게 나올 줄 알았어. 저건 볼 것도 스위스 비밀계좌번호겠지." 교수가 대답했다.
"그 뉴스로만 듣던 스위스 비밀계좌인가요? 그런데, 저건 어디다 쓰라고 주는 거죠?" 앤더슨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커미션을 저기에 입금하라는 뜻이겠죠." 교수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커미션이요?" 앤더슨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뉴스에 자주 나오던 무기도입비리의 현장을 우리가 목격한 것 같네요. 외국에서 무기를 도입할 때 좋은 가격으로 협상을 잘 하면 국민 세금도 절감하고 그 돈으로 국민들에게 복지를 제공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죠. 외국의 무기 로비스트를 통해서 원래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도입하고, 그 비싸게 지불한 돈의 일부를 외국 무기회사로부터 커미션으로 돌려 받는 거죠. 당구로 설명하자면 국민세금을 외국무기업체에 쿠션을 친 다음에 자기 주머니로 받는 거죠." 교수의 설명을 듣자 블랙라이더와 앤더슨은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저 나쁜 새끼들, 꼭 잡아서 모가지를 비틀어 버려야지." 블랙라이더가 얘기했다.

교수는 예상한 반응이라는듯 덤덤한 표정으로 설명을 계속했다.
"보통 20% 정도를 로비스트가 받고, 5% 정도를 로비스트가 갖고 나머지 15%를 커미션으로 받는다고 치면, 이 거래로 1조 2천억원 이상을 받겠네요."
"네?" 이번에도 블랙라이더와 앤더슨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이 새끼들 두부 같은 데 세금을 붙이고, 담배값까지 올리더니 이게 다 지들 주머니 채우려고 그런 건가? 생각할수록 열 받네." 블랙라이더가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 계속 피우긴 하지만, 살 때마다 오른 가격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에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교수님, 이 새끼들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풀기라도 하려는 듯 블랙라이더는 뭔가 빠른 진행을 원하며 얘기했다.
"화순아, 너무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어.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야지. 이렇게 격앙된 분위기에선 좋은 계획이 나올 수 없으니까 잠깐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다시 하는 게 좋겠다. 저거 보고 나니 속이 답답해서 그런가 아주머니가 만드신 시원한 수정과가 생각나네. 자 한 잔 마시러 갈까?"

교수가 일어나서 회의실을 나가 주방쪽으로 향하자 블랙라이더와 앤더슨도 따라 나섰다. 식탁에는 초저녁잠이 많은 허두순 아주머니가 회의하는 사람들이 간식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교수가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저런, 저희 기다리느라고 아직까지 안 주무셨어요?"
"뭐라도 먹을 걸 갖다 줄까 했는데 너무 열심히 회의하는 것 같아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주머니가 만든 시원한 수정과가 먹고 싶어서 나왔어요. 그것만 챙겨 주시고 먼저 주무세요."
"하긴 내 수정과가 꿈속에서도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긴 하죠. 자, 대접이 어디 있지?"

아주머니의 자화자찬에 블랙라이더가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주머니 수정과는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어요. 아주머니 나중에 저하고 수정과 사업해요."
"내가 너를 뭘 믿고 같이 사업을 하냐? 너하고는 생각 좀 해 봐야겠다."
"에이, 제가 뭐 어때서 그러세요. 다들 신용도가 한국은행급이라고 하는데. 이익배분 얼마를 원하시는데요? 5대 5 정도면 하실래요?"
"내 수정과를 먹어 보고도 그 정도 밖에 안 준다고? 딴 사람 알아 봐야겠다. 너하고 사업 얘기는 없던 걸로 하자."
"알았어요. 그럼 아주머니 7, 내가 3. 이제 됐어요?"
"그렇지, 그 정도는 줘야 이 허두순하고 수정과 사업을 할 수 있지."

농담을 주고 받는 동안 아주머니는 수정과 세 대접을 담아 식탁 위에 올려 놓았고 부족하면 냉장고에 있는 통에서 더 가져다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자러 방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블랙라이더가 사업까지 하자고 하는지 궁금했던 앤더슨은 얼른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을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강하지 않은 단맛에 계피향이 은은하게 남는 것이 지금까지 먹어 본 어떤 수정과보다 맛있었다.

"우와, 이렇게 맛있는 수정과는 처음 먹어 보는데요." 앤더슨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렇지? 내가 웬만하면 아주머니 자랑할 때 장난이지만 시비를 거는데, 이건 완전히 무장해제다. 이보다 맛있을 순 없다." 블랙라이더도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수정과 하나만으로도 여기 모시고 있을 가치가 있는데 다른 음식도 다 잘 하시니 우리가 복이 참 많지?" 교수도 맞장구쳤다.

이렇게 세 명은 수정과 맛에 감탄하고, 촬영한 영상을 보는 동안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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