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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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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7. 5. 21.

휴식 후에 세 명은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 조금 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다시 전투모드로 돌입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이교수는 앤더슨에게 이야기했다.

"앤더슨, 지난번에 조사한 내용을 언론에 터뜨릴 때 어떻게 했었죠?"
"어떤 케이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아, 그 뭐였더라.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기억력이 떨어지네요."
"모든 언론사에 다 뿌릴 때도 있었고, 신뢰가 가는 한 곳에만 보낸 적도 있습니다."
"이번 경우는 몇 군데만 보냈다가 데스크에서 킬해 버려서 세상에 나오지도 못 하고 묻혀 버리고 운 나쁘면 거기서 추적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모든 언론사에 뿌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교수님, 그럼 지금 바로 뿌릴까요?"
"그래요. 일단 뿌려 놓고 반응을 지켜 봐야겠어요."

이교수는 앤더슨에게 어떤 내용을 뿌릴지 구체적으로 내용을 지시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에서 캡쳐한 김호준비서관과 스티브정의 사진, 계약서, 스위스 비밀계좌번호가 모두 포함되었다. 그리고, 계약서 내용과 무기도입비리 관련해서 통상적으로 로비스트가 받게 되는 돈의 비율도 함께 메일 내용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앤더슨이 빠른 속도에 메일 내용을 편집했고 발송하기 직전에 작성된 메일 내용을 세 명이 꼼꼼하게 다시 확인했다. 짧은 시간에 작성한 내용임에도 일부 문구가 어색해서 수정한 것 외에는 고칠 곳이 없을 만큼 깔끔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그 후에 앤더슨은 추적 불가능한 메일서버를 통해서 모든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메일을 발송했다. 대형 모니터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발송 버튼을 누르고 발송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자 앤더슨과 블랙라이더는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고 이교수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일 아침쯤이면 세상이 떠들썩해져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마우스를 클릭했던 앤더슨의 검지손가락 손끝이 짜릿한 느낌이었다.

몇 년동안 아랫배를 더부룩하게 하던 숙변이 빠져 나간 기분에 블랙라이더가 이교수에게 제안을 했다.
"교수님, 이런 날은 축배를 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화순아. 맥주 한 잔 할까?"
"그러시죠. 주방으로 가실까요?"

세 명은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서 마셨다. 이런 날 치킨이 있었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찬장에 있던 감자칩을 꺼내 안주로 먹었다. 몇 시간동안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면서 떠들다가 앤더슨이 말을 꺼냈다.
"진행이 빠른 언론사라면 바로 기사 써서 인터넷에 올렸을 수도 있는 시간인데요. 한 번 확인해 볼까요?"
나머지 두 명도 얼마나 빨리 어떤 내용으로 기사가 올라올지 궁금해 하고 있던 터라 동의하면서 맥주와 안주를 들고 회의실로 이동했다.

앤더슨이 인터넷에 접속한 화면이 모니터에 표시되었다. 먼저 다음에 접속하자 속보로 무기도입비리에 관한 기사 몇 개가 앤더슨이 보낸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었다. 이 언론사들은 대표적인 진보언론으로 그동안 정부의 비리를 캐서 기사를 자주 내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경쟁이라도 하듯이 다른 언론사들에서도 기사가 올라 왔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메일을 뒤늦게 확인해서 편집장으로부터 전화로 욕을 진탕 먹은 후에 기사를 올리는 언론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정부 계열 언론사들은 기사를 올려야 할지 편집장이 끝까지 고민하다가 어용언론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강도를 낮추고 내용의 신빙성에 의문을 다는 내용을 추가해서 기사를 냈다.

기사가 하나씩 올라 올 때마다 탄성을 지르던 세 사람은 밤을 꼬박 새고 아침 7시가 다가왔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메일을 보냈던 언론사에서 기사가 거의 다 올라오자 TV를 틀어서 뉴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뉴스에 나온 기자들은 이미 그런 내용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메일 내용보다 더 풍성한 자료를 함께 보여 주면서 마치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처럼 유창하게 설명했다.

이 모습을 보고 블랙라이더가 말문을 열었다.
"와, 이 놈들 원래 알고 있었으면서 터뜨리지 않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교수님?"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정부에서 보도하지 못 하게 압력을 넣고 있었거나 잘 간직하고 있다가 불리할 때 터뜨리려고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우리가 조사한 것처럼 구체적인 액수까지는 모르고 있었을 거야. 이번에 화순이가 큰 일을 한 것 같구나. 수고했어."
"아, 아닙니다. 저는 교수님하고 앤더슨이 차려 놓은 밥상을 맛있게 먹었을 뿐입니다. 헤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말인데." 하면서 이교수도 웃었다.

TV 뉴스까지 몇 개를 본 후에 이제 다 되었다는 느낌에 긴장이 풀려 세 명은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연신 하품을 해댔다. 이때 일어난 아주머니가 회의실로 왔다.

"아니 아직까지 안 자고 있었던 거야?" 아주머니가 이야기했다.
"아줌마 저 TV 좀 보세요. 저 비리 우리가 터뜨린 거예요. 멋지죠?" 블랙라이더가 대답했다.
"어디 보자. 저 뭐야, 1조가 넘는 돈을 받아 챙겼다는 거야? 저번에 가서 저걸 알아낸 거야?" 아주머니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대답했다.
"그럼요." 블랙라이더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잠도 안 자고 있으면 어떡해. 주방에 보니까 술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얼른 시원하게 황태무국 끓여 줄 테니까 먹고 한숨 자."

아주머니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주방으로 이동해 황태, 무, 국간장을 넣어 뽀얗고 진한 국물이 우러난 시원한 황태무국을 끓여 내놓았다. 세 명은 국에 밥 한 공기씩을 말아서 뚝딱 해치웠다. 식사 후에 한 시간 정도 흐르자 기분 좋은 나른함이 찾아 왔고 각자 방으로 가서 잠들었다.


앤더슨이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는 오후 5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방에서 나가니 이교수와 블랙라이더가 회의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검찰이 기자회견 중이었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서 무기도입비리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국회에선 국회의원들이 특검을 임명하겠다고 회의 중이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세상이 움직이는 것을 보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던 나라에 새삼 큰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에 가슴이 벅차 올라 울컥한 블랙라이더는 눈물도 찔끔 흘렸는데 누가 보고 놀릴까 봐 얼른 뒤돌아서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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