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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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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7. 5. 27.

무기도입비리 뉴스 후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예전부터 무기도입할 때는 으레 비리가 있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기도입과 비리는 거의 동의어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액수의 비리의 계약서까지 공개되니 어딜 가나 몇 명만 모이면 무기도입비리에 관한 대화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다들 그돈이면 늙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 있고, 대대손손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는 넋두리도 자주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다 보니 언론에서 이 비리에 관해서 언급하는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검찰도 공개된 계약서나 사진 등이 위조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도 특검을 실시하는 문제에 대해 누구를 특별검사로 임명할지와 기간을 언제까지로 할지에 관해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슬쩍 묻혀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회의실에 세 명이 모여 앉아 TV 뉴스를 보던 중에 무기도입비리 관련 상황이 돌아 가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블랙라이더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 이 자식들 또 은근슬쩍 덮으려고 그러는가 보네."
"그러게요. 어떻게 매번 이렇게 똑같이 넘어 가는지 답답하네요."하며 앤더슨이 거들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우리가 괜히 헛수고 한 것이 될 것 같네. 앤더슨 지난번에 김비서관 휴대폰에서 빼낸 음성파일 중에 안 들었던 것 좀 다시 들어 볼까요? 아무래도 다른 것들도 터뜨려서 꼼짝 못 하게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나머지 두 명과 마찬가지로 진행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던 이교수가 고민 끝에 다음 할 일을 발표했다.

앤더슨이 TV를 끄고 모니터에 컴퓨터 화면을 띄웠다. 거기서 두번째 음성파일을 실행했다.

'김비서관'
'예, 각하'
'PQ그룹에서 돈 입금했어? 오늘 오전까지는 안 들어 왔었는데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 그래. 얼른 확인해 봐.'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직 안 들어 왔습니다.'
'이 새끼들, 지들 회장 사면시켜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나오고 나니까 입 싹 씻는 거야? 확 다시 처넣어 버릴까? 입금 언제 할 건지 다시 확인해 봐. 아니 당장 입금하라고 그래. 장사하는 놈들이 이렇게 돈계산이 느려서 먹고 살 수 있겠어?'
'제가 다시 연락해 보겠습니다.'
'니가 좀 강하게 해 봐. 맨날 물렁하게 하니까 저 새끼들이 슬슬 눈치 보면서 떼먹을 궁리나 하고 있는 거 아냐.'
'예, 이번엔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내용으로 봐선 공금횡령으로 징역을 살던 PQ그룹 회장이 작년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던 일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음성파일 실행이 끝나자마자 또 흥분한 블랙라이더가 말을 내뱉었다.

"이 새끼들 참 골고루 해 먹었네. 편식 안 하고 이렇게 골고루 먹는 거 보면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밥상 앞에서 교육을 참 잘 시켰나 봐."
"참, 썩지 않은 곳이 없네요." 앤더슨이 블랙라이더의 말을 거들었다.
"원래 잘못된 일을 처음 할 땐 자신도 죄책감을 느끼고 조심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그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그런 죄책감이 점점 사라지면서 당연히 해도 되는 일이라고 느껴지게 되죠. 그러다 보면 범죄의 흔적을 남긴다거나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거고요. 저들의 실수 덕분에 우리가 이런 증거를 얻긴 했는데 막상 내용을 확인하고 보니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네요." 

이교수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갑자기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고, 세 명 모두 놀라 회의실 밖으로 나와 외부 모니터 앞으로 몰려 갔다. 차고쪽 밖에 있는 터널의 앞에 검은색 차 여러 대가 서 있었고, 거기서 내린 것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세 명이 플래쉬를 들고 터널 안으로 걸어 들어와 여기저기 비춰 보고 있었다.


언론에 무기도입비리 기사가 뜨자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 알아내려고 혈안이 된 김비서관이 그 시간대에 스티브정과 만난 곳 주변을 지나간 차량을 모두 찾아내도록 지시했다. 김비서관이 움직인 시간대는 아무리 검색해도 지나간 자동차가 없어 먼 곳에 자동차를 세워 놓고 온 것이 아닌가 해서 검색지역을 넓히느라 며칠을 보낸 것이었다. 그러다가 김비서관의 이동시간을 기준으로 검색시간대를 넓히자 자동차 한 대가 보였다. 그 차량의 이동경로를 도로 CCTV로 추적해 보니 이 터널로 온 것이었다.

CCTV 영상을 보면 분명 터널 쪽으로 차가 들어갔는데 반대쪽으로 나온 것은 아무리 돌려 봐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나중에 들어간 차들은 오래지 않아 터널 밖으로 잘 나오고 있었다. 함께 영상을 지켜 보던 사람들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 직원이 혹시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건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가 김비서관에서 몇 분 동안 쌍욕을 들어야 했다. 이렇게 모두의 궁금증과 의심을 풀기 위해 터널에 온 것이었다.

두 명이 각각 플래쉬로 터널 한쪽 벽을 위아래로 비추며 끝까지 가 봤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둘이 돌아와 김비서관에게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 했다고 보고하자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소리를 지르며 터널 안쪽 벽을 발로 걷어 찼다. 이때 딱딱해야 할 벽이 쑥 들어가며 펄럭였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놀란 김비서관이 벽을 밀고 들어가자 그 안에 자동차 몇 대가 있었다. 자동차들 중에 그들이 찾고 있던 차도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국정원 직원들은 권총을 꺼내 들고 차고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벽으로 된 회의실처럼 생긴 방에는 김비서관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음성파일의 내용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놀란 김비서관이 이곳을 샅샅이 뒤져서 사람들을 찾아내라고 지시한 후에 회의실로 들어가 마우스로 음성파일 실행을 멈추었다. 직원들은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문을 부수면서 내부를 뒤졌지만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이때 어디선가 붕하는 소리가 나서 모두 그쪽을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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