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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딸린 홀아비로 살아가기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굳이 쓸 일이 생길까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행동하는 것 같아서 여기에 욕이라도 하면서 풀까 하고 글을 시작한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는데. 나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다른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 하는 것 같다. 애 딸린 홀아비는 아빠와 엄마 역할을 혼자서 모두 해내야 한다.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고, 집안일(청소, 요리)을 해야 하고, 아이의 식사와 학교생활 및 공부를 챙겨야 한다. 정말 일주일 내내 바쁘다. 남편이 직장일 외에 집안일에 신경을 안 써 주는 워킹맘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비슷할 것 같다. 그래도 워킹맘은 남편이 돈이라도 벌어도 주고 집안일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닐 테니까 다르긴 하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집안의 모든 문제.. 2023. 12. 16.
보험금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모든 상속처리는 끝냈는데 암보험 사망처리는 3년 반이 넘도록 안 한 채로 놔두고 있었다. 딱히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귀찮기도 하고 보험금 청구할 때 제출하는 서류 중에 사망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서류에 아내 이름 옆의 '사망'이라는 글자가 보기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보험금 청구가 끝나고 깨닫게 되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해야겠다. 보험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문의하고 정부24 사이트에 접속해서 필요한 서류를 출력했다. 제적증명서는 온라인 출력이 불가능해서 주민센터에 가서 받았다. 그냥 보험금 수령이 아니고 사망으로 인한 상속자의 보험금 수령이라 모든 상속자들의 서류가 필요해서 꽤 복잡했다. 참, 보험금 청구를 미룬 이유가.. 2023. 6. 4.
위안 힘든 마음을 안고 사는 것은 참 힘들다. 끊임없이 마음의 위안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나만 이런가? 나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기사를 보든 TV를 보든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나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꼭 읽거나 본다. 그런 내용을 보면 눌러 두었던 나의 감정이 살아나서 힘들고 눈물도 가끔 흘린다. 어쩌면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눈물을 흘려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나만 이런 감정을 갖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면서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외에도 일상 속에서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루틴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은 드립커피를 마신다.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서 올린 .. 2022. 2. 14.
살아내기 아내가 암에 걸리기 전까지 내 인생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태어난 김에 사는 느낌이었다. 때가 되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고, 취직하고,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아이도 생겼다. 모든 것이 누구나 아는 방식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삶의 목표나 무언가를 이루고 싶거나 하는 것도 딱히 없었다. 삶의 목표가 없는 것이 대학 시절에 도를 닦는 사람들과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를 아십니까'류의 사람들이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대답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에게 무언가 답을 알려 주지 않을까 해서 따라가서 몇십만 원의 제사비용 같은 것을 내고 제사 비슷한 것도 지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만나면 하는 얘기가 이.. 2022. 2. 13.
항암 민간요법 이번 글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의견이고 저는 의학적 지식이 없습니다. 이 글을 따라 했다가 생기는 문제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암 치료를 위해서는 양방병원에서 하는 다양한 방법 외에도 다양한 민간요법이 존재한다. 아내는 거의 끝까지 병원에서 하는 항암약물치료, 방사선 치료 외에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항암약물치료의 경우 몸의 면역력이나 간수치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몸이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치료와 병행할 수가 없다. 특히 버섯이나 약초 등의 민간요법은 대부분 간수치가 올라간다. 그래서, 이런 민간요법을 하면 간수치가 올라가서 항암약물치료를 제때 할 수가 없습니다. 몇 년간 지켜본 결과 항암약물치료는 암세포에 확실히 효과가 있다.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덜해지거나 암세포가 약간 커지는 경우도 .. 2022. 2. 6.
명절 홀아비가 되고 나니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부럽다. 단, 둘이 서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부부 사이가 좋거나 아니면 서로 얘기도 거의 안 하고 셰어하우스의 메이트 정도의 관계라도 최소한 가끔 안부는 묻고 집안일을 단 10%라도 나눠서 할 순 있으니까. 사실 나 말고 누군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길 가다가 가장 부러운 부부는 손 잡고 걸어가는 부부이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자주 손 잡고 걸어 다니기도 했고 예전에 내 꿈이 나이 들어서 아내와 손 잡고 산책 다니는 거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1년에 딱 두 번 다른 부부들이 전혀 부럽지 않은 날이 있다. 제목에도 있듯이 명절에는 전혀 안 부럽다. 그만큼 그동안 명절이 지옥 같았다는 뜻이다. 씨발 좇같은 시댁. 시댁이 전혀.. 2022. 2. 6.
전염병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져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아내가 완치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면 적당한 시기에 사람들과 인사하고 잘 떠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내가 4개월만 늦게 떠났다면 장례도 제대로 못 하고 아는 사람들 뿐 아니라 가족과도 제대로 인사를 못 하고 떠났을 것이다. 항암치료가 암세포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세포들까지 꽤 많이 죽이기 때문에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약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도 이런 상태에서 몸에 들어가면 빠르게 퍼져서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음식도 날 것은 못 먹고 익힌 음식만 먹어야 한다. 환절기에 잘 걸리는 감기나 독감도 위험하기 때문에 밖에 나갈 때는 꼭 마스크를 다니곤 했다. 아내는 밖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서 감염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족들.. 2022. 2. 5.
아이 평균 생존기간이 18개월이라는 삼중음성 유방암에 걸린 아내가 4년 반 동안 살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아내가 떠나고 남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고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14년 넘게 같은 집에서 살고 매일밤 침대 옆자리에서 자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저 멀리 있어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죽은 후에 죽음이라는 것이 바로 내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마음먹고 문 하나만 열면 바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말이다. 아이는 이런 나를 뒤에서 꼭 붙들고 못 가게 하는 존재이다. 아내가 투병 중에도 열심히 먹이고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아이니까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최대한 .. 2022. 2. 3.
관성의 법칙 관성의 법칙이 물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도 작용하는 것 같다. 아내가 처음 암 선고를 받은 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언가를 집중해서 생각하거나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아내를 살려야 하고, 아내가 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은 아내가 말기로 접어들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머리로는 알아서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다니고 영정사진과 납골당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아내를 살리고 싶어 했다. 이 마음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까지 이어졌다. 임종을 보고, 화장하는 과정까지 보고, 유골을 납골당에 넣고 왔는데도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듯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아내는 죽었어. 이제 그만해'라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떠난 후 1년 .. 2022. 2. 3.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들 아내가 암으로 투병하는 동안에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스케치북에 쓴 글이 있다. "나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은 사람들이 고생이지" 아직 아내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던 나는 이 글을 보고 깜짝 놀라서 뭔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했는데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어버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았을까 고민해 보는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가 떠나고 이 말이 아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했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정확한 예언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참 고생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없는 삶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고, 나는 혼자서 일하고 집안일하고 아이 키우며 살고 있다. 이렇게 3가지로 적어 놓으니까.. 2022. 1. 28.
서류정리 장례가 끝나고 한동안 멍하게 지냈다. 그냥 아이 식사 챙겨 먹이고, 학교 보내고, 공부와 쉬는 시간을 챙기는 것이 제대로 정신 차리고 하는 생활의 전부였다. 아이만이 나를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이유였다. 아이가 없었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아내 잃은 남자들처럼 먹지도 않고 잠만 자다가 가끔 일어나 대충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아이가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서 같이 먹어야 했고, 점심과 저녁도 챙겨 먹어야 했고, 밤이 되면 아침에 아이를 깨우려면 제시간에 일어나기 하기 때문에 잠을 자야 했다. 아내의 육신이 세상을 떠났으니 세상에 있는 기록에서 아내가 존재를 지워야 했다. 하지만, 서류까지 정리하고 나면 진짜 아내가 사라진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그.. 2022. 1. 25.
장례 아내가 떠났다는 사실에 슬퍼할 새도 없이 할 일이 계속 있었다. 그나마 가족들이 옆에서 도와줘서 무사히 장례절차를 끝마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장례지도사를 비롯해 화장장 예약, 장례식장 사용, 음식에 대한 각종 비용에 대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장례식장에 올려놓을 아내의 사진도 필요했다. 며칠 전에 컴퓨터를 뒤져 봤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투병생활을 하느라 정상적인 모습이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아내가 사진에 찍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장난으로라도 찍으면 화를 내곤 해서 정상적으로 찍은 사진 자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있는 사진은 아이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찍은 거라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와 놀러 갔던 어느 카페에서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아주 편안하고 담.. 2022. 1. 20.
이별 아내의 마지막이 다가오자 병원에서 편안히 있다가 떠날 수 있도록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해 가며 리스트를 뽑았고 찾아가서 병동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결국 선택한 것은 집 가까이에 있는 병원이었다. 호스피스 병상이 다 차서 자리가 없지만 일단 일반병실에 입원해 있다가 자리가 나면 옮겨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사설 구급차를 타고 집 근처의 병원으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가서 검사를 받기 시작했고 병원장이 직접 와서 현재 상태를 체크해 주었다. 검사가 끝난 후에 병실로 이동했다. 이 병원도 의사와 간호사가 따뜻하게 아내를 보살펴 주었고, 무엇보다 장점은 집에서 가까워 아이가 자주 올 수 있는 거였다. 전에 있던 병원은 멀어서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갔지만 이 병원은.. 2022. 1. 19.
점점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일이 바빠서 몇 달 동안 아내가 병원에 갈 때 함께 가지 못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기도가 좁아져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입원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함께 갔다. 하지만, 이후에 아내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서 기도에 관을 꽂고 목 쪽으로 구멍을 내서 거기로 숨을 쉬도록 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잘 되면 관을 빼고 다시 입과 코로 숨을 쉴 수도 있다고 했고, 대신 입으로 숨을 쉴 수 없으니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관은 끝까지 빼지 못했고 아내의 목소리도 다시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솔톤의 맑고 깨끗한 아내의 목소리를 참 좋아해서, 회사에서 일하다가 졸리면 전화해서 잠 좀 깨게 .. 2022. 1. 17.
재발 수술이 끝나고 회복된 후에는 행복한 날들만 계속되었다. 아프기 전처럼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외식도 했다. 항암치료가 끝났기 때문에 아내의 머리는 다시 자라기 시작했는데 짧은 스포츠머리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다듬어 가며 길렀다. 수술 후 몇 달 안 되는 기간 동안 그전까지 해 보지 못 한 새로운 경험도 몇 번 했다. 이것들이 마치 회복을 축하한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는 '김제동의 톡투유'라는 프로그램에 응모했는데 뽑혀서 방청하게 되었고, 그 후 얼마 안 있어 멜론에서 응모한 복면가왕 방청이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톡투유는 녹화시간이 4시간 정도 되었는데 김제동의 진행이 재미있긴 했지만 한 번도 안 쉬고 내리 해서 너무나 힘들었다. 복면가왕은 내가 파일럿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 2022. 1. 17.
항암치료, 수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보통 항암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은 아주 독하다. 약물을 대개 혈관으로 주입하는데 얼마나 독하면 혈관이 상해서 어느 정도 항암치료에 사용된 혈관은 더 이상 주삿바늘을 꽂지 못 하고, 계속 손상되지 않은 새로운 혈관을 찾아서 사용하게 된다. 아내는 치료받는 동안 참 씩씩했다. 우유부단하고 걱정이 많긴 했지만, 원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힘든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린아이를 두고 빨리 떠날 수가 없어서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메이저급 병원은 보통 항암치료를 할 때 보통 1~3주 주기로 병원에 방문해 진료 전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만족하면 항암치료를 시행한다. 진료 전 검사라는 것이 .. 2022. 1. 14.
암 선고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그 주 토요일에 아이와 축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전날 아내가 갑자기 토요일에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보호자와 결과를 보러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 살이 많이 쪄서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리 큰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서 아내와 함께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는 병원에 같이 가자는 말을 할 때부터 심각한 표정이었던 것 같고, 병원에서는 웬만한 병이 아니고서는 보호자를 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TV 드라마에서 출연 인물들이 병원에 보호자 데리고 가는 걸 많이 봐 놓고 그때는 왜 .. 2022. 1. 14.
결혼 그녀와 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결혼했다. 나는 처음 만날 때부터 결혼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결혼까지 가는 과정에서 굳이 큰일이라고 찾는다면 내가 맹장수술을 한 것 정도다. 그것도 결혼식 3주 전에. 어느 날 몸살처럼 몸에 열이 나고, 신기하게도 누워서 왼쪽 다리를 올려 보면 하나도 안 아픈데 오른쪽 다리를 들 때만 아픈 거였다. 마침 얼마 전에 회사 선배가 맹장수술을 하면서 설명한 얘기와 정확하게 일치해서 응급실로 갔고 맹장을 떼어내고 4일 정도 입원 후에 퇴원했다. 이것 때문에 결혼식 후 폐백 때 신랑이 신부를 업는 건 하지 못 했다. 거의 나은 상태이긴 했지만 수술부위가 살짝 뭉치는 느낌이 있어서, 괜히 무리하다가 신혼여행을 못 가는 사태가 벌어질까.. 2021. 7. 17.
첫 만남 20대 후반부터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열심히 연애도 하고 소개팅도 나갔다. 몇 년 동안 열심히 만나고 사귀어 보기도 했지만 매번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상대가 없었다. 긴 시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게 되자 '참 결혼이라는 것이 노력으로는 어려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혼한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당시는 결혼 적령기라고 불리는 나이여서 소개팅 기회도 많이 생겼는데, 거의 1~2주에 한 번은 만났던 것 같다. 조금만 지나면 노총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대부분 1번 만나서 괜찮다는 느낌이 없으면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번 소개팅 상대의 사진을 봤는데, 보는 순간 '아,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 2021. 7. 17.
프롤로그 1년 8개월 전에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년 반 동안의 힘겨운 투병생활을 뒤로하고. 아내와 만났을 때부터 암의 발견, 투병생활, 임종,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생각나는 대로 해 보려고 한다. 1년 넘게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쉽게 시작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힘든 기억을 다시 꺼냈다가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데, 요즘 점점 기억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걸 느끼면서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사실 첫 줄을 쓴 후에 다시 읽고 나니까, 가슴이 아파 오면서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살아났다. 트라우마 치료 방법이 같은 상황을 자꾸 반복해서 경험시켜서 무뎌지게 하는 거라고 하던데, 나도 기억.. 2021. 7. 7.
쿨대디 (1)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선우가 등교하기 위해 문을 나서기 전 최소한의 인사를 남기고 빠져 나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쉽게 보내 줄 수 없다는 듯 선우의 뒤통수에 잔소리를 날리기 시작했다. "준비물은 다 챙겼니? 어제 했던 숙제 가방에 잘 넣었어? 신발주머니는 챙겼니? 길 건널 때 차 조심하고. 대답 안 하니?"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나가려고 하다가 엄마가 쫓아 나와 한 번 더 잔소리를 할까 봐 결국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챙겼어요."하고 대답하며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려서 밀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 또다른 소리가 들려 왔다. "잠깐 아들. 같이 나가자." 선우는 나가려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기다렸다. 만나기만 하면 잔소리를 쏟아내는 엄마에 비해 아빠는 그나마 잔소리도 .. 2019. 5. 16.
34 맥북에어의 전원을 켜고 Wi-Fi를 검색하니 무선공유기 하나가 잡혔다. 이것을 선택해서 접속하려고 하자 비밀번호가 필요했다."형, 이거 공유기 비밀번호가 뭐예요?" 앤더슨이 블랙라이더에게 물었다. "어, tpdnjfgh" 블랙라이더가 대답했다.앤더슨은 무선공유기에 접속한 후 빠르게 프로그램을 띄우고 이것저것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랙했다. 잠시후 파일을 열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앤더슨은 나머지 두 사람의 놀란 표정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이교수와 블랙라이더는 그 목소리가 김호준비서관의 것이라고 금방 알아 차리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앤더슨을 쳐다보았다."이거 챙겨 올 시간이 있었나? 지난번에 도망 나오면서 폭파하는 바람에 같이 사라진 줄 알고 이게 어디 있었던 거냐?" 블.. 2017. 6. 11.
33 터널 안의 감시카메라의 영상으로 김비서관과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을 지켜 보던 이교수는 위험을 직감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면 진작에 그냥 지나갔을 텐데 안을 자세히 둘러 보는 것이 밖은 충분히 살펴 보았고 마지막 의심이 가는 곳을 터널로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결심이 선 듯 이교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모두 1분 안에 가장 필요한 것만 간단히 챙겨서 여기로 모여요. 화순이는 방에 가서 아주머니 모시고 나오고."블랙라이더는 특별히 챙길 것이 없어서 바로 아주머니방으로 향했고, 앤더슨은 자기방으로 가서 처음 이 곳에 올 때 가져 왔던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이교수는 벽장의 문을 열고 거기서 자동차 스마트키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리모콘 하나를 꺼내서 주머니에 넣었다. 모두 모였을 때 모니터에 김비서관과.. 2017. 6. 4.
32 무기도입비리 뉴스 후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예전부터 무기도입할 때는 으레 비리가 있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기도입과 비리는 거의 동의어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액수의 비리의 계약서까지 공개되니 어딜 가나 몇 명만 모이면 무기도입비리에 관한 대화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다들 그돈이면 늙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 있고, 대대손손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는 넋두리도 자주 했다.그런데, 며칠이 지나다 보니 언론에서 이 비리에 관해서 언급하는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검찰도 공개된 계약서나 사진 등이 위조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도 특검을 실시하는 문제에 대해 누구를 특별검사로 임명할지와 기간을 언제까지로 할지에 .. 2017. 5. 27.
31 휴식 후에 세 명은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 조금 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다시 전투모드로 돌입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이교수는 앤더슨에게 이야기했다."앤더슨, 지난번에 조사한 내용을 언론에 터뜨릴 때 어떻게 했었죠?" "어떤 케이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아, 그 뭐였더라.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기억력이 떨어지네요." "모든 언론사에 다 뿌릴 때도 있었고, 신뢰가 가는 한 곳에만 보낸 적도 있습니다." "이번 경우는 몇 군데만 보냈다가 데스크에서 킬해 버려서 세상에 나오지도 못 하고 묻혀 버리고 운 나쁘면 거기서 추적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모든 언론사에 뿌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교수님, 그럼 지금 바로 뿌릴까요?" "그래요. 일단 뿌려 놓고 반응.. 2017. 5. 21.
30 앤더슨은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회의실에 있는 컴퓨터로 복사하고 만약에 대비해 외부에 있는 서버에도 복사했다. 그리고 회의실 벽에 붙어 있는 대형모니터에 영상을 출력되도록 한 후에 영상을 실행했다. 드론이 출발해 담장 위에 멈춰서 있는 동안 김비서관과 스티브정이 만나 악수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이때 이교수는 "잠깐 멈춰 보세요."라고 했다. 앤더슨은 재빨리 영상 재생을 멈췄다."저 사람들이 김비서관과 스티브정인가요?" 교수가 물었다. "예. 왼쪽이 김비서관인 것 같고 오른쪽이 스티브정인 것 같습니다." 블랙라이더가 대답했다. "앤더슨 이 화면 좀 캡쳐해 주세요." 교수가 얘기하자, 앤더슨은 화면을 캡쳐한 후 파일을 저장했다. "자, 계속 볼까요?" 교수가 얘기했다. 앤더슨은 화면을 이어서 재생시켰다.화면.. 2017. 5. 7.
29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블랙라이더와 앤더슨은 나란히 앉아 앞에 있는 길로 언제 차가 지나갈지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진 않았었지만 막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자니 시간이 슬로우비디오처럼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한참이 지난 것 같은 데도 차가 보이질 않아서 시계를 보면 겨우 2~3분이 지나 있었고, 그런 일을 몇 번 반복하다가 스스로 너무 조바심을 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번엔 정말 오래 참고 참다가 시계를 봐도 불과 5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앤더슨이 기다리다 지쳐서 블랙라이더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형, 진짜 시간 안 가네요. 언제 오는 거죠?" "야, 조용"이라고 조용하게 외치며 블랙라이더가 급하게 오른손 검지.. 2017. 4. 8.
28 3명 모두 회의실에 앉자 앤더슨이 먼저 입을 뗐다."아주머니 굉장하시네요. 요리도 잘 하시고 강심장이시네요. 겉으로 보기엔 그냥 옆집 사는 아주머니 같은데." "아주머니가 젊었을 때는 도시에서 살면서 연극배우도 하고 완전히 도시여자였다 아이가. 근데 아저씨하고 사랑에 빠져 결혼하면서 여기로 따라 내려 오면서 저렇게 사시는 거지. 너는 아직 한 번도 못 들었지만 교수님하고 나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너도 이제 자주 듣게 될 거다." "어쩐지 보통 시골 아주머니하고 느낌이 다르다 했어요." 그때 이교수가 말을 시작했다."쟤들이 우리 턱밑까지 왔다 갔으니 우리도 뭔가 일을 시작해야겠죠? 화순아, 앤더슨이 김비서관 핸드폰에서 꺼내 온 음성녹음파일 좀 틀어 봐." 블랙라이더가 컴퓨터를 켜자 화면이 벽면에 붙.. 2017. 1. 8.
27 앤더슨을 놓쳤다는 소식을 들은 김비서관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컴퓨터쟁이 회사원 하나를 못 잡았다고? 너희들 밥 먹고 맨날 하는 짓이 그건데,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죄송합니다. 저희 차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 차 핑계야? 전국에 CCTV 쫙 깔려 있는데 그건 뒀다 뭐 하게?" "그놈이 CCTV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버려서..." "마지막으로 CCTV에 잡힌 곳이 어딘데? 그 주위 싹 뒤져. 그리고, 차량번호 알잖아. 주변에 버려진 차나 혹시 또 움직일지 모르니까 CCTV 계속 감시하고 있어."이때 김비서관의 전화에서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놀란 눈으로 방 밖으로 나가서 복도 구석에서 전화를 받았다. 김비서관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고 전화기에서 흘러나.. 2016. 12. 31.
26 "혹시 나에 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나요?" "아니요. 저도 정신없이 쫓기다가 방금 여기에 와서 무슨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당황스럽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좋을까요? 음, 우선 이번에 휴대폰 해킹은 내가 의뢰했던 거예요. 그리고, 지난번에 온성제약 건도 제가 의뢰했던 거고요." "두 가지 일에 무슨 연관이 있으신데 저에게 사건을 의뢰하셨던 건가요?" "엄밀히 말하면 두 가지 모두 나하고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요." "직접적으로 관련도 없는 일인데 그렇게 많은 돈을 주신 거예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이나고 있는 일이고, 나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니까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돈의 가치라는 것이 상대적인 거라서 똑같은 액수의 돈도 어떤 사.. 2016.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