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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딸린 홀아비로 살아가기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굳이 쓸 일이 생길까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행동하는 것 같아서 여기에 욕이라도 하면서 풀까 하고 글을 시작한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는데. 나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다른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 하는 것 같다. 애 딸린 홀아비는 아빠와 엄마 역할을 혼자서 모두 해내야 한다.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고, 집안일(청소, 요리)을 해야 하고, 아이의 식사와 학교생활 및 공부를 챙겨야 한다. 정말 일주일 내내 바쁘다. 남편이 직장일 외에 집안일에 신경을 안 써 주는 워킹맘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비슷할 것 같다. 그래도 워킹맘은 남편이 돈이라도 벌어도 주고 집안일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닐 테니까 다르긴 하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집안의 모든 문제.. 2023. 12. 16.
보험금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모든 상속처리는 끝냈는데 암보험 사망처리는 3년 반이 넘도록 안 한 채로 놔두고 있었다. 딱히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귀찮기도 하고 보험금 청구할 때 제출하는 서류 중에 사망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서류에 아내 이름 옆의 '사망'이라는 글자가 보기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보험금 청구가 끝나고 깨닫게 되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해야겠다. 보험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문의하고 정부24 사이트에 접속해서 필요한 서류를 출력했다. 제적증명서는 온라인 출력이 불가능해서 주민센터에 가서 받았다. 그냥 보험금 수령이 아니고 사망으로 인한 상속자의 보험금 수령이라 모든 상속자들의 서류가 필요해서 꽤 복잡했다. 참, 보험금 청구를 미룬 이유가.. 2023. 6. 4.
위안 힘든 마음을 안고 사는 것은 참 힘들다. 끊임없이 마음의 위안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나만 이런가? 나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기사를 보든 TV를 보든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나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꼭 읽거나 본다. 그런 내용을 보면 눌러 두었던 나의 감정이 살아나서 힘들고 눈물도 가끔 흘린다. 어쩌면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눈물을 흘려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나만 이런 감정을 갖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면서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외에도 일상 속에서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루틴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은 드립커피를 마신다.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서 올린 .. 2022. 2. 14.
살아내기 아내가 암에 걸리기 전까지 내 인생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태어난 김에 사는 느낌이었다. 때가 되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고, 취직하고,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아이도 생겼다. 모든 것이 누구나 아는 방식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삶의 목표나 무언가를 이루고 싶거나 하는 것도 딱히 없었다. 삶의 목표가 없는 것이 대학 시절에 도를 닦는 사람들과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를 아십니까'류의 사람들이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대답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에게 무언가 답을 알려 주지 않을까 해서 따라가서 몇십만 원의 제사비용 같은 것을 내고 제사 비슷한 것도 지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만나면 하는 얘기가 이.. 2022. 2. 13.
항암 민간요법 이번 글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의견이고 저는 의학적 지식이 없습니다. 이 글을 따라 했다가 생기는 문제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암 치료를 위해서는 양방병원에서 하는 다양한 방법 외에도 다양한 민간요법이 존재한다. 아내는 거의 끝까지 병원에서 하는 항암약물치료, 방사선 치료 외에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항암약물치료의 경우 몸의 면역력이나 간수치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몸이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치료와 병행할 수가 없다. 특히 버섯이나 약초 등의 민간요법은 대부분 간수치가 올라간다. 그래서, 이런 민간요법을 하면 간수치가 올라가서 항암약물치료를 제때 할 수가 없습니다. 몇 년간 지켜본 결과 항암약물치료는 암세포에 확실히 효과가 있다.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덜해지거나 암세포가 약간 커지는 경우도 .. 2022. 2. 6.
명절 홀아비가 되고 나니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부럽다. 단, 둘이 서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부부 사이가 좋거나 아니면 서로 얘기도 거의 안 하고 셰어하우스의 메이트 정도의 관계라도 최소한 가끔 안부는 묻고 집안일을 단 10%라도 나눠서 할 순 있으니까. 사실 나 말고 누군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길 가다가 가장 부러운 부부는 손 잡고 걸어가는 부부이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자주 손 잡고 걸어 다니기도 했고 예전에 내 꿈이 나이 들어서 아내와 손 잡고 산책 다니는 거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1년에 딱 두 번 다른 부부들이 전혀 부럽지 않은 날이 있다. 제목에도 있듯이 명절에는 전혀 안 부럽다. 그만큼 그동안 명절이 지옥 같았다는 뜻이다. 씨발 좇같은 시댁. 시댁이 전혀.. 2022. 2. 6.
전염병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져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아내가 완치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면 적당한 시기에 사람들과 인사하고 잘 떠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내가 4개월만 늦게 떠났다면 장례도 제대로 못 하고 아는 사람들 뿐 아니라 가족과도 제대로 인사를 못 하고 떠났을 것이다. 항암치료가 암세포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세포들까지 꽤 많이 죽이기 때문에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약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도 이런 상태에서 몸에 들어가면 빠르게 퍼져서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음식도 날 것은 못 먹고 익힌 음식만 먹어야 한다. 환절기에 잘 걸리는 감기나 독감도 위험하기 때문에 밖에 나갈 때는 꼭 마스크를 다니곤 했다. 아내는 밖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서 감염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족들.. 2022. 2. 5.
아이 평균 생존기간이 18개월이라는 삼중음성 유방암에 걸린 아내가 4년 반 동안 살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아내가 떠나고 남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고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14년 넘게 같은 집에서 살고 매일밤 침대 옆자리에서 자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저 멀리 있어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죽은 후에 죽음이라는 것이 바로 내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마음먹고 문 하나만 열면 바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말이다. 아이는 이런 나를 뒤에서 꼭 붙들고 못 가게 하는 존재이다. 아내가 투병 중에도 열심히 먹이고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아이니까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최대한 .. 2022. 2. 3.
관성의 법칙 관성의 법칙이 물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도 작용하는 것 같다. 아내가 처음 암 선고를 받은 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언가를 집중해서 생각하거나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아내를 살려야 하고, 아내가 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은 아내가 말기로 접어들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머리로는 알아서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다니고 영정사진과 납골당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아내를 살리고 싶어 했다. 이 마음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까지 이어졌다. 임종을 보고, 화장하는 과정까지 보고, 유골을 납골당에 넣고 왔는데도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듯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아내는 죽었어. 이제 그만해'라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떠난 후 1년 .. 2022. 2. 3.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들 아내가 암으로 투병하는 동안에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스케치북에 쓴 글이 있다. "나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은 사람들이 고생이지" 아직 아내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던 나는 이 글을 보고 깜짝 놀라서 뭔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했는데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어버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았을까 고민해 보는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가 떠나고 이 말이 아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했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정확한 예언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참 고생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없는 삶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고, 나는 혼자서 일하고 집안일하고 아이 키우며 살고 있다. 이렇게 3가지로 적어 놓으니까.. 2022. 1. 28.
서류정리 장례가 끝나고 한동안 멍하게 지냈다. 그냥 아이 식사 챙겨 먹이고, 학교 보내고, 공부와 쉬는 시간을 챙기는 것이 제대로 정신 차리고 하는 생활의 전부였다. 아이만이 나를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이유였다. 아이가 없었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아내 잃은 남자들처럼 먹지도 않고 잠만 자다가 가끔 일어나 대충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아이가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서 같이 먹어야 했고, 점심과 저녁도 챙겨 먹어야 했고, 밤이 되면 아침에 아이를 깨우려면 제시간에 일어나기 하기 때문에 잠을 자야 했다. 아내의 육신이 세상을 떠났으니 세상에 있는 기록에서 아내가 존재를 지워야 했다. 하지만, 서류까지 정리하고 나면 진짜 아내가 사라진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그.. 2022. 1. 25.
장례 아내가 떠났다는 사실에 슬퍼할 새도 없이 할 일이 계속 있었다. 그나마 가족들이 옆에서 도와줘서 무사히 장례절차를 끝마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장례지도사를 비롯해 화장장 예약, 장례식장 사용, 음식에 대한 각종 비용에 대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장례식장에 올려놓을 아내의 사진도 필요했다. 며칠 전에 컴퓨터를 뒤져 봤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투병생활을 하느라 정상적인 모습이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아내가 사진에 찍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장난으로라도 찍으면 화를 내곤 해서 정상적으로 찍은 사진 자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있는 사진은 아이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찍은 거라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와 놀러 갔던 어느 카페에서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아주 편안하고 담.. 2022. 1. 20.
이별 아내의 마지막이 다가오자 병원에서 편안히 있다가 떠날 수 있도록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해 가며 리스트를 뽑았고 찾아가서 병동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결국 선택한 것은 집 가까이에 있는 병원이었다. 호스피스 병상이 다 차서 자리가 없지만 일단 일반병실에 입원해 있다가 자리가 나면 옮겨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사설 구급차를 타고 집 근처의 병원으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가서 검사를 받기 시작했고 병원장이 직접 와서 현재 상태를 체크해 주었다. 검사가 끝난 후에 병실로 이동했다. 이 병원도 의사와 간호사가 따뜻하게 아내를 보살펴 주었고, 무엇보다 장점은 집에서 가까워 아이가 자주 올 수 있는 거였다. 전에 있던 병원은 멀어서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갔지만 이 병원은.. 2022. 1. 19.
점점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일이 바빠서 몇 달 동안 아내가 병원에 갈 때 함께 가지 못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기도가 좁아져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입원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함께 갔다. 하지만, 이후에 아내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서 기도에 관을 꽂고 목 쪽으로 구멍을 내서 거기로 숨을 쉬도록 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잘 되면 관을 빼고 다시 입과 코로 숨을 쉴 수도 있다고 했고, 대신 입으로 숨을 쉴 수 없으니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관은 끝까지 빼지 못했고 아내의 목소리도 다시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솔톤의 맑고 깨끗한 아내의 목소리를 참 좋아해서, 회사에서 일하다가 졸리면 전화해서 잠 좀 깨게 .. 2022. 1. 17.
재발 수술이 끝나고 회복된 후에는 행복한 날들만 계속되었다. 아프기 전처럼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외식도 했다. 항암치료가 끝났기 때문에 아내의 머리는 다시 자라기 시작했는데 짧은 스포츠머리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다듬어 가며 길렀다. 수술 후 몇 달 안 되는 기간 동안 그전까지 해 보지 못 한 새로운 경험도 몇 번 했다. 이것들이 마치 회복을 축하한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는 '김제동의 톡투유'라는 프로그램에 응모했는데 뽑혀서 방청하게 되었고, 그 후 얼마 안 있어 멜론에서 응모한 복면가왕 방청이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톡투유는 녹화시간이 4시간 정도 되었는데 김제동의 진행이 재미있긴 했지만 한 번도 안 쉬고 내리 해서 너무나 힘들었다. 복면가왕은 내가 파일럿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 2022. 1. 17.
항암치료, 수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보통 항암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은 아주 독하다. 약물을 대개 혈관으로 주입하는데 얼마나 독하면 혈관이 상해서 어느 정도 항암치료에 사용된 혈관은 더 이상 주삿바늘을 꽂지 못 하고, 계속 손상되지 않은 새로운 혈관을 찾아서 사용하게 된다. 아내는 치료받는 동안 참 씩씩했다. 우유부단하고 걱정이 많긴 했지만, 원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힘든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린아이를 두고 빨리 떠날 수가 없어서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메이저급 병원은 보통 항암치료를 할 때 보통 1~3주 주기로 병원에 방문해 진료 전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만족하면 항암치료를 시행한다. 진료 전 검사라는 것이 .. 2022. 1. 14.
암 선고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그 주 토요일에 아이와 축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전날 아내가 갑자기 토요일에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보호자와 결과를 보러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 살이 많이 쪄서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리 큰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서 아내와 함께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는 병원에 같이 가자는 말을 할 때부터 심각한 표정이었던 것 같고, 병원에서는 웬만한 병이 아니고서는 보호자를 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TV 드라마에서 출연 인물들이 병원에 보호자 데리고 가는 걸 많이 봐 놓고 그때는 왜 .. 2022. 1. 14.
결혼 그녀와 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결혼했다. 나는 처음 만날 때부터 결혼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결혼까지 가는 과정에서 굳이 큰일이라고 찾는다면 내가 맹장수술을 한 것 정도다. 그것도 결혼식 3주 전에. 어느 날 몸살처럼 몸에 열이 나고, 신기하게도 누워서 왼쪽 다리를 올려 보면 하나도 안 아픈데 오른쪽 다리를 들 때만 아픈 거였다. 마침 얼마 전에 회사 선배가 맹장수술을 하면서 설명한 얘기와 정확하게 일치해서 응급실로 갔고 맹장을 떼어내고 4일 정도 입원 후에 퇴원했다. 이것 때문에 결혼식 후 폐백 때 신랑이 신부를 업는 건 하지 못 했다. 거의 나은 상태이긴 했지만 수술부위가 살짝 뭉치는 느낌이 있어서, 괜히 무리하다가 신혼여행을 못 가는 사태가 벌어질까.. 2021. 7. 17.
첫 만남 20대 후반부터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열심히 연애도 하고 소개팅도 나갔다. 몇 년 동안 열심히 만나고 사귀어 보기도 했지만 매번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상대가 없었다. 긴 시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게 되자 '참 결혼이라는 것이 노력으로는 어려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혼한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당시는 결혼 적령기라고 불리는 나이여서 소개팅 기회도 많이 생겼는데, 거의 1~2주에 한 번은 만났던 것 같다. 조금만 지나면 노총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대부분 1번 만나서 괜찮다는 느낌이 없으면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번 소개팅 상대의 사진을 봤는데, 보는 순간 '아,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 2021. 7. 17.
프롤로그 1년 8개월 전에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년 반 동안의 힘겨운 투병생활을 뒤로하고. 아내와 만났을 때부터 암의 발견, 투병생활, 임종,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생각나는 대로 해 보려고 한다. 1년 넘게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쉽게 시작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힘든 기억을 다시 꺼냈다가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데, 요즘 점점 기억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걸 느끼면서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사실 첫 줄을 쓴 후에 다시 읽고 나니까, 가슴이 아파 오면서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살아났다. 트라우마 치료 방법이 같은 상황을 자꾸 반복해서 경험시켜서 무뎌지게 하는 거라고 하던데, 나도 기억.. 2021.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