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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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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11. 12.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앉아 있는데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이과장이 앤더슨에게 얘기했다.

"김대리, 점심시간이다. 오늘은 구내식당 메뉴가 뭘까?"
"과장님, 저는 일이 있어서 따로 먹을께요."
"그래? 그럼 맛있게 먹어라."
"네. 과장님도 식사 맛있게 하세요."

다른 직원들이 모여 식사하러 나간 후에 앤더슨은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근처 커피점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에 받아서 누군가 자신을 뒤에서 볼 수 없게 벽을 등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와이파이 에그를 꺼내서 켜고 맥북에어도 꺼내서 부팅했다. 커피점의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보안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에그를 사용하거나 스마트폰을 테더링해서 사용했다.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아메리카노도 한 모금 마셨다.

부팅 후에 와이파이를 접속하고 경유서버에 들어가 짝퉁 페이스북 계정 주인이 메일을 열어 보았는지 확인했다. 역시 예상대로 메일을 열어 보았다. 메일을 열 때 설치된 트로이목마가 수집한 자료 중에는 인터넷 쇼핑 화면이 캡쳐되어 있었다. 다행이 여기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까지 그 사람에 관한 정보가 모두 담겨 있어 이젠 찾아 가서 확인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상태인데 이제 어떻게 이 사람이 짝퉁 계정에 의뢰인의 사진을 가져다가 자기 것처럼 쓰는 것을 막느냐는 것이다. 찾아가서 붙잡고 협박이라도 해야 할까? 이런 짓을 하는 사람에게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렇게 하려면 블랙라이더의 도움이 필요했다.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앤더썬"
"형, 그 짝퉁계정 주인 찾았어요."
"너 오늘 휴가 냈냐? 그런 거 찾으면 매일 저녁 때 전화하더니 오늘은 대낮에 전화를 하냐?"
"노트북 하나 장만했어요. 그래서, 점심시간에 나와서 보는 거예요."
"역시 돈이 좋긴 좋다. 덕분에 일하는 속도가 좀더 빨라졌네. 아니,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든 건가? 근데 그 미친짓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
"일단 이름, 전화번호, 주소 정도까진 알아 냈어요. 근데,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만 두게 해야 할까요? 형이 찾아가서 협박할 수 있어요?"
"내가 아무리 돈을 좋아하고 힘이 있어도 그렇게 해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 것 같아서, 제가 생각한 게 있는데요. 일단 제가 보내는 주소로 가서 그 사람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세요. 마침 내일이 토요일이니까 집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그런 걸 몰래 찍으세요."
"그렇지. 나는 그렇게 안 보이는 데서 은밀하게 일하는 스타일이지. 니가 나에 대해서 파악을 좀 했구나. 대포 만한 망원렌즈 들고 출동해서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찍어서 대령할께. 쉽게 알아 볼 수 있게 사진도 있으면 같이 보내라."
"네. 그럼 바로 보낼께요."

아무래도 극약처방보다는 정중하고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앤더슨은 짝퉁 계정 주인에게 정중하게 이런 행동을 중지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제목 : 제 페이스북 사진의 무단 도용을 중지해 주세요

당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들어가 보고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사진을 가져다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당신의 마음을 어떨까요?
정중하게 요청을 드립니다.
만약, 제 사진을 모두 지우지 않으시면 당신이 후회할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번이 마지막 요청입니다.

메일을 보내고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남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고 가방을 싸서 사무실로 다시 돌아갔다.

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메일을 확인해 보니 아직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답장이 오늘 안에 안 올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예 자신이 보낸 메일을 무시해 버릴 수도 있는데 계속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낭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때가 되어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기로 결정했다. 찬장을 여니 마침 육개장칼국수가 있어서 먼저 냄비에 물을 500cc 넣고 가스렌지의 불을 켰다. 그리고, 포장을 뜯어 건더기스프와 액상스프를 모두 투하했다. 물이 팔팔 끓자 면을 넣고 어느 정도 면이 부드러워지자 면을 젓가락으로 흔들어 풀어 주고 뒤집어 주면서 면이 빠르게 익도록 했다. 면이 다 풀어지자 연어캔을 따서 기름을 따라내고 건더기를 모두 냄배에 투하했다. 그리고, 계란을 하나 깨뜨려 투하하곤 풀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계란 옆의 면을 들어올려 계란이 보이지 않도록 잘 덮었다. 2분 정도 후에 면이 다 익자 꺼내서 김장김치와 함께 식탁으로 옮겼다.

계란 위의 면을 옆으로 치우자 계란 흰자만 연하게 익어 있었다. 먼저 숟가락으로 계란의 옆구리에 찔러 넣었다가 꺼내자 숟가락 위에 계란의 노란 피가 흥건했다. 피맛은 일품이었다. 한 번 더 옆구리를 찔러 계란의 노란 피를 모두 마신 후에 보들보들한 흰자와 라면을 함께 젓가락을 집어 냄비 뚜껑에 올려 놓고 후후 분 다음 입에 넣고 후루룩 하며 빨아 올렸다. 면을 씹다가 김장김치 한쪽을 집어 입안에 넣고 같이 씹자 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면을 다 먹은 후에 햇반을 돌려 남은 라면 국물에 넣고 잘 섞어 주었다. 원래도 깊고 진한 국물맛의 육개장칼국수인데 연어까지 더해져 더 맛있어졌다. 밥과 국물까지 싹싹 긁어 먹고 나니 탕이나 전골을 하나 먹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TV를 틀어 미드를 두 편 본 후에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마침 1분 전에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바로 메일을 열었다.

제목 : Re: 제 페이스북 사진의 무단 도용을 중지해 주세요

마음대로 해 보세요.
법적으로 처벌할 수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실지 궁금하네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남의 사진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면 쉽게 물러 서진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에 내용을 확인한 앤더슨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미 개인정보까지 모두 아는데 찾아가서 폭력을 행사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내일쯤이면 그보다 훨씬 큰 치욕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참기로 했다. 잠자리에 누워 자려고 했지만 이 짝퉁 계정 주인이 생각날 때마다 화가 나서 한참동안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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