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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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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12. 11.

일요일 오전 11시쯤 앤더슨이 늦잠을 즐기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10번 정도 울릴 때까지 듣지도 못 하다가 잠결에 어렴풋이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들자 힘들게 일어나서 전화기를 집어 들어 전화를 받았다.


전날 아침에 만나서 영화를 보기로 했던 혜진이 만나자마자 갑자기 파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계획에 없던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 온 후라서 피곤했던 것이다. 평소에 장거리 운전을 즐기지 않는 그였기에 적당히 을왕리나 멀리 가면 대부도 정도까지만 갔다가 왔으면 했지만 그녀가 콕 찍어서 파란 바다라고 얘기한 걸 보면 분명히 동해를 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머리 속에서 그녀의 의도에 대한 분석을 끝내고 강릉에 가자고 하자 팔짝팔짝 뛰며 기뻐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기쁘게 오늘의 운명에 대해서 받아 들이기로 마음 먹고 거침없이 가속페달을 밟아 동쪽으로 향했다. 영동고속도로 일부 구간은 정체되었지만 대부분 구간이 막힘 없었고 미니는 밟는대로 시원하게 달려 주어 걱정했던 운전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가는 도중에 점심 때가 되어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어 강릉에 가까워졌을 때쯤엔 배가 고프지 않아 먼저 안목해변으로 향했다. 도로와 차만 보이는 차 안에서 오랜시간 앉아 있어 출발할 때의 발랄함이 점점 지침으로 변해 가던 혜진이 해변에 도착해 파란 바다를 보자 '와, 바다다!'하고 소리를 치며 기뻐했다. 주차를 마치자마자 둘은 얼른 뛰어내려 해변으로 달려 갔다. 파란 동해 바다에 적당한 바람이 불어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 왔다가 쓸려 나갈 때마다 바닷물에 신발이 젖지 않기 위해 둘은 앞뒤로 뛰어 다니면서 한참동안 놀았다. 유치한 놀이가 지겨워질 때쯤 해변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 3층으로 가서 커피에 아이스크림과 생크림, 과일을 듬뿍 올린 와플을 잘라 먹으며 바다를 감상했다.

저녁 때가 되자 초당두부마을로 이동해서 순두부정식을 먹었다.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서 갓 만들어낸 순두부와 모두부는 콩의 고소함을 끝까지 뽑아낸 듯한 맛이었다. 정식에 함께 나온 생선도 아주 맛있어서 둘은 배가 잔뜩 부른데도 음식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다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앉아서 한동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밖에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너무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앤더슨이 말했다.

"벌써 어두워지네요. 혜진씨, 이제 가시죠."
"네? 어디요?"
"어디긴 어디예요. 이제 집에 가야죠."
"아, 집이요. 네. 그래요."

내심 출발할 때부터 1박2일 여행을 기대했던 혜진은 너무나 단호하게 집으로 가자는 앤더슨의 태도에 약간은 실망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직 그정도까지 가까워지진 않기도 했다는 생각과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건전한 남자라는 데 스스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늦은 시간이라 고속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빠른 시간에 서울에 도착했고 혜진을 집앞에 내려 주고 앤더슨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당일치기 강릉 여행을 다녀 오느라 지쳐서 그렇게 늦게까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네, 형"

요란스러운 전화로 일요일의 단잠을 깨운 건 역시나 블랙라이더였다.

"너 목소리가 왜 그러냐? 아직까지 자고 있었던 거냐?"
"네. 어제 여행을 좀 다녀 오느라구요."
"무슨 일이 있어도 딱 시간 되면 잠자고 일어나는 바른생활 사나이가 웬일이냐? 어디 가서 뭔 일을 했길래 니가 이렇게 늦잠을 자냐?"
"음... 그냥 데이트 좀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아니 이르진 않고, 어쨌든 무슨 일이예요?"
"너 스마트폰 해킹도 할 수 있냐?"
"아이폰은 어렵고, 안드로이드면 가능하죠. 그런데, 무슨 일인데 휴대폰까지 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좀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라. 아주 조심해서 흔적을 남기면 안 되거든. 되겠냐?"
"위험해요? 음... 그럼 최대한 안전한 방법으로 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해되 되요?"
"그래. 그게 좋겠다. 대신 보수는 두둑할 거야."
"네네. 그런데, 문자를 보내서 앱을 설치하게 해야 하는데 누가 보내는 걸로 하면 좋을까요?"
"그래? 그럼 그건 찾아서 문자로 보내 줄께."
"그리고, 뭘 알아내야 하는 거예요?"
"아참, 그걸 깜빡 했네. 핸드폰에 저장된 음성녹음파일 있을 거야. 그걸 몽땅 받아 줘라."
"네. 그럼 문자 발신자로 사용할 사람 이름 보내 주세요."

전화를 끊고 잠시 후에 블랙라이더로부터 텔레그램으로 해킹할 전화번호와 함께 문자가 도착했다.

'010-XXX-XXXX. 발신자는 청기와룸싸롱 김실장이라고 보내면 될 거야. 죽여 주는 뉴페이스가 왔다고 하면 의심없이 열어 볼 거다.'

잠 자는 중에 전화벨 소리가 깨어 아직 피로가 덜 풀린 상태였지만 다시 누워 봐도 잠이 오지 않자, 앤더슨은 씻고 제과점에 가서 빵을 사서 돌아와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고 정신을 차렸다. 컴퓨터를 켜서 안드로이드 해킹용 프로그램 소스를 찾아서 열었다. 거기에 제목을 '청기와룸싸롱 NF'로 바꿨다. 구글에 들어가 유흥업소 소개 페이지를 검색하고 검색결과에서 특히 예쁘고 고급스럽게 생긴 사진을 찾아서 정리하고 이 앱에 차례로 붙여 넣었다. 테스트로 실행해 보자 예쁜 여자들의 사진이 차례로 보였다. 겉보기엔 사진만 보이지만 실제 설치되면 스마트폰의 음성녹음파일을 찾아 앤더슨이 지정한 서버로 업로드하게 될 것이다. 실전에서도 이 앱이 제 기능을 해 주길 바라면서 설치파일을 만들어서 서버에 올렸다. 그리고, 블랙라이더가 보내 준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청와대 김호준 비서관의 핸드폰에 징징 하고 문자메시지 도착알림 진동이 울렸다. 휴일인데 비상이라고 불려 나와 별로 급하지도 않은 보고를 받느라 지루하던 차에 무슨 문자인가 호기심이 생겨 핸드폰을 열어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청기와룸싸롱 김실장입니다. 이번에 죽여주는 뉴페이스들이 여러명 들어왔습니다. 아래 앱 설치하시고 미리 초이스해서 전화 주시면 바로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이 새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름이 청기와에 김실장이 뭐냐 재수 없게. 근데 워낙 괜찮은 애들을 많이 데리고 있어서 미워할 수가 없단 말야.'

김비서관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의심없이 링크를 선택하고 앱을 설치했다. 앱을 열자 예쁜 여자들의 얼굴과 벗은 모습이 나타났다. 한장씩 넘기면서 어떤 애가 괜찮은가 천천히 살펴 보고 있는데 보고자의 발표가 끝났다.

"김비서관님 이상입니다."
"어..어, 그래. 수고했어."

김비서관은 얼른 휴대폰을 내려 놓았고 이후로 한 시간 정도 참석자들과 보고 내용에 대한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설치된 앱은 저장된 음성녹음파일들을 찾아서 서버로 업로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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