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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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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11. 27.

블랙라이더는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앤더슨이 보내 준 주소의 집 현관이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해 놓고 카메라에 커다란 망원렌즈를 장착한 채로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흥신소를 하면서 자주 하던 일이긴 하지만 이 일은 언제나 지겹고 지루한 일이었다. 더 멀리 보자면 형사 시절에는 범인을 잡기 위해 며칠 밤낮을 잠복하기도 했었다. 짝퉁 페북녀가 빨리 나오기만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데 10시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나왔다. 블랙라이더는 얼른 카메라를 들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 여자가 블랙라이더쪽으로 걸어오자 얼른 몸을 숨겼고 블랙라이더의 차 옆을 지나간 후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핸드폰을 꺼내 앤더슨이 보내 준 사진과 비교해 보니 전혀 달랐다. '에이'하며 실망의 시간을 잠깐 보낸 후에 다시 정자세로 돌아와 그 집의 현관을 다시 주시하기 시작했다. 10분쯤 후에 아까 나왔던 여자가 빵을 샀는지 제과점 봉지를 들고 다시 들어갔다.

그 후에는 한참동안 그 문이 열리지 않았다. 12시쯤 되자 블랙라이더도 배가 고파 사 왔던 빵과 우유를 먹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있는동안에도 그 문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오후 3시를 넘겼을 때 다시 그 문이 열리고 여자 한 명이 나왔다. 블랙라이더는 얼른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 나온 여자는 풀메이크업에 옷까지 깔끔하게 차려 입고 나왔다. 이번에는 블랙라이더의 차가 있는 곳의 반대쪽으로 갔기 때문에 뒷모습이 보이자 몇 장만 찍고 사진 찍기를 멈췄다. 찍은 사진을 보면서 휴대폰의 사진과 비교하니 그 여자가 맞았다. 기쁜 마음에 작은 환호를 지르며 얼른 카메라의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겼다. 노트북 화면으로 사진을 하나씩 살펴 보면서 자신이 사진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사진을 한장씩 넘기다 보니 오전에 빵을 사러 갔던 짝퉁 페북녀의 가족으로 보이는 여자의 사진이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염색한 머리 색깔과 길이가 거의 같고 키나 체형도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이 가족은 화장을 전혀 안 한 얼굴이었다.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어 사진을 앞뒤로 왔다갔다 보면서 아침에 찍은 여자와 오후에 찍은 여자를 비교해 보니 아무래도 같은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의 느낌이 너무 달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일단, 찍은 사진들을 모두 앤더슨의 이메일로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형, 사진 찍었어요?"
"그럼, 내가 누구냐?"
"그럼 언른 보내 주세요."
"벌써 보냈지. 근데 좀 이상한 게 있다."
"뭔데요?"
"그 집에서 오전에 한 명, 오후에 한 명이 나왔는데 대충 보기에는 다른 사람 같아.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같은 사람 같단 말이야. 너도 메일 열어서 사진 좀 봐봐라."
"지금 열었어요. 어디 보자. 그렇네요. 일단 느낌은 전혀 다르네요."
"그치? 그런데 머리하고 체형은 비슷하고 얼굴도 자세히 보면 얼굴형하고 코는 거의 비슷해."
"이거 맞는 것 같은데요. 오전 여자가 풀메이크업하고 차려 입으면 오후 여자가 되겠네요."
"맞지? 눈하고 얼굴색이 너무 달라서 난 오전에 찍고도 그 여자 아닌 줄 알고 있다가 좀전에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거 첨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대박인데요. 역시 형 대단해요."
"아 뭐 이 정도 갖고 대단하다고 그러냐. 내 능력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형은 겸손해지기만 하면 완벽할 것 같은데..."
"완벽하면 지루할까 봐 일부러 그러는 거다. 니가 어떻게 나의 깊은 뜻을 알겠냐."
"네. 네. 암튼 이걸로 작업 시작할 수 있겠네요. 수고하셨어요."
"이제 집에 가도 되는 거지? 하루 종일 차 안에 갇혀 있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얼른 맛있는 것 먹고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
"네. 얼른 들어가세요."

앤더슨은 받은 사진 중에서 오전에 찍은 사진을 유심히 살펴서 가장 못생기게 나온 사진을 골랐다. 그리고 전날 짝퉁 페북녀의 페이스북 계정 비밀번호를 이용해서 로그인했다. 거기에 골라 놓은 사진을 올리며 글을 작성했다.

'여러분 놀라셨죠?
사실은 이게 제 사진이예요.
지금까지 올렸던 사진들은 모두 다른 사람 사진이었어요.
올렸던 사진의 진짜 주인은 여기예요'

글을 올린 후에 짝퉁 페북녀가 이 글을 지울 수 없게 페이스북 계정의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다음날 아침 페이스북에 어떤 반응이 나왔을지 궁금한 앤더슨은 일요일임에도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짝퉁 페북녀 페이지에 들어가서 앤더슨이 올린 사진에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이거 뭐야? 우리가 그동안 뭘 보고 있었던 거야?'
'남의 사진 갖고 자기인 척 한 거야?'
'미친년이네. 누가 내 사진으로 이런 짓 할까 봐 무섭네.'

예상된 댓글이 달리자 앤더슨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이 상황을 즐기기 위해 컴퓨터를 끄고 TV를 보고 밥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 10시쯤 되어 다시 들어가 보자 댓글이 100여개 달려 있었다. 내용은 역시 욕이 주를 이루었고 내용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짝퉁 페북녀에게 경고메일을 보냈던 메일 계정에 접속해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혹시 제 사진 올리셨나요? 제발 좀 내려 주세요.'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동안 진짜 페북녀가 받았을 고통과 지난번에 자신이 경고메일을 보냈을 때 받았던 답장을 생각하면 너무 쉽게 풀어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짝퉁 페북녀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짜릿한 쾌감도 느껴졌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한동안 이 즐거움을 만끽해야겠다고 결정하고 슈퍼에 가서 맥주를 사 와서 예전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마시다가 잠들었다.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페이스북 짝퉁 계정에 댓글과 그 페북녀가 보내는 구조요청 메일을 보면서 하루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개운하게 푸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목요일에 그 계정으로 들어가 글을 모두 삭제하고 계정을 탈퇴시켰다. 사실 블랙라이더형은 일주일만 더 지켜 보자고 했지만 너무 잔인한 것 같아 그만 하기로 했다. 짝퉁페북 계정을 탈퇴한 블랙라이더가 의뢰인에게 전화를 해서 일이 완료되었고 그 여자가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 후에 앤더슨에게 전화했다.

"어, 형!"
"앤더썬, 의뢰인한테 일 완료했다고 전화했고 니 통장에 돈도 입금했다."
"의뢰인이라면 그 예쁜 여자요?"
"그렇지. 전화했더니 얼마나 좋아하고 고맙다고 하던지."
"잘 됐네요."
"참, 그렇게 고마우면 밥 한 번 사 달라고 할 걸 그랬다. 얼른 전화 끊자. 지금 바로 전화해야겠다."
"의뢰인하고 사적으로 만나면 안 된다면서요."
"농담이다. 이놈 농담하고 진담하고 구분을 못 하네."
"형 말투에서 왠지 진심이 느껴졌어요."
"진심은 무슨 진심. 그만 쉬어라."
"에이, 진심인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얼른 끊어라."
"전화하려고 빨리 끊으려는 거죠?"
"아, 아니라니까. 다시는 너하고 농담을 하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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