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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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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9. 6.


월요일은 평소처럼 한두 건의 지원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난주처럼 그렇게 결과가 기다려지지는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번째라서 무뎌진 것도 같고, 돈이 생기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는 생각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실종된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분을 위해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퇴근시간이 되자 재빨리 자리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기 어려울 것 같아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을 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가 켜지자 바로 경유서버에 접속해 수집된 정보를 하나씩 살펴 보기 시작했다.


아내인 정미화씨에 관한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실망하진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고 이에 대비해 수많은 주변인물들에 관한 정보를 조회하도록 해 놨으니까. 다음으로 의심스러운 등산동호회 남자 회원들의 정보를 하나씩 살펴 보았다.

다들 열심히 교통카드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하이패스로 고속도로 통행료를 지불하고, 마트에서 포인트카드로 포인트를 적립하고,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문자를 주고 받고 있었다. 정미화씨 외의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다들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동호회 까페에 올라온 사진마다 유독 정미화씨 옆에 서서 즐겁게 웃고 있던 이강우라는 사람에 관한 정보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짙은 눈썹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호탕하게 웃는 표정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어 보이지만 앤더슨이 보기엔 왠지 느끼하고 여자를 밝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는데 굉장히 불규칙하게 생활하고 출입국 기록이 자주 보였다. 까페에서 이 사람이 쓴 글을 보니 여행사를 운영하는데 동호회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에게 영업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일단은 크게 의심할 만한 내용이 보이지 않아 접어 두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남편인 전상득씨에 관한 정보를 보았다. 내용을 보고 흠칫 놀랐다. 서너 차례의 가정폭력 기록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정하게 다녔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이렇게 살고 있었다니,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 새삼 가까이 느껴졌다. 블랙라이더형이 이 부부 사이에 뭔가 숨겨진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앤더썬, 뭐 찾은 거라도 있나?"

"아니, 아직이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서요."

"어, 뭔데?"

"전상득씨가 가정폭력이 몇 차례 있던데, 어떻게 된 일이예요?"

"아, 그 형이 의처증이 좀 있어. 형수 입장에서는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너무나 사랑해서 그런 거라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다."

"의처증이요? 그래도 때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어요?"

"내가 알기론 그게 다야. 평소에 둘이 다닐 땐 그런 잉꼬부부가 없는데 말야. 사람은 참 모르겠어."

"그러게 말이예요. 그럼 조금 더 찾아 볼께요."

"그래, 수고하고 고맙다."

"네, 형도 잘 쉬세요."


통화가 끝난 후 다음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멍하니 있는데 퇴근길에 사온 도시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자 허기가 발동했고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냉장고에서 포도주스를 꺼내 컵에 따라 들고 소파 위에 걸터 앉았다. 주스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있다가 보니 생각이 떠올랐다. 이래서 일이 안 풀릴 땐 한 걸음 물러서서 딴짓을 해 보라고 했던가? 남편이 의처증인데 아내는 남자가 많은 등산동호회를 나간다. 그것 때문에 집에서 다투다가 폭력을 휘둘러 아내를 죽이고 시체를 처리한 후에 실종되었다고 하는 건 아닐까? 자신이 드라마와 뉴스를 너무 많이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데에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전상득에 관한 정보를 보기 시작했다. 특히 정미화씨가 실종되었다는 5월 2일 주변의 행적을 주의 깊게 살펴 보았다. 일단, 정미화씨에 관한 기록이 5월 2일 오전 이후로 사라지긴 했다. 이 부분은 전상득의 말과 일치하는 것 같다. 도로 통행정보를 살펴 보면 아침 10시경 천안방향으로 이동했다. 정미화씨는 아침 8시 30분경 아이들을 준비시켜 등교시킨 후 9시경에 동호회 사람들과 등산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간 후 부부가 집에 같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싫어하는 등산동호회에 간다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을 테고.


자신은 그저 엔지니어일 뿐 탐정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의심의 방향이 남편을 향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모아진 정보를 모두 확인해서 더 이상 볼 것도 없어서 일단은 블랙라이더형에게 현재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다음은 무얼 할지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큐보이스를 실행해 전화를 걸었다.


"앤더썬, 뭐 좀 나왔나?"

"오늘은 틀린 것 같구요. 다른 방향을 더 찾아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역시 쉽진 않구나."

"그런데, 형. 저는 자꾸 전상득씨가 의심이 가네요. TV 보면 의처증인 남편들이 폭력을 휘두르다가 살인도 하고 그러니까. 정미화씨 실종된 날도 시간의 흐름으로 봐선 둘이 같이 있었던 것 같구요."
"그 형 엄청 착한데. 그런 일 저질렀을 리가 없는데. 니가 그런 얘기 하니까 의심스럽기도 하고 그렇네. 그럼 내가 내일 좀 알아 볼께. 너도 너무 이쪽으로만 몰아 가지 말고 다른 쪽도 좀 더 찾아 봐라."

"네. 알아보고 연락 주세요. 저도 애들 좀 풀어 봐야겠네요."

"애들? 니 밑에 애들도 두고 있냐?"

"아니요. 제가 여기저기 심어 놓은 트로이목마들이요."

"아, 그 컴퓨터 바이러스 비슷한 그거 말하는 거냐?"

"네."

"난 또 누구라고. 그럼 잘 쉬어라."

"네, 형도 잘 쉬세요."


통화가 끝나고 한동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뭐라도 건질까 하는 생각에 동호회의 여자회원들에 관한 정보를 조사해 보기로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중년분들이 스마트폰을 큰 글씨로 설정해 놓고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하는 것을 자주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두 부부 뿐만 아니라 동호회 모든 남녀 회원들의 메신저 기록도 조사하도록 경유서버에 명령을 올려 놓았다.


 한 번 살인으로 흐르기 시작한 생각을 돌릴 수가 생각은 점점 한 편의 살인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도 계획적인 살인에 이은 완전범죄 영화를. 블랙라이더형이 이렇게 흘러가는 자신의 생각을 들었으면 욕을 한 번 했을 것이다.

'야 임마. 정신 차리라. 내가 괜히 이런 일을 시켜서 인간 하나 버려 놨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살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좀 더 찾아 보면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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