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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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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9. 7.


점심을 먹고 들어와 사무실에 앉아 한가롭게 포털사이트에서 인터넷뉴스를 보고 있는데 시큐보이스의 수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얼른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통화하면서 얼른 복도 구석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형"

"내가 그 형님 동네 가서 마지막으로 형수 봤던 사람들한테 좀 물어 봤는데, 형님이 차 타고 출발할 때 형수가 차 옆에서 인사했단다. 차 떠난 다음에 형수는 버스정류장으로 버스 타러 갔대. 거 봐라. 내가 뭐랬냐?"

"그렇군요. 음. 혹시 더 있다가 그 형님이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차로 데려다 준다고 가서 타고 가신 건 아닐까요?"

"니가 그럴까 봐 그 뒤까지 다 확인해 봤다. 형수는 그길로 나가서 등산까지 같이 갔대. 동호회원 중에 김숙자씨한테 연락해서 확인해 봤다. 형수는 등산 갔다가 회원들하고 헤어져서 집으로 간다고 한 후에 실종된 거다."

"그럼, 제 추리는 틀린 거네요."

"그래 임마. 그쪽은 내 전공이니까 나한테 맡겨 두고, 너는 열심히 컴퓨터로 잘 찾아 봐라."

"알았어요. 집에 가서 결과 확인해 보고 연락 드릴께요."

"그래. 그럼 수고해라."

"네."


앤더슨의 한껏 기대했던 마음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CSI, 크리미널 마인드처럼 너무 강력범죄만 나오는 미드를 많이 보아왔던 것이 후회되었다.

자신의 추리가 틀렸다는 실망감에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다가 오후 6시가 되자 정신을 차리고 가방을 챙겨 회사를 나섰다.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을 사 갈까 하다가 뭔가 매콤한 것이 먹고 싶어 그냥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 입은 후에 냄비에 물을 1500cc 정도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린 후 불을 켰다. 냉장고에서 오이 하나를 꺼내 씻은 후 얇게 채썰었다. 물이 끓어 오르자 비빔면 2개를 꺼내 면을 집어 넣었다. 면이 어느 정도 풀어지자 열심히 저어주었다. 물을 많이 넣어 끓이고 열심히 면을 저어 주는 것은, 보다 끓는 물이 많아야 많은 열에너지로 면이 빨리 뜨거워지고 빠른 시간 내에 끓여 냄으로써 면이 불어서 맛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3분 정도 지나 면 한 조각을 잘라서 먹어 본 후에 다 익었다고 느껴지자 체에 면과 물을 한꺼번에 붓고 찬물을 틀고 손으로 면을 흔들어 씻어냈다. 면이 충분히 차가워질 때까지 씻은 후에 면을 잡고 꼭 쥐어서 물을 짜냈다. 이때 면에 물이 많이 남아 있으면 스프가 물에 퍼져 흘러 내려가 싱거워진다.

물을 짤 뺀 면을 그릇에 담고 스프 2개를 모두 짜 넣은 후에 미리 채썰어 놓은 오이를 듬뿍 올리고 잘 비벼서 후룩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아삭하고 시원한 오이와 함께 매콤, 달콤, 새콤한 맛의 비빔면을 배불리 먹고 나니 실망감이 누그러지고 삶의 의욕이 샘솟았다.


컴퓨터를 켜고 경유서버에 접속했다. 일단 어제 못 봤던 동호회 여자회원들의 정보를 살펴 보았다. 몇 명은 일하러 다니는지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녔고, 몇 명은 가정주부인지 거의 움직임이 없이 동네에서 움직이고 마트 포인트 적립 정도 밖에 안 보였다. 언뜻 보기에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모바일 메신저의 기록을 열었다. 정미화씨의 기록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사진 없이 글만 모아 놓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등산 가서 회원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공유하는 글들이 보였고,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머나 인터넷 싸이트에서 보았던 좋은 글귀들이 보였다. 단체톡방의 내용에서는 특별한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1대1 채팅 내용을 열었다. 김태희씨와의 대화가 눈에 띄었다. 설마 그 김태희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살짝 웃으며 대화내용을 열었다. 내용으로 봐선 신입회원인 듯했는데, 처음 가입해서 어색한 김태희씨를 정미화씨가 잘 챙겨 줘서 고마워하고 있었다. 정모 전까지 얼굴을 모를 때는 진짜 김태희처럼 예쁘지 않을까 기대했다는 정미화씨의 농담에, 그 김태희보다 얼굴은 못 생겼어도 마음은 자기가 더 예쁠 거라는 대답이 있었다. 연예인 김태희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예쁘다고 꼭 그럴 거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앤더슨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으로 김숙자씨와의 대화내용을 열었다. 블랙라이더형과의 대화에서 들었던 이름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언니, 나 너무 힘들어.'

'미화야. 왜, 무슨 일 있어?'

'어젯밤에 또 맞았어.'

'어쩌니. 그놈의 의처증은 약도 없니.'

'앞집 남자하고 지나가다가 인사 한 걸 보고, 바람 난 것 아니냐고 때리더라구. 밖에 다닐 때 표시 안 나게 얼굴은 안 때리고 몸하고 팔, 다리만 때려. 그래서, 내가 여름에도 반팔, 반바지를 못 있잖아. 그렇게 때려 놓고 나중에는 미안하다고 싹싹 비니 또 넘어가고.'

'이혼해야 되는 거 아냐?'

'이혼하고 싶은데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사는 거지.'

'참는 것도 한도가 있지. 그러다가 너 골병 들까 봐 걱정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겠어.'


남편의 가정폭력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인 모양이었다. 다음 대화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언니, 나 결심했어.'

'뭐. 이혼하려고?'

'아니, 지난번에도 이혼하자고 했더니 죽이겠다고 했어. 그 말은 다신 못 꺼내.'

'그럼 어쩌려고?'

'도망칠 거야. 언니가 좀 도와 줘.'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그놈이 아이들한테는 잘 해. 얼마나 예뻐하는데.'

'그럼 다행이고. 내가 어떻게 도와 줄까?'

'내가 그동안 몰래 모아 둔 돈이 좀 있거든. 그 돈으로 방 구하고 일 하면서 혼자 살려고.'

'니 사정 아는데 내가 안 도와 줄 수 없지. 그런데, 정말 아이들 안 보고 살 수 있겠어?'

'너무 힘들어서. 애들 크면 다시 봐야지. 그동안은 참는 수 밖에.'


일단 실종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도망간 사람을 찾아 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억을 준다고 해도 찾아 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잘 살고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일단 김숙자씨의 가족 등 주변인물들의 인적사항을 찾아 경유서버에 올려 놓았다.

블랙라이더형이 텔레그램으로 찾은 정보가 있냐고 물었지만, 아직은 별다른 정보가 없다고 응답했다. 마음도 아프고 머리속도 복잡했다. 이런 일을 괜히 시작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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