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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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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8. 28.


블랙라이더형으로부터 대포통장을 넘겨 받았다. 거기에는 자그마치 천만원이나 되는 돈이 들어 있었다. 착수금보다는 조금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많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이렇게 많이 받아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과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을 해냈고 며칠동안 마음고생했으니 이 정도 보상은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이리저리로 흘러 가더니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고민으로 바뀌었다. 1순위는 역시 싸이클 휠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처음 사이버흥신소 일을 시작했으니 일단은 휠부터 바꾸자.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많은 동호회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보다는 약간 상급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여기저기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모아 결국 펄크럼 레이싱 제로 카본으로 결정했다. 다음주 동호회 사람들과의 라이딩 때 타고 나가기 위해서는 이번주에 장착을 해 놔야 하니까 일요일에 샵에 방문 예약도 해 놓았다.


토요일 아침,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연애를 안 한지 벌써 몇 년이 지났던가. 주말에 외출이라고 해 봐야 예전 사진동호회 때 출사 나가는 것과 싸이클 동호회의 라이딩 뿐이었는데, 오랜만에 데이트를 나가는 기분이 설레였다. 출근할 때 입는 비즈니스캐주얼 외에는 집에서 입는 트레이닝복과 티셔츠 정도여서 옷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캐주얼한 옷을 몇 벌 사둘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중 좋아해서 아껴 입던 다크블루 린넨 셔츠와 검정색 슬랙스를 입었다.

종로의 극장 앞에 약속시간인 11시보다 2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심장이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속시간까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간의 실망을 지나 걱정이 되기 시작해 전화를 걸어 봐야 하나 고민할 때쯤 그녀가 분주하게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를 본 그녀는 미안하면서도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해요. 버스가 거의 다 왔는데 길이 밀려서요."

"괜찮아요. 아무 일 없이 잘 오면 됐어요. 영화 시작시간 거의 다 됐어요. 얼른 올라가요."

"네."

영화관에 들어가 인터넷 예매번호로 티켓을 출력하고 나니 그녀가 말했다.

"영화는 진혁씨가 내셨으니까, 팝콘은 제가 살께요."

"있다가 점심 맛있는 것 먹으러 가야 하니까 너무 큰 거 사면 안 되요."

"정말요? 그래도 극장에 왔으니 카라멜 팝콘 콤보는 꼭 먹어 줘야죠."

"혜진씨는 다이어트 같은 것 안 해도 괜찮아요? 카라멜 팝콘이 열량이 높을 텐데."

"항상 신경을 쓰긴 하는데, 맛 없는 것 먹으면 우울하잖아요."

"그렇죠. 맛 없는 것 먹으면 안 되죠. 사실 혜진씨 정도면 다이어트 할 필요 없어요."

"고마워요." 하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자꾸 보고 싶게 하는 중독성도 있었다.


팝콘과 콜라를 맛있게 먹으며 즐겁게 영화를 본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혜진씨 영화 재미 있었어요? 제가 보고 싶던 영화라서 혜진씨는 별로였던 것 아니예요?"

"아니예요. 저 SF영화 좋아해요. 잔인하지만 않으면 액션영화도 좋아해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지금 밥 먹으러 가도 괜찮아요? 팝콘을 많이 드셔서 아직 배부르지 않아요?"

"제가 팝콘을 좀 많이 먹긴 했죠?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맛있던지. 식사하는 곳은 여기서 멀어요?

"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요."

"그 정도면 괜찮아요. 여자들은 밥배하고 디저트배가 따로 있어서 언제든지 먹을 수 있거든요."

"그럼 다행이구요."

"근데 뭐 먹으러 가는 거예요?"

"스테이크요."

"너무 비싼 거 먹는 거 아니예요? 우리 회사 월급이 그렇게 많지 않는데."

"어디서 공돈이 좀 생겨서요."

"그래요? 음... 그럼 맛있게 먹어 드릴께요. 맛있겠다. 스테이크. 이게 얼마만의 칼질인지."

"그럼 가실까요?"

"네~"

전날 저녁에 앤더슨은 미리 영화관 주변의 맛집을 검색해 뒀다. 어디나 그렇듯 맛집 검색결과에는 많은 음식점에 관한 블로그가 나왔다. 사진 실력이나 앵글이 거의 완벽하고 글도 매끄럽고 칭찬 일색의, 말하자면 소위 업자 냄새가 나는 결과들을 제외했다. 이런 블로그들은 대부분 음식점에서 홍보비를 받은 업체들이 올린 글이라서 믿을 수가 없었다. 사진이 약간은 투박하고 함께 간 사람들도 사진에 나오고(모자이크 처리를 했더라도) 대체적으로 만족스럽지만 가격이라던가 직원들의 친절도라던가 어느 하나라도 불만사항을 제기한 글을 골라서 찾아 보았다. 그래서,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지만 가격이 비싼 게 흠이라는 스테이크집을 찾았던 것이다.


스테이크집에 도착하자 블로그에서 봤던 그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일하시는 분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치자 블로그에서 봤던 그 메뉴들이 보였다. 그녀도 메뉴판을 받아 들고 펼쳐 보더니 놀라 눈이 커졌다.

"진혁씨, 여기 정말 비싸네요."

"걱정마세요. 비싸서 다음부터 안 올 거니까 이번에 맛있게 드세요."

"네."

"안심스테이크가 맛있다니까 혜진씨는 이거 드세요. 저는 티본스테이크 먹을께요."

"네. 안심스테이크 안심하고 먹을께요."

"하하하. 혜진씨 어디서 그런 아재개그를 배웠어요?"

"우리 팀 부장님이 매일 하시는 걸 듣다보니 저까지 전염되었나 봐요. 아재개그 때문에 실망하셨어요?"

"아니요. 재미있어요."

"진혁씨도 이런 개그 좋아하시는구나. 앞으로 부장님한테 열심히 배워 올께요."

"아니 뭐, 꼭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농담이예요. 히히"

둘은 식전빵과 샐러드를 먹은 후에 숙성된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정말 맛있다고 감탄하면서 나눠 먹었다. 회사에서는 잠깐씩 지나가면서 나눈 인사 정도가 대화의 전부라서, 대화를 나누며 어디에 사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꾸밈없이 밝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자신이 사람을 잘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데이트부터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둘은 식사 후에 걸으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앤더슨은 집에 도착한 후 그녀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진혁 : '혜진씨 집에 잘 도착했어요?'

혜진 : '네, 방금 도착했어요.'

        '오늘 스테이크 잘 먹었어요.'

진혁 : '공돈 생기면 또 살께요.'

혜진 : '공돈 또 생기길 기도할께요. ㅎㅎ'

진혁 : '열심히 공돈 만들께요. ㅎㅎ'

        '그럼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혜진 : '네, 진혁씨두요~~'

음악을 틀어 놓고 데이트의 여운을 즐기면서 토요일 남은 오후를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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