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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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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8. 24.


알람소리가 울리자마자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약간의 긴장이 느껴졌고, 오늘은 꼭 쓸만한 정보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얼른 준비를 마치고 출근했다. 다행히 세 번의 지원요청이 있어서 백신 프로그램으로 바이러스를 치료해 주고, 오피스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고, 랜 케이블이 살짝 빠져서 인터넷이 되지 않는 직원을 도와 주느라 하루는 그리 지루하지 않게 지나갔다. 저녁을 챙겨 먹기가 어려울 것 같아 퇴근길에는 제과점에 들러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경유서버에 모아진 정보를 확인했다. 한희수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가 있었다. 물론 이 사람은 계속 활동중이니까 정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정보들 중에 남현지에 관한 정보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 신용카드 사용정보부터 확인했다. 사용처를 살펴 보니 충청북도 청주에서 대부분이 있었다. 주소지도 청주이니 활동하는 곳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대형마트 포인트카드 정보를 확인했다. 앤더슨에게 이 정보는 언제나 조사하려는 사람의 생활패턴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사용되었다. 이런 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를 아는 그로서는, 만원 구매할 때마다 고작 10원어치의 포인트를 받으려고 자신의 개인정보를 파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무지가 고마울 따름이다. 마트에서 구매한 물품들을 살펴 보다 보니 생리대가 있었다. 그리고, 여자 속옷과 칫솔, 치약 등도 있었다. 분명히 여자가 있는데 생리대로 봐서는 한희수의 어머니는 아닌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신용카드 사용정보를 보았다. 5월 14일 반포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승차권을 구매한 기록이 있었다.

찾았다. 아니, 찾은 것 같다. 5월 14일 반포가 마지막 위치였던 남현지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한희수를 만나 버스를 타고 청주로 이동한다. 간편한 차림으로 집에서 나오느라 생필품을 챙겨 오지 못 했으므로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산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할 일이 거의 끝난 것으로 판단된 앤더슨은 블랙라이더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폰에서 시큐보이스를 실행해 전화를 걸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걸까 하다가 메시지를 확인하면 곧 전화를 할 거라 생각하고 텔레그램으로 전화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며칠동안 긴장하다가 해결된 듯한 느낌이 들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사 왔던 빵 봉투에서 먼저 올리브 치아바타를 꺼냈다. 작은 종지에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담아 우유 한 잔과 함께 가져 와 식탁 위에 앉았다. 치아바타를 한 조각 뜯어 올리브오일에 찍어 입안에 넣자 약간 시큼한 발효향과 올리브오일향이 함께 입안에 퍼졌다. 아이폰 뮤직 앱을 실행해서 에어플레이로 비틀즈의 음악을 틀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는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담백한 치아바타와 잘 어울렸다. 다음으로 호두단팥크림빵을 먹자 부드럽고 달달한 맛에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빵을 다 먹은 후에 소파에 앉아 IPTV를 켜고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가 미드를 보기 시작했다. 한 5분쯤 보고 있을 때 시큐보이스의 전화수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형, 왜 이렇게 통화하기가 힘들어요."

"아, 미안. 몸이 찌뿌둥해서 사우나 좀 갔다 왔다. 앤더썬, 무슨 진전이 있나?"

"아무래도 남자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남자하고 같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 혹시 주소 아나?"

"네. 충북 청주에 있는 충북대학교 앞 원룸쪽이예요."

"그럼, 나한테 주소하고 그 남자 사진 좀 보내 줘. 내일은 오랜만에 출장 좀 다녀 와야겠네."

"네, 바로 보낼께요."


텔레그램으로 주소와 이름, 사진을 보내고 나서 아까 보던 미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남현지는 무슨 이유로 청주까지 내려가서 숨어 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둘은 어떤 사이일까, 이 사람들을 찾게 되면 둘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갖가지 의문들이 꼬리를 물어 미드의 내용은 좀처럼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한 건 해결했다는 뿌듯함에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따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마시자 맥주가 목을 지나 식도를 타고 내려가 온몸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다음날도 평소와 다름 없이 별일 없는 심심한 하루를 보냈지만 블랙라이더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은근한 기대감이 있었다. 출근해서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어떤 소식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보를 잘못 찾아서 형이 못 찾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이 형이 평소에는 건달처럼 하고 다녀도 전직 강력계 형사 출신이라서 단서만 있으면 누구보다 잘 찾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형의 말로는 굉장히 잘 나가는 형사였는데 모함에 휘말려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는 하는데, 평소 행동을 보면 돈 밝히다가 비리 혐의로 쫓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는데 블랙라이더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어떻게 됐어요?"

"앤더썬, 니 덕분에 잘 찾았다."

"남현지가 거기 있어요?"

"어, 오랜만에 하루종일 잠복했더니 온몸이 쑤시네. 아무튼 니가 알려 준 원룸 앞에 차 세워 놓고 하루종일 있었더니 저녁 때 쯤 한희수가 퇴근을 하는지 원룸 건물 앞으로 들어가더라. 그러고, 한 30분쯤 지났나? 둘이서 팔짱 끼고 웃으면서 나오더라구. 슬쩍 따라가 봤더니 시내로 나가서 여자애 옷가지 이것저것 사더라."

"의뢰인한테는 얘기했어요?"

"둘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나 때문에 헤어질까 봐 걱정은 되는데, 나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잖냐."

"형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니가 다 찾아 준 것 아니냐? 왜 나한테 뒤집어 씌우냐?"

"에이 그냥 농담이죠. 헤헤"

"잔금은 저번에 그 통장으로 넣어 주면 되냐?"

"형, 혹시 대포통장 구할 수 없어요?"

"이놈 봐라.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하긴 이런 일 하려면 그런 게 필요하지. 내가 특별히 공짜로 구해 주지."

"고마워요, 형.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는데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너도 수고했다."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고 잠이 쏟아졌다. 며칠만에 깊고 편안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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