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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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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9. 15.


블랙라이더는 오전 11시쯤 안양역에 도착했다. 안양일번가 쪽으로 걸어가 앤더슨이 알려준 주소에 도착했다. 이 주소가 정확한 주소가 아니라 기지국을 통해 얻은 거라서 주변을 다 돌아봐야만 정미화씨가 여기에 있는지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식당이 몰려 있는 곳이라서 운이 나쁘면 몇 시간을 헤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직 강력계 형사였던 그에게는 자주 하던 일이라서 생소하진 않았지만 매번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 같은 이런 일은 시작하기 전에 한숨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일단 1차 수색영역으로 정한 식당의 끝부터 하나씩 들어가서 일하시는 분들을 유심히 살펴 보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 점심장사를 시작하기 전 준비시간이라서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보통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가게 입구에서 유리문을 통해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빠르게 살펴 보았다. 들여다 보는 모습을 보고 어떤 식당에서는 어서 오시라고 아주머니가 쫓아 나오기도 했고, 가끔 식사하시는 분이 입구를 등지고 앉아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을 때는 직접 들어가 자리에 앉아서 확인을 하기도 했다. 그가 앉자 식사하다 말고 일어나서 물통과 컵을 가져다 주시는 바람에 놀라서, 약속이 있는데 깜빡 했다고 급하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열번째쯤 식당을 지나면서 진짜 이쪽이 맞는 건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스무번째쯤 식당을 지나면서 혹시 형수님이 오늘은 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스물다섯번째쯤 칼국수집을 들여다 보았을 때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치우고 있는 형수님을 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앞에 가서 형수를 부르자, 그와 눈이 마주친 형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옮기던 그릇을 바닥에 떨어 뜨리고 멈춰 버렸다. 그리고는 몇 초 후, 출입문을 열고 뛰쳐 나갔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따라 달려 온 블랙라이더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형수는 더이상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울며 애원했다.


"저 좀 놓아 주세요. 저 집에 가면 죽을지도 몰라요."

"형수 걱정 마세요. 집으로 데려 가려고 온 것 아닙니다."

"네? 그이가 보낸 것 아니예요?"

"네. 저도 왜 형수가 집에서 나왔는지 압니다.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그럼, 왜 왔어요?"

"그냥 잘 사시나 확인하러 왔어요. 형수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으면 진작 도왔을 텐데. 이제야 알아서 죄송합니다."


형수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자 형수도 정신을 추스리고 눈물도 멈췄다. 형수가 일어나서 식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블랙라이더는 돈이 든 봉투와 자신의 명함을 형수의 손에 전해 줬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급한 돈 필요할 때 쓰세요. 그리고, 도움 필요하실 때 저한테 전화하세요."

"고마워요."


형수와 멀어지며 꾸벅 인사하자, 희미한 미소를 띄며 손을 흔드는 형수가 보였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아팠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앤더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도 역시 주말 데이트 때 입고 갈 만한 옷을 고르고 있던 앤더슨은 전화수신 진동이 울리자 얼른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 밖 복도로 이동했다.

"형, 어떻게 됐어요?"
"찾았다."

"그 위치 맞아요? 형수님은 어떠세요?"

"어, 고맙다. 니가 준 주소 근처 찾아 보니까 계시더라. 거기 식당에서 일하시더라."

"다행이네요."

"돈은 못 주겠고 내가 오늘 술 살께. 오늘 퇴근하고 괜찮나?"

"형도 돈 생기는 일도 아닌데 뭘 사요. 그냥 우리집으로 술만 사 갖고 오세요. 제가 안주 만들어 드릴께요."

"난 소주가 좋은데."

"저도 소주 좋아요. 우리집 주소 문자로 보낼께요. 7시반쯤 오세요."

"그래, 그럼 있다가 보자."


6시에 퇴근한 앤더슨은 슈퍼에 들러 어묵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 입은 후 냉장고에서 무를 꺼내 씻고 1센티미터 굵기로 채썰었다. 냄비에 500cc 정도 물을 받아 끓이고 멸치가루, 채썬 무와 국간장 2숟가락, 큼직하게 썬 대파를 넣고 센불에 20분 정도 팔팔 끓였다. 이때쯤 초인종이 울려 나가 보니 블랙라이더형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형은 들어오자마자 집안을 살펴 보며 떠들기 시작했다.


"와, 사내놈 방이 뭐 이리 깔끔하노? 어디 여자 숨어 있는 거 아니냐? 어디 계세요? 걸렸으니까 이제 그만 나오세요."

"아니예요. 제가 그냥 이렇게 하고 사는 거예요."

"내 평생 이렇게 깔끔한 남자 방을 본 적이 없어. 음, 그리고 이 냄새. 뭘 하는데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냐?"

"어묵탕 끓이고 있어요. 잠깐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이거 봐라. 어묵탕도 거의 다 끓여 놓고 어디 숨은 거 맞지? 이제 그만 나오세요."

"제 취미생활이예요. 조용히 좀 하고 앉아 계세요. 거의 다 됐어요."

"알았다. 냄새 맡으니까 배고파지네."


앤더슨은 냄비에 500cc 정도 물을 더 붓고 몇 분 후에 끓어 오르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어묵을 넣었다. 어묵이 익어 팽창하면서 위로 떠오르자 불을 끄고 냄비를 식탁으로 옮겼다. 앞접시에 어묵탕을 국자로 떠서 담아 주자 형이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와, 죽이네. 너 국물에다가 뭘 넣었는데 이런 맛이 나냐? 무슨 조미료냐? 나도 좀 알려 주라."

"전 화학조미료 안 써요. 음식의 진정한 맛은 조미료로 흉내낼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말하니까 쉐프라도 되는 것 같다. 아무튼 국물도 맛있고 무도 맛있고 어묵도 적당히 익어서 탱글탱글하네."

"맛있게 드세요. 또 하나 해결했으니까 건배해야죠."

"참, 그렇지, 이게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건배는 하자. 건배!"


둘은 소주를 마시고 어묵탕을 몇 숟가락 먹었다. 앤더슨이 오늘 형이 나갔던 일이 궁금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형수님은 어떠셨어요?"

"식당에서 하루종일 일하느라고 피곤해 보이시더라. 나 혼자 산다고 형님 통해서 반찬도 챙겨서 보내 주고 하시던 고마운 형수인데, 그동안 그렇게 힘들게 사셨다니까 마음이 아프다. 형님한테는 못 찾겠다고 해야겠다."

"네. 그게 좋겠어요. 이번에는 찾았어도 기분이 개운하지 않네요."

"나야 흥신소를 하니까 이런 일이 자주 있긴 한데, 나하고 가까운 사람이 그랬다니까 느낌이 다르다."

"이런 일이 그렇게 흔한 일이예요? TV,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너 같은 샌님들은 접하기 힘든 세상이지. 새로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새로운 세상. 길을 잘못 든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블랙라이더는 11시쯤 집으로 갔고, 앤더슨은 먹던 자리를 다 치우고 설거지까지 한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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