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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로마

by romainefabula 2020. 3. 2.

예전에 패키지 여행에서 이탈리아를 방문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도시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다시 방문했을 때에도 거의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나 이번에나 로마는 내 취향의 도시는 아닌 것 같다. 로마는 바티칸 들렀다가 콜로세오하고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명소를 몇 군데 둘러 보면 끝이다. 그럼에도 꼭 볼 것은 있다. 일단 내가 봤던 걸 개인적인 관점에서 나열해 볼 테니까 취향에 맞는 곳은 가 보시길.

바티칸

가이드업체에서 오후 가이드투어를 했다. 바티칸박물관을 둘러 보고, 시스티나 성당에 들렀다가 성베드로 성당을 보고 끝났다.

바티칸박물관에서는 '아테네학당'과 '라오콘 군상'을 꼭 봐야 한다. 아테네학당이 바티칸에 있다는 걸 모르고 갔는데, 갑자기 나타난 아테네학당 벽화는 감동이었다. 라오콘 군상도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미켈란젤로가 극찬한 작품으로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놀랐다.

다음은 시스티나 성당에 가서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과 '천장화'를 봤다. 큰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도 놀라웠지만 그 넓은 천장을 가득 채운 '천장화'는 예전에도 봤지만 이번에도 다시 감동이었다. 단, 여기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할 수 없으니 구석에 줄지어 놓여진 의자의 자리를 맡아 천천히 눈 속에 담는 것을 추천한다. '천장화'가 '천지창조'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일본에서 붙인 이름이고, 다른 모든 나라는 '천장화'라고 한다니 꼭 '천장화'라고 불렀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베드로 성당에 갔다. 웅장한 성당 안에 조각들도 있고 성당 앞의 광장도 멋있지만, 핵심은 '피에타'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전시된 공간조차 성스럽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첫번째 가이드투어였는데 너무 힘들었다. 바티칸은 앉아서 쉴 만한 공간도 없기도 하고, 내가 다닌 미술관 가이드투어는 모두 굉장히 자세히 오랜 시간동안 설명해 주는데 결국 남는 건 유명한 작품 몇 개와 중요한 설명 약간 뿐이다. 미술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여행 가이드북에서 유명하다는 작품 몇 개만 골라서 나무위키 같은 사이트에서 1시간 정도 공부한 다음에 그 작품들만 잘 보고 나오는 것이다.

가이드투어에서 꼭 빼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투어 중간 쉬는 시간이나 종료 후에 가이드가 추천음식점을 알려 준다. 한국인 가이드라서 한국인 입맛에 맞는 음식점을 추천해 주기 때문에 바가지를 피할 수 있고 한국인 입맛에 맞게 짜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로마

바티칸과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굳이 소제목을 나눠 봤다. 성베드로 광장을 벗어나는 부분쯤이 국경이다.

로마도 가이드 버스투어를 신청해서 돌았다. 로마수도교, 카타콤베, 포로로마노, 캄피돌리오언덕, 콜로세오, 트레비분수, 스페인계단 등을 방문했다.

로마수도교는 다른 지역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다리처럼 돌을 쌓아 아주 약간의 경사지게 해 물을 흐르게 만든 것이다. 한적한 교외에 있어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카타콤베는 로마에서 그리스도교인을 박해할 때 숨을 곳을 찾다가 숨어든 지하무덤지대이다. 미로 같은 통로가 이어지고 통로 옆은 모두 무덤이 있던 곳이다. 길을 잃으면 빠져 나오기 어려워 반드시 가이드와 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어둡고 으스스한 곳은 안 좋아해서 돌아 다니는 내내 빨리 나오고 싶었다.

포로로마노, 콜로세오, 트레비분수, 스페인계단은 예전 방문 때도 봐서 놀랍진 않았다. 포로로마노는 다 부서지고 얼마 안 남아 있고, 콜로세오는 일부분을 복원하고 있어 느낌이 달랐다. 트레비분수와 스페인계단도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서 유명해졌지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사람들이 몰렸을까 의문스럽다. 그 덕분에 소매치기들 주머니가 두둑해지긴 하겠다.

이렇게 로마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면 로마가 참 볼 게 없는 도시라서 절대 가지 말라고 하는 의미가 될 듯하다. 사실 피렌체와 베니치아에 비하면 로마는 가만히 있어도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 오니까 굳이 친절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듯하고, 도시 분위기도 어둡고 지저분하다. 특히 밤엔 더 우울하다.

 

로마에 모두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 부분이 이번에 느낀 여행의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콜로세오 근처에서 점심으로 가이드가 추천해 준 음식점 중에 하나를 골라서 갔다. 이탈리아 대표 피자인 마르게리따 피자와 대표 파스타인 볼로네제 스파게티를 먹었다. 음식점 이름은 Pasqualino al Colosseo. 스파게티도 맛있었지만 피자가 인생피자였다. 입안에 넣고 씹을 때마다 치즈에서 맛있는 즙이 계속 뿜어져 나와 '와' 하는 감탄사를 계속 흘리면서 한 판을 비웠다. 날씨가 춥지 않아 야외 테이블에서 먹었는데 분위기도 좋았고 직원들도 친절해서 더 좋았다.

나보나광장에서 대강 설명을 듣고 가이드가 추천한 유명한 젤라또를 먹으러 갔다. 그곳은 Giolitti. 워낙 유명한 곳이라 사람도 많다. 젤라또점에서는 대개 주문하는 곳과 젤라또를 고르고 받는 곳이 따로 있다. 돈을 내면서 컵이냐 콘이냐, 사이즈가 큰 것, 중간, 작은 것을 고르고 돈을 지불하면 영수증 같은 걸 준다. 그걸 갖고 가서 젤라또 진열대 뒤에서 젤라또를 퍼 주는 직원에게 가서 내밀고 원하는 젤라또를 고른 후에 받는다. 사이즈별로 고를 수 있는 젤라또의 수가 달라진다. 지올리띠에서 꼭 먹어야 하는 것은 Riso(리조, 쌀, Rice). 리조또의 그 리조인 모양이다. 이 리조는 지올리띠만의 시그니처로 다른 곳에선 못 봤는데, 쫀득~~~~한 식감에 쌀맛이 나는 달달함에 완전히 반했다. 더 못 먹고 와서 아쉽다.

젤라또를 먹기 전엔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입맛이 확 돌았다. 지올리띠에 다시 가서 줄 서기는 싫어서 옆에 있는 Grom에 들어가서 또 젤라또를 사 먹었다. 요거트와 Limone(리모네, Lemon)를 골랐는데 요거트도 쫀득~~한 게 아주 맛있었다. 다른 데서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레몬맛 젤라또는 쫀득하기 않고 셔벗 느낌인데 쫀득한 젤라또를 먹어서 그런가 덜 맛있게 느껴졌다.

젤라또를 두 번 먹고 나보나 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여자분이 작은 광장 같은 곳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오페라나 가곡 같은 곡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주변이 건물의 벽으로 막혀 있어 울림도 좋았고 노래도 잘 불러서 이탈리아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감동에 감사하는 의미로 2유로도 넣었다.

로마버스투어는 이탈리아에서 참여했던 투어프로그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종일 다녀서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귀여운 꼬마 둘이 있는 덕분에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대부분 현지 가이드투어는 자신의 가족이나 일행들하고 얘기하는데 여기서는 다른 가족들과도 얘기하고 가이드하고도 친해졌다. 투어가 끝나고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아 호텔 근처의 한식당에 갔는데 거기서 꼬마가 있는 가족도 있었고, 다른 테이블에 그날의 가이드와 혼자 여행 온 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와 인사도 했고, 다음날 피렌체로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즐거운 시간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다고 메시지도 보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 중 가장 마음이 따뜻해진 시간이었다. 

 

사실 유명한 곳은 실력 있는 사진작가들이 워낙 멋진 사진을 많이 찍어 놓아 나 같은 아마추어는 아무리 찍어도 멋지지 않다. 실제로 가서 봐면 그 느낌이 커지긴 하지만 완전히 달라질 정도는 아니다. 거기에 나처럼 두 번 방문한 사람은 그 감흥이 덜해진다. 하지만,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그곳에서의 추억은 원래 알던 색과 다른 색으로 칠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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