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역시 예전 패키지 여행 때 한 나절 들른 적이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좋은 느낌이 있었고, 한국에 돌아와 나중에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좋은 기억이 살아나면서 다시 가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커졌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피렌체 특유의 빛바랜 자주색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참 특이한 게 이탈리아는 도시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이번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재는 이탈리아가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이지만, 예전에는 도시들이 각각 하나의 국가였다고 한다. 로마는 교황님의 나라이고, 피렌체, 피사, 시에나, 베네치아 등이 모두 각각의 나라였기 때문에 각각 다른 분위기를 가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한 피렌체는 예전에 내 머리 속에 있던 피렌체의 색감이 아니었다. 피렌체에서 3박을 했는데 3일 내내 구름이 잔뜩 끼거나, 비가 오는 어두운 날씨라서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 빼곤 거의 회색 느낌어어서 아쉬웠다. 한 가지 흐리고 비오는 날씨가 고마웠던 건, 겨울이라 쌀쌀할 줄 알고 두툼한 패딩 점퍼 하나만 갖고 가서 로마에서 땀을 흘리며 고생했는데 좀 덜 더웠다는 것이다. 여행 준비 겸 해서 새로 산 점퍼였는데, 힝. 여행 갈 땐 얇은 옷을 여러 벌 가져 가서 추우면 겹쳐 입어야 한다.
기차 타기
로마에서 피렌체까진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탈리아에는 기차 종류가 다양하다. 느린 것부터 아주 빠른 것까지. 나는 빠른 기차를 타고 가서 2시간이 안 걸린 것 같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한 도시에 기차역이 여러 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도시 이름만 보고 내렸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로마에도 기차역이 2개인데 대개는 로마 테르미니역을 이용한다. 이번에 로마에서 피렌체에 갈 때는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출발해 피렌체 SMN(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에서 내렸다. 이건 베네치아 얘기할 때에도 다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기차가 제 시간에 안 온다는 얘기가 있는데, 제 시간에 왔고 거의 지체 없이 출발했다. 그러니까. 기차 놓치기 싫으면 미리 가서 전광판 잘 보고 있다가 출발 플랫폼이 뜨면 잽싸게 가서 타는 것이 좋다.
피렌체 도착 및 호텔 짐 풀기
피렌체 SMN역은 로마 테르미니역보다는 훨씬 작고 사람도 붐비지 않았다. 피렌체는 주요관광지가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어서 지하철도 없고 트램과 버스만 다닌다. 이번엔 준비시간이 부족해서 이런 대중교통을 타는 건 생각을 못 했고, 다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충분히 걸어다닐 만했다.
역에서 나와 예약된 Hotel Londra까지 걸어갔다. GoogleMaps에서 호텔을 찾아서 경로안내를 시작하고 따라 가니 오래 걸리지 않아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규모가 꽤 크고 로비도 넓고 방도 꽤 넓었다. 직원도 친절한 편이고 조식을 먹는 곳도 넓고 음식 종류도 다양해서 3일동안 여유롭고 편하게 지냈다.
호텔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마이리얼트립에서 야경투어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서 저녁식사 전까지는 일정이 없어서 그 사이에 피렌체의 핵심을 살짝 둘러 보기 위해 바로 나섰다.
피렌체 핵심 둘러 보기
피렌체는 역시 피렌체 두오모로 알려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님이라는 뜻) 성당이다. 그래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거쳐 가장 먼저 피렌체 두오모에 가서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벤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일몰 시간에 맞춰 미켈란젤로 언덕에 가는 것 외엔 계획이 없어서 그냥 시내를 거닐었는데, 길도 깨끗하고 분위기도 좋아 방황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지도에 보니 현재 위치에서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가까이 있길래 표를 사서 들어갔다. 규모가 작은데 볼 것은 다비드상 외에는 볼 만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 피렌체에는 다비드상이 아카데미아 미술관, 시뇨리아 광장, 미켈란젤로 언덕에 있는데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가장 상태가 좋았다.
다음으로 피렌체의 필수 방문코스 중에 하나인 미켈란젤로 언덕의 일몰을 보러 갔다. 걷기엔 멀고 버스는 타기 어려워서 택시를 탔다. 여기서 감동을 받았다. 택시기사들이 엄청 친절하다. 멀리 돌지도 않고 바로 가서 미터기에 표시된 금액만큼만 받았다. 타기 전에 기사에게 물어 보면 대강 15유로 정도라고 얘기하지만 미터기 요금만 받고, 나는 15유로가 안 되는 요금이 나왔다. 그날 예상 일몰시간이 5시 15분쯤이라서 일몰을 기다리며 버스킹 음악을 들으면서 피렌체 전경 파노라마 사진도 찍고, 다비드상도 보았다. 그런데,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워서 해가 보일 틈이 없었고, 일몰시간이 다가와도 일몰이 보일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저녁 가이드투어 시간도 가까워져 일몰 보는 건 포기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야경 투어
마이리얼트립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먹고 간단한 시내 야경투어를 하는 가이드 상품을 예약해서 참여했다. 가이드분이 달오스떼(피렌체에 여러 개의 분점 있음)라는 식당의 지배인이라고 하시는데 싼 가격에 맛있는 티본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고 와인과 커피를 무제한 제공해 주셨고 말씀도 재밌게 하셔서 즐거운 식사를 했다. 그 후에 간단한 야경투어를 했는데 주요관광지에서 설명도 듣고 사진도 찍었는데,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사실 설명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곳보단 중앙시장에 가서 상점을 둘어 보면서 먹어 볼 것들을 설명해 주신 게 이후 일정에 아주 유용했다.
주요 관광지
피렌체의 주요 관광지는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 있어 웬만한 사람은 걸어 다녀도 충분히 다 둘러 볼 수 있다. 피렌체는 거리도 깨끗하고 복잡하지 않아 걷기에 좋은 도시이다. 지하철은 없고 버스와 트램만 다니는데 이걸 타려면 새로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의 귀찮음이 걸어다니는 다리의 피로감을 이겨서 열심히 걸어 다녔다.
피렌체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피렌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가이드 말로는 피렌체에서 두오모가 보이는 카페나 루프탑 같은 곳은 다른 곳보다 훨씬 비싸다고 한다. 단지 두오모가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두오모쪽에는 올라갈 수 있는 곳이 두 곳이다. 쿠폴라(돔 꼭대기)와 조토의 종탑. 쿠폴라는 쿠폴라를 올라갔다는 데 의미가 있고, 조토의 종탑은 쿠폴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는 게 힘들기 때문에 체력이 된다면 둘 다 올라가면 좋겠지만, 나는 그냥 쿠폴라만 올라갔다. 쿠폴라에 올라가려면 인터넷으로 미리 시간을 선택해서 예약하고 카드결제까지 해야 한다. 결제를 완료하면 메일로 파일이 첨부되어 오는데 이것을 출력해도 되고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받아도 된다.
두오모에는 대기줄이 2개 있다. 하나는 산 조반이 세례당쪽으로 성당에 입장하는 줄이고, 거기서 왼쪽으로 끼고 돌면 보이는 줄이 쿠폴라 대기줄이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쿠폴라 대기줄에 서 있다가 출력물이나 스마트폰의 파일을 보여 주고 들어가면 또 바코드를 찍는 기계가 나오는데 거기서 찍고 들어가서 올라간다.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통로도 좁고 경사도 가팔라져서 힘들다. 하지만, 꼭대기에 도착해 밖으로 나가는 순간 360도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전경에 올라갈 때의 피로는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마침 올라간 시간이 일몰시간대여서 전날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보지 못 했던 피렌체 일몰까지 봐서 감동이 두 배였다. 사진 올리기 귀찮지만 이 사진은 꼭 자랑하고 싶어서 올린다.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하면 항상 따라 다니는 메디치 가문. 좋은 말로는 금융업자고 나쁜 말로는 사채업자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 가문이 피렌체를 장악하고 통치했기 때문이다. 우피치는 사무실(오피스)의 이탈리아어라고 하는데, 메디치 가문이 모아 뒀던 미술작품들을 자신들이 사무실로 쓰던 건물에 전시해서 미술관이 되었다고 한다. 돈이 많았었기 때문에 유명한 작품도 여럿 있으니 가이드북에서 잘 보고 찾아 봐야 한다. 나는 여기도 가이드투어를 했는데 로마에서 가이드투어하느라고 이미 다리와 발에 무리가 간 상태여서 유명하지 않은 작품을 설명할 땐 주변 의자에 가서 앉아 있곤 했다.
베키오 다리
오래된 다리라는 뜻으로 2차 세계대전 때 피렌체에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아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특이하게 다리 위에 상점들이 있어 멀리서 보아도 다리 치곤 모양이 특이하다. 다리 위에 상점이 있는 것은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도 있다. 현재는 상점들이 거의 귀금속을 팔아서 가 보면 번쩍번쩍한다. 다리 2층에는 우피치미술관부터 쭉 이어져 다리를 건너는 통로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에서 랭던 교수가 도주로로 사용했던 곳으로 책은 읽을 땐 어떤 모양인지 상상이 안 되어 답답했는데 실제로 보니 이해가 되었다. 댄 브라운은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어떤 장소를 설명하는 내용이 길어지고 있는데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머릿속으로는 안 그려져 요즘은 그냥 장소설명은 건너 뛰고 읽는다.
중앙시장
다른 관광지는 소소하게 둘러 보는 정도로 하면 좋지만, 중앙시장은 꼭 가 봐야 한다. 한국말로 번역하니 시장이라 재래시장 분위기일 것 같지만, 다양한 종류의 식당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까 꼭 가서 먹어 봐야 할 곳이다. 분위기는 푸드코트보다 고급스럽고 레스토랑보다는 약간 못 한 느낌으로 저렴하게 맛있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나는 2층에 있는 화덕피자집에서 마르게리따 피자를 먹으러 2번이나 방문했다. 로마에서 먹은 마르게리따 피자보단 맛이 덜 했지만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 일반 모짜렐라 치즈 대신 맛이 더 진한 버팔로 치즈를 올린 부팔라 피자도 맛있었다. 이탈리아 피자는 1인1닭을 못 하는 사람도 1인1피자를 할 정도로 크지 않고 맛있다. 아직도 이 피자 맛을 잊지 못 해, 이탈리아 느낌이 나는 우리 동네의 이탈리안 식당에 한 달에 한두 번씩 가서 마르게리따 피자를 먹고 있다.
피사 투어
피렌체에선 피사, 친퀘테레, 시에나가 가까워 당일치기 투어를 다녀 올 수 있다. 나는 일정이 넉넉하지 않아 피사 당일투어를 다녀 왔다. 개인이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나는 마이리얼트립에서 예약했고 바우처를 출력해서 출발장소를 찾아 가서 여행사직원의 안내를 받아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를 같이 타고 가는 여행사직원과 도착해서 설명하는 가이드가 영어를 하는 이탈리아 사람이라 영어나 이탈리아어 중 하나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 여행객 무리는 자체 가이드가 하나 있어 그 사람이 따로 일본어로 가이드하기도 했다.
버스는 왕복 3~4시간 정도 걸리고, 피사에 도착하면 현지가이드에게 인계되어 설명을 듣는다. 우리 현지가이드는 영어발음이 너무 안 좋았다. 함께 투어를 다닌 유럽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알아 듣는지 계속 있는데 아시아쪽 사람들은 모두 오디오가이드를 반납하고 자유투어를 다녔다. 어차피 돌아갈 때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알고 있으니 문제될 건 없었고, 자유시간이 아주 즐거웠다.
피사하면 피사의 사탑(기울어진 탑이라는 뜻. 영어로 Leaning Tower)인데 올라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가이드투어라서 언제 시간이 날지 몰라 예약을 못 해서 못 올라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매표소에 가니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당일 예매가 가능했다. 예매하고 가방을 매표소 옆의 물품보관소에 맡기고(아무리 작은 가방도 맡겨야 한다) 시간 맞춰서 줄을 서고, 소지품 검사를 한 후에 사탑에 올라갔다.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에 비하면 정말 숨이 좀 차려고 할 때쯤 꼭대기에 도착했다. 올라 갈 때 한 가지 어려운 점은 탑이 기울어져 있으니까 계단도 기울어져서 중심 잡기가 약간 어려웠다. 정상에 도착해 갈릴레이가 어떻게 낙하실험을 했을까 아래도 내려다 보고 사진도 찍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어딜 가든 꼭대기에 올라가면 전망도 좋고 기분도 좋다.
배가 고파서 급하게 가이드북에서 샌드위치집을 골라서 구글맵에서도 후기를 확인하고 주문해서 먹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후기에서 일부 아주 먹기 힘들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빵은 너무 딱딱해서 씹기도 힘들고 햄과 치즈는 냄새가 너무 심해서 먹다가 먹다가 결국 포기하고 버렸다.
피렌체에서의 쿠킹 클래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자는 취지에서 피자와 젤라또를 만드는 쿠킹 클래스를 마이리얼트립을 통해서 신청했다. 수강생은 2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동양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 가족 뿐이었다. 거의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고 한 명이 동양계로 보이긴 했다. 클래스는 이탈리아 셰프가 영어로 진행했다. 이번에 이탈리아 사람들 영어 발음을 처음 들었는데 참 독특해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쿠킹 클래스도 영어를 반 정도 알아 들었지만, 거의 행동하면서 설명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눈치로 따라 했다. 자세히 보니 프랑스 커플도 영어를 잘 못 알아 드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가족은 독일에서 온 세 모녀와 함께 테이블을 사용했다. 그 중 딸 하나가 8살 정도 되어 보이는데 헐리우드 영화에 나온 아역배우처럼 생겨서 말도 어찌나 귀엽게 하는지 클래스 전체를 귀여움으로 가득 채웠다. 밀가루부터 반죽을 하고 펴서 도우를 만들고 토핑을 올리는 과정까지 모두 해 보았다. 토핑은 소시지, 야채, 치즈 등 다양한 재료 중에 원하는 것을 올리면 직원들이 가져다가 화덕에서 구워 주는데, 나는 실수로 아티초크 절임으로 보이는 것을 넣었는데 맛과 향이 너무 이상해서 피자 먹을 때 힘들었다. 아래 사진에서 초록빛 나는 저 저거.
젤라또는 셰프하고 귀여운 꼬마아가씨가 앞에서 만들고, 기계로 얼린 후에 나눠 준 것을 맛있게 먹기만 했다.
피렌체는 티본 스테이크로 유명한 곳이니까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꼭 한 번 먹어 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선 엄청나게 비싼데 여기선 잘 고르면 싸게 먹을 수 있다. 가이드투어를 신청해서 다니면 끝날 때 가이드가 명함을 주면서 달오스떼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먹어 보기도 했고, 야경투어에서 만난 분들의 의견도 여기 맛이 괜찮다고 한다. 어딜 가야 할지 모른다면 가도 실패하진 않을 것 같다.
한국 돌아와서 피렌체에서 뭘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는데, 이렇게 적고 보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사실 가장 짧게 있었지만 베네치아의 기억이 너무 강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은 내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랑하는 도시 베네치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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