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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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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inefabula 2016. 8. 17.

일요일 아침, 늦잠을 즐기고 있는데 핸드폰 문자수신 소리에 잠이 깼다.

'1990년 3월 17일생 남현지. 2016년 5월 14일 아침 등산 간다고 나간 후 연락 두절'

'참, 너 계좌번호도 보내 주라. 착수금 주신단다'

문자를 확인한 후에 바로 블랙라이더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핸드폰 아이폰이죠?"

"어, 근데 왜?"

"그럼 됐구요. 형 텔레그램하고 시큐보이스 앱 설치해 주세요."

"그게 뭐 하는 건데? 텔레그램하고 시큐 뭐라고?"

"아무래도 이런 건 보안이 중요하니까 다른 사람이 도청 못 하게 하려구요. 그리고, 시큐보이스예요."

"어, 그래? 알았다. 바로 설치할께."

해킹을 하다 보니 보안에 더 민감해진 그였다. 그래서, 보안에 취약한 안드로이드보단 아이폰을 꼭 사용하게 되었고, 보안문자는 텔레그램으로 보안 음성통화앱은 시큐보이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 일은 개인정보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양쪽 다 흔적을 남기거나 추적을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잠시 후에 텔레그램과 시큐보이스에 블랙라이더형이 친구로 추가되었다. 텔레그램으로 계좌번호를 입력해서 보냈다.

블랙라이더형이 알았다는 응답을 보내고, 몇 분 후에 핸드폰의 은행 입출금 알림이 떴다.

'400만원 입금'

예상 외의 큰 액수에 깜짝 놀랐다.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상황이라 싸이클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찾을 때까지는 안 쓰고 가만히 모셔 두기로 결정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이런 일을 또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을 위해서 대포통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할 시간이 왔다.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합법적인 방법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구글에 남현지를 검색한 후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찾으면 착수금 받는 것도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검색을 했다. 그러나, 역시 5월 12일 이후에는 어떤 내용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하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 정도는 벌써 해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불법적인 방법이 남아 있다. 사실 이 방법은 평소에 어느 정도의 준비는 갖추어져 있는 상태이긴 했다. 명령을 보내 놓고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리면 그의 말들이 정보를 모아 등에 싣고 오는 것이다.


앤더슨은 여기저기 전산시스템에 트로이목마들을 심어 놓았고, 이 말들은 어둠 속에 숨어서 주인이 일을 시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처음 보안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점에 어떻게 전산시스템에 트로이목마를 심어 놓았느냐고? 의외로 간단하다. 이번에도 SNS가 크게 한몫 한다. 링크드인이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이다. 여기에 가면 온갖 사람들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잔뜩 올려 놓았다. 그 중에 데이터를 들여다 보고 싶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하나 고른다. 그 사람의 회사 이메일 주소를 검색해서 찾은 후에, 이메일에 트로이목마를 심어서 보내면 된다. 그 사람이 메일을 안 열어 보면 어떻게 하냐고? 사실은 너무나 잘 열어 봐 줘서 미안할 지경이다. 메일은 받는 사람의 SNS를 살펴 보면 이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남자들은 대부분 전자기기이고 여자들은 가방이나 구두, 옷 등이다. 물론 예외인 사람들도 많으니 철저하게 취향을 저격할 물건을 대폭할인 판매한다는 온라인쇼핑몰 광고 메일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열어 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한 것으로. 일단 트로이목마가 설치되면 그 컴퓨터의 사용자가 접속하는 각종 서버에 대한 접속정보를 모아 나중에 그 서버에서 필요한 정보를 모아 주는 것이다.


트로이목마는 되도록 조용히 있도록 만들어 뒀다. 하루에 한두번 정도만 그가 준비해 둔 경유서버에 확인해 주인님이 시키신 일이 있나 확인하고, 일이 있으면 아주 천천히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일이 없으면 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이 퍼지지 않고 잘 안 움직이지 않는 것은 백신프로그램이 잘 찾아내지 못 하고, 뭔가 찾아낼 듯한 분위기가 있으면 스스로 삭제되도록 해 놔서 추적당할 염려는 거의 없다. 경유서버도 서버를 검색해서 보안이 허술한 것을 골라 침투해서 트로이목마들이 모은 정보만 보관해 두도록 했다. 갑자기 네트워크 트래픽이 늘어나거나 프로세스가 많이 늘어나서 CPU 사용률이 늘어나면 또 다른 서버를 찾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경유서버에 남현지의 인적사항을 남겨 두고 결과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평소에 심심풀이로 만들어 놓은 것을 이렇게 써 먹을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명령을 확인하도록 트로이목마를 만들 걸 했나 하는 후회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다.


몇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점심 때가 되어 배가 고파졌다. 비록 쓰지 않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큰 돈을 벌었으니 오늘은 좀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냉장고에서 계란 3개를 꺼낸 후에 깨서 볼에 넣고, 우유, 설탕, 소금을 추가한 후에 거품기로 열심히 저었다. 그리고, 달궈진 후라이팬에 버터를 녹인 후에 계란물을 붓고, 바닥이 살짝씩 익을 때마다 바닥을 슬슬 긁어 주면서 조금씩 뭉치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뭉글뭉글하게 뭉쳐 있을 때 접시에 옮기고 케첩으로 하트 모양을 그렸다. 오늘 왠지 사랑이 고프다. 헤헤. 후라이팬에 버터를 녹인 후에 식빵을 올려 양쪽 다 노릇하게 구운 후에 꺼내 그 위에 계피가루와 설탕을 뿌렸다.

에그 스크램블과 시나몬 토스트를 접시에 담아 식탁으로 옮긴 후 캡슐커피머신에서 아메리카노를 내렸다. 우아한 분위기를 완성하기 위해 아이폰에서 에어플레이로 음악을 실행해서 마란츠 리시버를 통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이 부드럽게 흘러 나왔다.


브런치를 맛있게 먹은 후에 오후는 뭘 하면서 보내야 할까 생각했다. 인사팀 이혜진씨를 만나 볼까? 사내시스템에 있는 전화번호를 혹시나 해서 저장해 두긴 했는데 전화해도 괜찮을까 한참 동안 망설였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에 훈남컴도사라고 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정성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혜진씨죠?"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OA팀 김진혁대리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김대리님. 그런데 어쩐 일로?"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한데,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혼자 보러 가기가 좀 그래서요. 혹시 같이 보러 가실 수 있을까 해서요."

"어쩌죠? 오늘은 친구들하고 생일 모임 와서 어려울 것 같은데. 다음주 토요일 어떠세요? 그때는 괜찮은데요. 예매는 해 주실 거죠?"

"아, 네. 예매하고 카톡으로 알려 드리면 될까요?"

"네. 카톡으로 알려 주세요."

"그럼 친구분들하고 재미있게 노세요."

"네, 김대리님. 주말 잘 쉬세요."


전화를 끊고 그녀는 영화제목도 안 물어 보고 무조건 보자고 했다는 걸 알았다. 좋아하는 걸 너무 티낸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앤더슨도 전화를 끊으면서 영화제목도 모르고 보겠다고 하는 이 아가씨가 신기하긴 했지만, 밝고 반갑게 전화를 받아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주 토요일은 바쁠 테니까 오늘은 좀 쉬어야 한다는 위로를 하며 영화를 예매하고 카톡을 보낸 후에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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