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파인더

3

by romainefabula 2016. 8. 20.


월요일 아침, 요란한 아이폰 알람소리와 소니 스마트밴드2의 알람진동에 놀라 잠이 깼다. 하지만, 일어났을 때의 기분이 다른 출근날의 아침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주까지는 또 지루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에 부스스 일어나 대강 두유 한 팩을 뜯어서 오메가3와 함께 먹고, 씻은 후에 옷을 입고 출근길에 나섰다. 오차 없이 정확하게 잘 움직이는 감정없는 로봇과 같다고 하면 훌륭한 비유가 될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면서 교통카드를 댈 때 나는 삐소리가 로봇에게 일터로 똑바로 가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에 반해 오늘은 겉은 항상 입던 비슷한 옷을 입었지만 그 안에는 명품 팬티를 사서 입은 첫날처럼 남들에게 보여 줄 수는 없지만 자랑하고 싶은 은밀한 것을 숨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 아침 먹던 두유도 더 달콤한 것 같았고, 머리 감을 때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도 다른 날보다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일어나서부터 출근준비를 하고 출근하는동안 내내 그의 일꾼들이 어떤 정보를 모아 놨을까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휴가를 내고 확인할까도 생각했지만 이 출근은 자신을 아주 평범하고 착실해 보이게 하는 일이기에 변화를 주면 안 되었다. 출근시간인 9시까지 20분 정도 남았을 때 회사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5미터 정도 앞에 이혜진씨가 걸어가고 있었다. 먼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 기다리던 그녀 옆에 서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제는 재미있으셨어요?"

"어, 안녕하세요. 친구들이 달리는 바람에 따라 달렸더니 아직도 머리가 좀 아파요."

"네, 그러신 것 같네요. 어제 소주 드셨죠?"

"어머, 냄새 나요?"

얼굴을 붉히면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이 되자 그는 먼저 내리면서 그녀에게 수고하시라며 인사를 했고, 그녀는 술냄새가 날까 봐 걱정되었는지 입을 꼭 다물고 수줍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 평소와 다름 없이 자리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 놓고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았다. 이날도 커피향은 좋았지만 마음은 이미 집에 가 있었다. 언제 퇴근하나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앉아서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사내 메신저에 메시지 수신 알림이 떴다.


이혜진 님의 말:

  김대리님~~

  저 원래 술 많이 마시지 않아요.

김진혁 님의 말:

  정말요?

이혜진 님의 말:

  정말이예요.

김진혁 님의 말:

  네. 알았어요.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이혜진 님의 말:

  네. 김대리님도요~~ ^^


오늘따라 유난히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잠깐이나마 그녀와의 메신저 대화는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해 주었다. 그 이후의 시간도 그리 빠르게 지나갔다고 할 수는 없었다. 가끔 가다가 너무나 어이 없는 질문을 하던 직원들도 오늘 같은 날은 고마울 수도 있을 텐데, 하필 오늘은 아무도 질문이나 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다. 마음을 느긋하게 갖자고 속으로 계속 되뇌이면서 시간이 가길 바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5시 50분이 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시가 되자 컴퓨터를 종료시키고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과장님,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오늘 중요한 약속 있나 봐. 아까부터 계속 시계 보면서 기다리는 것 같던데."

"아, 아, 네.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무실을 나와 급히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려 놓고 바로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경유서버에 접속해 남현지에 관해 모아진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켜져 있던 시간은 실종일인 5월 14일의 서울 반포 부근이었고, 그 이후에는 신용카드나 대형마트, 편의점 등을 이용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운이 좋으면 쉽게 정보를 찾아낼 수도 있을 거란 기대를 가졌는데, 쓸 만한 정보가 하나도 안 나오다니. 납치되거나 해서 정말 이 사람이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SNS를 살펴 보기로 했다. 최근 것부터 차례로 과거로 가면서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이 없는지 읽어 보았다. 남현지는 예상대로 돈이 많은 집의 딸인지 맛집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도 많이 올리고 해외여행도 많이 다닌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진은 함께 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일부는 그녀 혼자만의 사진만 있었고, 사진 속의 표정을 자세히 보면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의 밝은 모습이라기보다는 뭔가 행복하고 흐뭇한 표정이 느껴졌다. 모두에게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있을 것 같아, 그녀의 개인정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보면서 그녀의 계정으로 로그인을 시도해 보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어렵지 않게 로그인을 했다.

글 중에 사용자가 지정된 글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 중에 남자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그 남자에게 공개된 글들에는 남자와 찍은 사진이 있었다. 곧바로 그 남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1985년 7월 24일생 한희수'

어제 미리 여기까지 확인해 봐야 하는 건데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번 자료를 모으려면 또 하루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남자의 인적사항을 또 경유서버에 올려 놓고 내일 저녁 쯤에 결과를 보고 다음을 진행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와서 결과를 확인하고 추가 검색을 하느라고 모르고 있었던 허기가 갑자기 밀려 왔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달군 후에 얇게 채썬 양파와 신김치를 김치국물과 약간과 함께 김치에서 흰색이 없어질 때까지 볶아 주었다. 그때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은 햇반을 그대로 넣고 요리주걱으로 비스듬하게 문질러 주어 밥알이 하나하나 분리되도록 했다. 그때 옆의 작은 후라이팬에 불을 아주 약하게 켠 후 계란을 깨트려 넣었다. 계란 바닥이 모두 하얗게 변했을 때 뒤집어 놓고 양쪽 가스렌지의 불을 모두 껐다. 김치볶음밥을 접시에 옮겨 담고, 잔열로 반대편이 익은 계란을 그 위에 노른자가 보이도록 얹고 참깨를 뿌렸다.

접시를 들고 식탁으로 가 TV를 켠 후에 케이블 채널의 미드를 보면서 먹었다. 잘 볶아진 볶음밥과 보들보들한 계란 흰자와 익지 않은 고소한 노른자의 맛이 어우러져 실망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자 맵고 기름졌던 입안도 부드럽게 정리가 되었다.


미드를 보고 있는데 시큐보이스의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블랙라이더형이었다.

"앤더썬, 잘 되고 있나?"

"그 이후로 행적은 찾지 못 했구요. 근데 그 아가씨 남자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런 얘기는 못 들었던 것 같은데."

"비밀스럽게 만났던 것 같아요. 내일쯤이면 그 남자에 대한 정보가 좀 나올 것 같아요."

"그래? 암튼 그 양반이 기대가 큰 것 같더라. 잘 좀 찾아 봐."

"형은 저 방금 밥 먹었는데, 소화 안 되게 그렇게 부담스러운 소릴 하세요."

"그런가? 그럼 미안. 암튼 수고해라."

"네."


예상보단 조금 복잡한 일이어서 당황은 했지만, 뭔가 집중할 수 있는 도전정신이 발동하기 시작하면서 의욕이 넘쳐났다. 아무리 의욕이 넘쳐나도 내일 낮동안의 바른생활 이미지를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이 필요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 후에 샤워를 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야기 > 파인더'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0) 2016.09.02
5  (0) 2016.08.28
4  (0) 2016.08.24
2  (0) 2016.08.17
1  (0) 201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