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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애 딸린 홀아비로 살아가기

by romainefabula 2023. 12. 16.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굳이 쓸 일이 생길까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행동하는 것 같아서 여기에 욕이라도 하면서 풀까 하고 글을 시작한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는데. 나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다른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 하는 것 같다.

애 딸린 홀아비는 아빠와 엄마 역할을 혼자서 모두 해내야 한다.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고, 집안일(청소, 요리)을 해야 하고, 아이의 식사와 학교생활 및 공부를 챙겨야 한다. 정말 일주일 내내 바쁘다. 남편이 직장일 외에 집안일에 신경을 안 써 주는 워킹맘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비슷할 것 같다. 그래도 워킹맘은 남편이 돈이라도 벌어도 주고 집안일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닐 테니까 다르긴 하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집안의 모든 문제를 혼자 결정하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 배우자가 문제 해결이나 결정에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내가 결정한 일에 대해 건성으로라도 긍정적인 대답을 해 주면 확신이 생기고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혼자 뿐일 때는 내가 결정했어도 이것이 맞는지,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지 행동에 옮기기 전까지 계속 불안하다. 아내가 떠나고 혼자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익숙해지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애 딸린 홀아비를 보는 시각은 크게 4가지 정도로 나뉜다.

첫 번째 무시하는 사람들.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식당에서만 몇 번 겪었다. 상황은 비슷하다. 별생각 없이 후줄근한 차림으로 아이와 둘이 식당에 들어갔는데, 점원이 40~50대 이상일 때 그랬다. 느낌은 그렇다. '이것들 돈 안 내고 도망가거나, 돈 없다고 그러는 거 아닌가?' 할 것 같은 사람을 대할 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도망갈까 봐 감시한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나이 든 사람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사람을 대할 때 영혼을 담는다. 영혼을 담아서 나를 무시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는 아이와 식당에 갈 때는 항상 깔끔하거나 돈이 있어 보이는 차림을 한다. 몇 번 무시당한 후엔 식당 점원이 20대 정도의 젊은 사람이면 정말 반가웠다. 젊은 점원들은 고객에게 영혼을 담지 않는다. 항상 같은 목소리톤으로 기계처럼 행동한다. 이런 사람들 정말 좋다. 내 돈 내고 밥 먹으러 가서 왜 무시당해야 하는지, 무시당할까 봐 신경 써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러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느낄 수밖에 없도록 행동하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두 번째 홀아비는 어떨 거라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사람들. 왜 TV나 영화에 나오는 애 딸린 홀아비들은 다 애는 내팽개치고 매일 술만 마시는지. 이 사람들도 내가 TV나 영화에 나오는 홀아비와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럼, 자기가 홀아비가 되어도 자기 새끼들 내팽개치고 술만 마시고 놀러 다니겠다는 건가?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세 번째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애 딸린 홀아비는 지구상에 있는 부류들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확 죽어 버리고 싶지만, 아이를 키워야 하고 죽어서 아내를 만났을 때 잘 살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고 있다.

네 번째 부러워하는 사람들.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이다. 특히 유부남들. 애 딸린 홀아비가 부러우면 자기 부인이 죽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건가? 그렇게까지 싫은 부인과 왜 사나? 그냥 이혼하지.

위에서 있는 사람들 중에 안 좋은 케이스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일 때는 정말 졸라 개짜증이다. 내가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라서 짜증이 더 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일단 모든 사람들에게 기대를 내려놓아야 하고, 그래도 짜증 나게 굴면 안 보는 수밖에 없다. 어려울 때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이 심장 깊숙이 칼을 꽂아 넣는다.

그 외에 애 딸린 홀아비에겐 ex-처가라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있다. 아내가 죽는 순간 처가는 나하고 남이 된다. 하지만, 아이가 있기 때문에 끊어질 수 없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 그분들 입장에선 아이는 죽은 딸이 남기고 떠난 혈육이다. 계속 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외손주를 보는데 한 가지 위험이 있다. 만약에 내가 결혼하게 되면 외손주를 보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다른 여자가 사는 집에 있는 외손주를 보기는 불편할 테니까.

그래서인지 내가 여자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말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 살짝 돌렸지만 내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나에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애 딸린 홀아비는 서럽고 더럽고 불쌍하고 힘들다. 아마 전생에 나라 한 개 정도 팔아먹은 모양이다. 어쩌면 두 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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