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야 한다. 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
오늘 알쓸별잡을 보다가 안희연 시인이 소개한 책의 내용을 듣다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책 내용은 자식이 죽은 부모가 이후에 동네사람들로부터 받은 고통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그 책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어쨌든 나도 이 동네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아내가 죽었을 때는 어떻게든 돕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변해버렸다.
이전에도 이런 내용을 썼던 것 같은데, 이 동네에는 죽은 아내하고 친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내가 사교성이 좋아서 꽤 많다. 그래서, 내가 이 동네에서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나는 사랑하던 언니나 동생의 남편일 뿐이다. 나를 통해서 그 언니나 동생을 기억할 뿐이다. 나란 존재는 그런 용도의 매개체일 뿐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은 아내를 잊지 말라거나, 아내가 남겨 놓은 아이를 잘 키워 달라는 것 뿐이다. 뭐 심하게 얘기하면 죽은 아내를 잊지 말고 쭉 그렇게 혼자 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혼자 일하면서 아이 키우느라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도 없었다. 나와 같은 처지라고 모두 나처럼 살진 않겠지만, 아무튼 내 성격상 적당히나 대충 막 사는 건 용납이 안 된다. 하지만, 아이가 크고 나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어떤 형태로든 나의 행복을 찾고 싶다. 이 동네에서 내가 행복을 찾고 행복한 표정으로 다니면 이 사람들은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겠지. 이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이 동네에 내 편은 없다. 오히려 나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적들로 득실거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사를 해서 이 동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지긋지긋한 동네에서 떠나지 못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전학을 갈 수가 없어서다. 아이가 졸업만 하면 나의 적들이 없는 곳으로 바로 이사를 갈 것이다. 그날만 기다리며 이 악물고 버티고 있다. 이상한 소리 들을까 봐 동네에선 장 볼 때나 운동 갈 때 빼곤 웬만하면 돌아다니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이 없으면 참 잔인해질 수 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을지 상상은 해 봤나? 아내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갈 때 나는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막상 겪어 보니 내 상상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상상해 볼 만한 수준의 고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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