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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위안

by romainefabula 2022. 2. 14.

힘든 마음을 안고 사는 것은 참 힘들다. 끊임없이 마음의 위안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나만 이런가? 나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기사를 보든 TV를 보든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나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꼭 읽거나 본다. 그런 내용을 보면 눌러 두었던 나의 감정이 살아나서 힘들고 눈물도 가끔 흘린다. 어쩌면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눈물을 흘려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나만 이런 감정을 갖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면서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외에도 일상 속에서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루틴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은 드립커피를 마신다.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서 올린 후에 저울에 커피콩 15g을 측정해서 수동그라인더에 넣고 천천히 돌려서 분쇄한다. 물이 끓으면 드립포트에 옮겨 담고 드리퍼에 뜨거운 물을 부어 린싱을 한다. 린싱한 물을 버리고 드리퍼에 분쇄한 커피가루를 올리고 거기에 드립포트로 물을 부어 커피가루 불리기를 시작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 뜨거운 물을 커피가루 가운데 부분에만 돌려 가면서 부어 1차 드립을 한다. 잠시 기다린 후에 물을 부어 2차 드립을 한다. 카페인이 많은 걸 싫어해서 3차 드립은 생략하고 빠른 시간동안 2차 드립까지만 하고 끝낸다. 드리퍼를 지나 서버에 떨어진 커피의 진한 향을 확인한 후에 흔들어 주며 브리딩을 한다. 그리고, 미리 뜨거운 물을 부어서 데워진 우아한 모양의 커피컵에 서버의 커피를 따르고 적당량의 물을 추가해서 드립커피를 완성한다.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진한 커피향을 느끼면서 천천히 마신다. 드립 과정에서 나오는 커피향과 커피찌꺼기를 창쪽에서 말리며 집안에 퍼지는 커피향은 덤이다.

화초가 하루하루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위안을 준다. 겨울이 되면 잎이 빨갛게 변하는 포인세티아를 키우는데 일조량이 많아서 그런지 첫해 이후엔 초록잎 밖에 본 적이 없지만 남향의 창가에 놓아 두어서 그런지 항상 싱싱하게 잘 자라 주어 보면 기운이 난다. 작년봄에 산 우아한 모습의 고무나무도 잘 자라고 있다. 공기정화에도 좋다고 하는데 기능성을 떠나 넓고 두툼하고 윤기나는 잎이 볼 때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이번봄에는 야자를 추가하고 요리할 때 사용할 바질과 로즈마리를 심어 볼까 생각중이다.

먹는 것도 항상 즐거울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김치나 식재료, 양념도 조금 비싸더라도 맛있는 것을 사서 먹고 요리할 때 피곤하지 않게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종류로 해서 먹는다. 직접 해 먹는 요리의 장점은 좋아하는 재료를 듬뿍 넣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고기무국을 끓일 때는 소고기와 무를 1:1로 넣어서 고기를 실컷 먹는다거나 파스타소스를 볶을 때는 양파 1개 전부를 썰어 넣어 맛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요리는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플레이팅도 중요한데 덴비에 꽂혀서 식기를 종류별로 하나씩 덴비로 바꿔 나가고 있다. 덴비는 디자인이 깔끔하고 우아하면서 전자레인지나 오븐에까지 넣을 수 있으니까 실용적인 면도 좋다.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볼 때 즐거운 것만 보고, 재미없거나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으면 참으면서 보려고 하지 않고 과감하게 멈춘다. OTT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요즘 넘쳐나는 게 영화와 드라마인데 굳이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 재미 없는 것을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몇 개월만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취향에 맞는 내용이라서 즐겁게 읽고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잠자기 전에는 라디오를 많이 듣는다. 마음이 허전할 때 끊임없이 떠들어 주면서 좋은 음악도 틀어 주는 라디오는 많은 위안이 되고 있다. 특히 '이지혜의 오후의 발견'은 아내가 떠난 후에 아주 마음이 힘들 때에 큰 힘이 되었다. 이지혜씨의 밑도 끝도 없는 밝음이 아무리 우울한 상태에서 들어도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물론 요즘도 시간이 될 때마다 계속 듣고 있다.

마지막은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다. 이번 글은 아내가 투병하는 중에도 언젠가 쓰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고, 그후로도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쉽게 시작하지 못 한 일이다. 작년에 어렵게 쓰기 시작한 후에는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다시 떠올라 한동안 멈추기도 했지만, 생각했던 내용들을 거의 쓴 현재는 마음이 아주 많이 편안해졌다. 누가 이 글을 읽을지 모르고, 어쩌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머릿속의 힘들고 슬픈 감정들을 글로 적다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을 느꼈다. 이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일이다. 혹시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은 감정을 잘 정리해서 글을 써 보길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나처럼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들에 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뉴스나 인터뷰를 보면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받은 것처럼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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