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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결혼

by romainefabula 2021. 7. 17.

그녀와 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결혼했다. 나는 처음 만날 때부터 결혼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결혼까지 가는 과정에서 굳이 큰일이라고 찾는다면 내가 맹장수술을 한 것 정도다. 그것도 결혼식 3주 전에.

어느 날 몸살처럼 몸에 열이 나고, 신기하게도 누워서 왼쪽 다리를 올려 보면 하나도 안 아픈데 오른쪽 다리를 들 때만 아픈 거였다. 마침 얼마 전에 회사 선배가 맹장수술을 하면서 설명한 얘기와 정확하게 일치해서 응급실로 갔고 맹장을 떼어내고 4일 정도 입원 후에 퇴원했다. 이것 때문에 결혼식 후 폐백 때 신랑이 신부를 업는 건 하지 못 했다. 거의 나은 상태이긴 했지만 수술부위가 살짝 뭉치는 느낌이 있어서, 괜히 무리하다가 신혼여행을 못 가는 사태가 벌어질까 봐 한 가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수술부위가 살짝 뭉치는 느낌은 신혼여행지인 괌 공항에 내리면서 싹 사라졌다. 어렵게 결혼한 사람들에 비해서 별문제 없이 결혼하긴 했지만 다시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라는 게 워낙에 절차가 복잡해서 3개월 정도 꽤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가 결혼식이 끝나고 괌의 파란 하늘을 보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수술부위도 편안해진 듯하다. 그때 이렇게 힘든 결혼 두 번은 못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 변함없다. 지금은 결혼 준비의 어려움에 결혼 후에 생길 수 있는 무서운 일에 대한 두려움까지 합쳐져서 더 강해졌다.

2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고, 엄마를 닮아 뽀얀 피부에 말도 참 많은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명랑하게 자랐다. 외동인 아이들이 버릇이 안 좋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잘못된 행동을 가만히 보고 놔두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럴 때마다 바로 혼나서 그런 것 같다. 다만, 음식이나 물건을 경쟁 없이 혼자만 차지하다 보니 남들보다 먼저 빨리 먹거나 가지려고 하는 의지가 부족한 게 걱정이긴 하다.

나도 아이가 태어나면서 직장을 옮겼고, 수입이 늘어서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즐겁게 살게 되었다. 시간적 여유도 생기면서 집에서 아이와 놀아 주는 시간도 많았고, 주말에 피곤한 아내를 위해 아이와 둘이서 차 타고 놀러 갔다 오는 일도 가끔 있었다. 아이가 뛰기 시작하면 좁은 집안에서 놀아 주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이 아이는 에너지 소모가 더 많아지고 부모는 덜 힘든 것 같다. 아이는 보폭이 짧고 부모는 보폭이 기니까 걸음수가 줄어들어서일까. 아니면 집안에서 아이와 놀아 주려면 허리를 숙이거나 쭈그려 앉아 있어야 하는데, 밖에서는 허리를 펴고 편하게 서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마치고 한참 손이 많이 가는 시기를 지나서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라면 으레 들어가는 축구클럽에 들어가고 주말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왔다. 여름에는 지역의 축구클럽끼리 대회가 있어서 부모들이 도시락 싸 들고 가서 신나게 응원도 하고 놀다가 왔다. 하필 단체로 주문한 김밥 때문에 거기 왔던 많은 부모들과 아이들이 식중독이 걸리는 바람에 응급실에 가는 사람도 많았고, 그나마 양호한 사람도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들락날락거려야 했다.

이 대회에서 한 가지 더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이 아이가 골키퍼였다는 것이다. 축구를 하러 갔으면 당연히 뛰어 다니면서 공격수로 골을 넣진 않더라도 최소한 수비수로 공을 걷어 내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골문 앞에 서서 오는 공만 막는 것이 너무나 불만스러웠다. 화를 누르고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공을 차는 것보다 잡는 걸 잘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바로 다음 주말부터 아이를 학교 운동장으로 데리고 가서 축구 연습을 시작했다. 패스 연습도 하고 공을 강하고 정확하게 차는 방법도 설명해 주었다. 슈팅을 재미있어하길래 내가 골키퍼를 하고 마음껏 차라고 했더니 깔깔대며 쉴 새 없이 슛을 하다 보니 실력도 많이 늘고 함께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그렇게 몇 주 하다 보니 축구클럽에 갔다 온 아이가 언젠가부터 공격수가 되었다고 하더니, 매번 몇 골씩 넣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간 지역 축구클럽 대회에선 에이스라고 불리면서 공격수로 참가해서 골을 넣기도 했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뭔가를 의욕적으로 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아이 덕분에 내 혈관에 뜨거운 사커대디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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