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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항암치료, 수술

by romainefabula 2022. 1. 14.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보통 항암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은 아주 독하다. 약물을 대개 혈관으로 주입하는데 얼마나 독하면 혈관이 상해서 어느 정도 항암치료에 사용된 혈관은 더 이상 주삿바늘을 꽂지 못 하고, 계속 손상되지 않은 새로운 혈관을 찾아서 사용하게 된다. 아내는 치료받는 동안 참 씩씩했다. 우유부단하고 걱정이 많긴 했지만, 원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힘든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린아이를 두고 빨리 떠날 수가 없어서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메이저급 병원은 보통 항암치료를 할 때 보통 1~3주 주기로 병원에 방문해 진료 전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만족하면 항암치료를 시행한다. 진료 전 검사라는 것이 채혈을 해서 호중구, 백혈구, 간 수치 등을 보고 항암제를 맞고 버틸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항암제가 암세포를 죽이지만 정상적인 부위도 함께 나빠지기 때문에 이런 수치가 안 좋은 상태에서 강한 항암제가 또 들어가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아주 약한 병이 들어가도 심각한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암치료 중에 열이 오르면 해열제 사용이 금지되고 바로 암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 병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채혈이고 혈액검사 결과가 나와야 진료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내는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도착하면 빠른 걸음으로 채혈하는 곳으로 가고 나는 뒤따라가서 검사 끝나고 나오는 곳에서 기다렸다. 지금도 채혈실로 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4년 넘게 아내와 다녔던 병원이라 여기저기 너무나 많은 기억이 묻어 있다. 아내가 아플 때의 기억이라 그런지 그 병원만 생각해도 마음이 아파서 다시 갈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잘 살려면 아내가 건강하고 즐거울 때의 기억만 떠올려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항암치료는 정말 고통스럽다. 수많은 항암제가 있고, 약마다 사용하는 방법과 주기, 효과, 부작용 등이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몸을 참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항암치료 부작용 중에 엄청난 구토가 있어서 더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요즘은 항암치료 때마다 거의 먹는 획기적인 구토방지제가 있어 예전보다 나아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구토가 없어도 고통스러운 것은 확실하다. 대부분의 항암제가 몸의 기운을 빼고 여기저기 아프게 한다. 머리카락이 빠지게 하는 약도 많다. 머리카락 빠지는 게 옆에 있는 사람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당사자는 상당히 괴로운 모양이다. 자고 일어나면 베개 위에 수십 개의 머리카락이 빠져 있고, 앉아 있다가 머리를 슬쩍 만질 때마다 손가락 사이에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빠져서 끼어 있으면 계속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버티다가 결국 머리카락을 밀어 버렸다. 아내와 전부터 친하던 미용실 원장에게 가서 부탁을 했다고 한다. 미용실 원장이 머리를 밀면서 울었다고 하는 걸 보면, 아무리 미용사라고 해도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가 빠지는 고객의 머리를 미는 것은 고통스러운가 보다. 머리를 밀고 나면 선택지는 2가지다. 면으로 된 두건으로 이마부터 머리 뒤까지 가리거나, 가발을 쓰게 된다. 아내도 가발을 사긴 했는데 머리가 조이는 게 아파서 대개 두건을 쓰고 다녔다. 암병원에 다니면서 두건이나 가발을 쓴 사람을 하도 많이 봐서 지나다니다가 비슷한 사람을 보면 거의 암환자라는 걸 알 수 있다. 두건은 모양이 너무나 확연해서 금방 알고, 가발은 화장기가 없고 눈썹도 별로 없어서 알아보는 것 같다. 항암치료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썹도 빠지게 하니까. 이런 사람을 볼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느껴지고 뭔가 도와줄 것이 없나 찾아보게 된다.

6개월 동안의 항암치료 후에 다행히 덩어리가 충분히 작아져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을 날짜가 정해졌다. 우리는 너무나 기뻤고 이 수술만 잘 되면 다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수술 전에 입원하고 준비를 마친 후에 수술실로 들여보내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바라보고 서 있었다. 꼭 수술 잘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수술 중에 문제가 생길 확률은 아주 적지만 혹시 모를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에는 병실로 가서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수술 끝나고 나오는 환자를 보고 의사가 바로 수술결과를 이야기해 주는 일은 없었다.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가면 보호자는 병실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수술이 끝나면 휴대폰으로 수술이 끝나 회복실로 간다는 문자가 오고 그 후로 한참 있다가 환자의 병상을 끌고 병실로 온다. 수술이 끝났다는 문자가 올 때까지 혹시 모를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도 하면서 나쁜 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2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수술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끝났다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3시간이 넘어가자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더 이상 기도를 반복하는 것도 지쳐 갔다. 내려가 봐야 하나, 현재 상태를 문의해 볼 곳은 없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결과를 알려 줄 때까지 기다리는 일 외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5시간쯤 지나고 나서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간다는 문자가 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한번 기다림의 시간이 왔다. 그래도 수술이 끝났다는 사실에 불안한 마음은 훨씬 덜한 상태로 기다렸다.

한참 후에 아내의 병상이 병실로 들어왔다. 수액과 기타 약들이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아내의 겨드랑이 부분에는 림프액을 받는 주머니도 달려 있었다. 오래 전 일이라 더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는다. 확실한 건 마취가스를 빼내기 위해 환자가 열심히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과 오른쪽 가슴 전체와 겨드랑이, 쇄골 쪽 일부를 절제했으니 아내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것뿐이다. 잠시 후에 의사가 와서 겨드랑이 부분에 종양이 많이 퍼져 있어서 수술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의사의 체력이 소진되어 쇄골 쪽의 작은 종양은 다른 의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날 의사가 여러 명을 수술했는데 수술 부위가 큰 아내를 마지막으로 해서 더 지쳤을 수도 있다.

숨을 크게 계속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아내는 숨쉴 때마다 수술 부위가 아플 것 같은데도 참고 열심히 숨을 쉬었다. 항암치료부터 수술 후까지 투병생활을 하는 내내 아내는 의사 지시를 잘 따랐다. 들어 보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어디 가서 미움받을 행동 한 번 안 하는 참 착한 사람이었다. 답답하도록 너무 착해 빠진 사람들이 암에 잘 걸린다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착한 사람에게 내가 못 되게 굴어서 그렇게 되진 않았나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5일 정도 입원 상태로 회복하게 되었고, 나는 병상 옆의 보호자 침상에서 계속 지냈다. 서너 시간마다 간호사가 와서 아내 상태를 체크하고 약을 주거나 주사액을 넣거나 했다. 병원에서 보호자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호자 침상이 딱딱하기도 하고 몸 하나 똑바로 들어가기도 빠듯한 사이즈라서 밤에 쭉 자더라도 그냥 눈을 감았다 뜬 느낌이지 피로가 풀리는 느낌은 없다. 거기에 중간에 간호사가 올 때마다 일어나니 피로가 풀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회복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힘이 났고, 제대로 씻지도 못 한 내 몰골과 피로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아내는 회복되었고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의 지시가 내려졌다. 퇴원하는 날 아침에 나는 집에 가서 깨끗하게 씻고 면도하고 단장했고 그동안 고생하신 간호사들을 위해서 동네의 좋은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사 가지고 아내를 데리러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가서 간호사들에게 드시라면서 케이크를 건네고 아내의 병실로 향했는데 뒤에서 누구냐면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출근할 때 정도로 입은 건데, 입원 기간 동안 내가 어떤 상태였길래 몰라 보는 건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가 수술을 끝내고 회복되어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들떠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니까.

수술 후에 한 가지 치료가 남아 있긴 했다. 수술 후에도 혹시 그 부위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했다. 30일 정도 거의 매일 병원에 가서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암이 끝났다는 기쁨에 그 정도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방사선이 강하기 때문에 피부 표면이 시커멓게 타는 모양이 된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크림 같은 것을 바르는데 아내가 혼자 바를 수가 없어서 나에게 발라 달라고 했다. 사실 그때 나는 처음 아내의 수술 부위를 봤고, 수술한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겨드랑이와 쇄골 부위는 약간 찢어져 수술한 표시 정도만 있었지만, 오른쪽 가슴은 완전히 잘라내서 평평한 정도를 넘어서 오히려 조금 파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크림을 발라 줬다. 옆에서 보는 사람도 아내는 자신의 몸을 보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남편에게 보여 주기도 창피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내의 몸이 어떻게 변했든 살아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아내가 죽는 날까지 언제가 살아 있음에 감사했고, 어떤 모습이 되더라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 후에는 유방암 수술한 사람을 위한 브라를 맞추러 갔다. 한쪽 가슴을 절제하면 옷을 입었을 때 너무나 표시가 나기도 하고 양쪽의 무게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어깨나 허리에 무리가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몸에 맞는 브라를 맞추고 절제한 오른쪽 가슴쪽에는 왼쪽과 크기, 무게가 비슷한 실리콘 덩어리를 넣도록 한다. 이런 형태로 수영복도 있었다. 아내가 건강했을 때는 사우나에 가서 때를 밀거나, 수영장에 가는 걸 참 좋아했다. 하지만, 수술 후에는 이런 곳에 한 번도 가지 못 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머리가 빠져 듬성듬성하거나, 머리를 밀었거나, 항암치료가 끝나 빠졌던 머리가 다시 나느라 짧은 머리를 하고 있거나, 사우나에서 뭔가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여자분이 있으면 힘든 일을 겪으셨나 보다 생각하고 이상하게 보지 말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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