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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암 선고

by romainefabula 2022. 1. 14.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그 주 토요일에 아이와 축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전날 아내가 갑자기 토요일에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보호자와 결과를 보러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 살이 많이 쪄서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리 큰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서 아내와 함께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는 병원에 같이 가자는 말을 할 때부터 심각한 표정이었던 것 같고, 병원에서는 웬만한 병이 아니고서는 보호자를 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TV 드라마에서 출연 인물들이 병원에 보호자 데리고 가는 걸 많이 봐 놓고 그때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는지 한심하기까지 하다. 사실 암에 걸리기에 아내가 너무나 젊긴 했다. 42살에 암이라니.

차례로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서 앉자 의사는 아내가 유방암 3기라고 이야기했다. 오른쪽 가슴에 작은 덩어리가 하나 있고, 겨드랑이에 꽤 긴 덩어리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유방암이라는 이야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늘이 무너져 내 어깨 위에 내려앉은 것 같이 몸이 무거웠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우리 둘은 충격을 받아서 멍한 상태에서 치료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이야기하면서 집으로 갔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이와 축구 약속이 잡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에게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이야기하면서 축구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아내를 집에 남겨 두고 아이와 학교운동장으로 축구를 하러 갔다. 몸은 축구를 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온통 아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동안에도 아내는 어디 아는 사람을 통해 어떤 병원을 가 볼까 한다는 전화가 오고, 소식을 들으신 장모님이 영지버섯과 상황버섯을 구해 보라는 등 전화가 계속 왔다. 그때 무슨 정신으로 축구를 했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공을 제대로 차긴 했으려나.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된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다음 주 월요일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아내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일은 문제없이 끝낼 것이고 아내 치료에 대해서는 이해를 바란다는 얘기를 하고 퇴근했다. 다행스럽게도 관리자가 오래전부터 친했기 때문에 무사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퇴근 후엔 진짜 암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내를 데리고 미리 찾아 놓은 큰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이동했다. 이 병원에 가기로 결정하기 전에도 아내는 여러 번 나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로 가면 좋은지, 거기에 가면 빨리 치료할 수 있는지 전화도 걸고 통화 도중에 울기도 했다. 평소에 단호하게 결정 내리기를 잘하던 나였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단호해질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저리다.

어렵게 결정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처음 갔던 병원에서 가져 온 병원기록을 제출했다. 새로 간 병원에서는 PETA 였는지 아무튼 전신 CT 같은 촬영을 다시 했고, 조직검사를 새로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미 겨드랑이로 전이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부위의 전이를 찾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암은 전이가 가장 무서우니까 일단 전신을 검사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가끔 TV에서나 주위에서 오진으로 마음고생을 하거나 실제로 수술까지 했는데 이상이 없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 걸 보면, 큰 병일 때는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확인해 보는 게 좋은 것 같다.

혹시나 오진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가져 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새로 간 병원에서도 검사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검사 결과를 놓고 치료방향을 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보통 초기 암의 경우는 바로 수술을 하고 혹시 남아 있을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방사선이나 항암치료를 하는데, 아내는 수술을 하기에 종양이 너무 커서 먼저 항암치료를 해서 종양의 크기를 줄인 후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때부터 수술 전 6개월간의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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