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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이별

by romainefabula 2022. 1. 19.

아내의 마지막이 다가오자 병원에서 편안히 있다가 떠날 수 있도록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해 가며 리스트를 뽑았고 찾아가서 병동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결국 선택한 것은 집 가까이에 있는 병원이었다. 호스피스 병상이 다 차서 자리가 없지만 일단 일반병실에 입원해 있다가 자리가 나면 옮겨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사설 구급차를 타고 집 근처의 병원으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가서 검사를 받기 시작했고 병원장이 직접 와서 현재 상태를 체크해 주었다. 검사가 끝난 후에 병실로 이동했다. 이 병원도 의사와 간호사가 따뜻하게 아내를 보살펴 주었고, 무엇보다 장점은 집에서 가까워 아이가 자주 올 수 있는 거였다. 전에 있던 병원은 멀어서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갔지만 이 병원은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아이가 갈 수 있었다. 그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이가 방문하자 몇 달 동안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밝은 표정을 지은 아내를 생각하면 아이를 자주 보는 것은 큰 행복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 사춘기가 시작되어 말수도 줄고 감정표현도 적은 아이지만 엄마가 계속 집에 오지 못 하고 아빠도 병원에 갔다가 매일 밤늦게 오니 불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암덩어리들이 상체 여기저기 순환기 계통을 막아서인지 양쪽 팔과 얼굴이 터질 듯이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나는 사무실에 당분간 출근을 못 하겠다고 알렸고, 집에서 아이를 챙기고 그 외 시간은 아내와 함께 병원에 있었다. 중간중간 장례식장, 납골당도 알아보았다. 장례식장은 사망 날짜를 알 수 없어서 예약을 불가능하고 당일에 전화를 하면 자리가 있는지 답변을 주고 옮기게 된다고 했다. 내가 알아본 장례식장은 집 앞에 있기도 하고 시설도 좋아서 가려고 했는데, 여기는 외부 상조서비스는 들어 오지 못 한다고 했다. 상조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아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납골당은 집에서 가까우면서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했다. 아내 생각이 날 때 쉽게 가려면 집에서 가까워야 했고, 개인이 운영하면 문제가 생겨 없어질 경우 다시 옮기기가 어려우니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내가 천주교 신자이니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곳을 찾으려고 했다. 가까운 곳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납골당이 있어 전화를 하니 보통 위에서 아래까지 6칸이 있는데 잘 보이는 3, 4번째 자리는 찼고 1, 2, 5, 6 번째 자리만 남았다고 했다. 집에서 1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있는 곳에 알아보니 좋은 자리가 많이 있는데 미리 위치를 정해야 한다고 해서 며칠 후에 가려고 생각해 두고 있었다.

아내가 떠나기 전에 중요한 숙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을 언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였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찾아 보고 계속 고민을 했다. 아이가 어리긴 해도 잘 설명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긴 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도 문제였고 그로 인해 아이가 받을 충격도 걱정이었다. 선뜻 결심을 못 하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가 아내의 임종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날 저녁에 거실에서 옆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많이 아파서 치료할 수가 없고 얼마 후에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했던 말을 다 기억하진 못 하지만 아빠하고 잘 살자고 이야기했을 것 같다. 아이가 무언가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진 않지만, 4년 넘게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녔지만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한 듯했다. 사실 아이가 어떻게 죽음이라는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그냥 엄마는 계속 아픈 상태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나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아이가 마음으로는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갔었는데 아이 등교를 챙기려고 계셨던 장모님이 전화하셔서 아이가 아침에 엄마 죽으면 어떻게 하냐며 울었고 설사도 했다고 하셨다. 학교 선생님에게 아내와 아이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이가 아파서 결석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날 저녁에 병원으로 가려고 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장인어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사 오라는 것이 있으니 적었다가 스타벅스에서 사서 가져 오라고 했다. 듣고 나서 워낙 신기한 주문이라 왜 갑자기 이런 걸 사 오라고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아내가 요청한 메뉴는 아래와 같다. 나는 지금도 스타벅스에서 받은 이 주문 영수증을 핸드폰 케이스에 계속 넣고 다닌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1잔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
따뜻한 두유라테 1잔
아이스 두유라테 1잔
애플주스 1병
딸기주스 1병

아이를 데리고 음료를 모두 챙기고 병원으로 갔다. 병실에 도착해서 조금 있으니까 아내가 나와 간병인을 제외하고 모든 가족들에게 가라고 했다. 가족들이 떠나고 나와 둘이 남았을 때 아내가 스케치북에 글을 썼다.

"나 오늘 죽을 거 같아"

사람들은 생활하면서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 더워서 죽을 것 같다. 추워서 죽을 것 같다.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 짜증 나서 죽을 것 같다. 하지만, 아내의 죽을 것 같다는 글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서야 아내가 이상한 커피 주문을 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커피를 참 좋아했다. 매일 커피를 달고 살았고, 카페라테를 가장 좋아하는데 우유를 먹으면 속이 안 좋아서 스타벅스가 있으면 꼭 두유 라테를 마시고 다른 곳에서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입원한 동안에 커피를 마시지 못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커피를 실컷 보기라도 하려던 모양이다. 실제로 두유 라테는 빨대로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식도가 막혔는지 라테가 입과 코로 대부분 흘러나왔다.

그 후에 아내는 앉아 있었는데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터질 듯이 퉁퉁 부은 얼굴로 누워서 무의식적으로 가쁜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고 있었다. 경험이 많은 간병인에게 이 상태로 얼마나 있을 것 같냐고 물어보니 젊은 사람은 이렇게 하루 넘게 있기도 하고 연세가 많으신 분은 몇 시간 정도 있는다고 했다. 아내가 숨이 잦아들고 있는 순간이면 당연히 슬퍼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내가 투병 생활하는 동안에도, 죽어 가는 동안에도, 죽고 나서 상을 치르는 동안에도 나에게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었다. 투병 중에는 아내를 도와야 하고, 죽어 갈 때는 사망확인서를 받고 장례식장에 전화를 한 후에 이동해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것을 준비하고, 상을 치르는 동안에는 의식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신경 쓰고 손님도 챙겨야 했다. 처음 겪어 보는 일이라서 빠뜨리거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감정에 충실할 시간이 없었다.

몇 시간 후에 간호사가 체크하더니 얼마 안 남은 것 같다고 했다. 바로 장인어른과 처형에게 전화해서 임종이 가까웠으니 오시라고 했다. 불쌍한 장모님은 손주를 챙겨야 해서 딸의 임종도 지키지 못 했다. 장인어른과 처형이 도착한 후 얼마 안 있어 아내의 숨이 멎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과 다르게 그 후로 한동안 심장은 계속 뛰었고 심박수는 점점 낮아지다가 0이 되었다. 간호사에게 가서 이야기했고 얼마 안 있어 의사가 와서 사망 판정을 내렸다. 장례식장에 전화해서 자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차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사망확인서를 10장 출력했고, 간병인에게 아내를 그동안 잘 보살펴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마지막 급여에 며칠 치를 더 넣어서 전달했다.

잠시 후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고 기사님이 와서 아내를 잘 싸서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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