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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장례

by romainefabula 2022. 1. 20.

아내가 떠났다는 사실에 슬퍼할 새도 없이 할 일이 계속 있었다. 그나마 가족들이 옆에서 도와줘서 무사히 장례절차를 끝마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장례지도사를 비롯해 화장장 예약, 장례식장 사용, 음식에 대한 각종 비용에 대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장례식장에 올려놓을 아내의 사진도 필요했다. 며칠 전에 컴퓨터를 뒤져 봤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투병생활을 하느라 정상적인 모습이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아내가 사진에 찍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장난으로라도 찍으면 화를 내곤 해서 정상적으로 찍은 사진 자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있는 사진은 아이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찍은 거라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와 놀러 갔던 어느 카페에서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아주 편안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내가 찍었을 텐데 나도 기억이 없는 사진이었다. 몇 가지 표정이 있었는데 무난한 것으로 골랐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결정이 빠졌는데 납골당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었다. 며칠 더 여유가 있을 줄 알고 결정하지 못하고 미뤄 뒀었는데 내 예상보다 아내가 빨리 떠나는 바람에 준비하지 못했었다. 새벽까지 아내의 임종을 지키고 바로 장례식장에 온 터라 납골당을 가기엔 무리가 있어서 집에 가서 1~2시간 잔 후에 장모님을 모시고 1시간 거리의 납골당으로 향했다. 상주가 장례식장을 비우면 안 되지만 아직 오전이라 연락을 받은 손님들이 오후쯤에 올 것이기 때문에 몇 시간의 여유는 있었다. 납골당에 가서 해가 아주 잘 드는 자리를 고르고 계약을 한 후에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잠을 거의 못 잔 상태라 정신이 없었는지 운전하고 돌아오는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살짝 돌아서 오긴 했다.

장례식장에 와서는 아이와 옷을 갈아 입고 상주 역할을 했다. 손님이 많이 오시진 않고 힘들까 봐 배려해서 상주와 절을 안 하는 분들도 있어서 절 하느라고 힘들진 않았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옆에 있는 방에 가서 누워 쉬기도 했다. 나는 상주로 손님맞이만 하고 장례식장에서 진행되는 식사나 기타 계약에 관련된 걸 모두 처형이 관리해 줘서 그나마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장례 문화가 바뀌어서 밤새도록 있는 손님이 없으니 12시 전에는 정리하고 잠을 잘 수가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두 번째 날에는 첫날과 비슷했지만 입관식이 있었다. 입관하는 곳으로 가기 전에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아내가 임종할 때까지 팔과 얼굴이 터질 듯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다시 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입관하기 위해 누워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았을 때 다행히 부기가 모두 빠져 건강할 때처럼 얼굴이 깔끔했다. 그때는 내가 마음이 한결 편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입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명씩 아내에게 인사하라고 해서 먼저 누워 있는 아내 곁으로 가서 이마를 만지면서 인사를 하는데 아내의 이마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부기가 빠져 반가운 마음이 사라지고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아내의 맨살을 만질 때면 항상 따뜻했는데 이렇게 차갑다니.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손에 느껴졌던 냉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입관 후에 차례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을 줬는데 내가 이별의 말을 마치는 순간 갑자기 양쪽 눈 주위에 전기가 온 것처럼 찌릿하면서 울음이 터져 버렸다. 한동안 터진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그전에도 그렇고 그 후에도 한 번도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입관식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았었는데 옆에 아이가 없어서 눌려 있던 내 감정이 폭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 앞에서는 강하고 당당한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인지 아이가 옆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세 번째 날은 화장장 예약시간에 맞춰서 새벽부터 바쁘게 떠날 준비를 했다. 버스에 타고 화장장으로 향했고 유리를 통해서 아내의 관이 들어가서 태워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 후에 유골함을 받아서 안고 버스에 다시 탄 후에 납골당으로 갔다. 납골당 직원이 안내에 따라서 유골함을 넣고 앞쪽의 뚜껑을 닫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거의 매주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아내가 좋아하던 커피를 한잔 사서 차를 타고 납골당에 가서 우리의 근황을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오곤 한다. 마음의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며 살고 있는데 그나마 납골당에 가는 것이 마음의 안정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날부터 약 50일 정도 저녁마다 아이와 앉아서 연도를 바쳤다. 처음에는 아내의 영혼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고, 보내 주기 싫었는데 그러다가 우리 때문에 아내의 영혼이 떠나지 못하고 떠돌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동안 아파서 고생했는데 헤매지 말고 천국에 가서 아프지 않고 즐겁게 지내고 있길 바랐다. 그래서, 매일 저녁마다 연도를 바치면서 착한 아내를 꼭 천국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연도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을까, 한참 기도를 하고 있는데 내 머리 옆으로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느낌이라서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그냥 끝까지 열심히 기도를 했고 그 기운은 잠시 후에 사라졌다. 나중에 생각해 봤는데 그것이 아마 아내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옆으로 와서 장난스럽게 아이와 나를 보면서 '기도를 잘하고 있네'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 말이다. 그런 느낌이 한 번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 이후로 아내를 느낄 수 있는 어떤 경험도 없다. 나는 아내가 그때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천국으로 가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내가 천국에 있고 내가 죽어서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이라도 있어야지, 죽음과 함께 모든 게 사라지고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다고 하면 너무 슬프니까. 그러니까, 천국은 꼭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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