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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서류정리

by romainefabula 2022. 1. 25.

장례가 끝나고 한동안 멍하게 지냈다. 그냥 아이 식사 챙겨 먹이고, 학교 보내고, 공부와 쉬는 시간을 챙기는 것이 제대로 정신 차리고 하는 생활의 전부였다. 아이만이 나를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이유였다. 아이가 없었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아내 잃은 남자들처럼 먹지도 않고 잠만 자다가 가끔 일어나 대충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아이가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서 같이 먹어야 했고, 점심과 저녁도 챙겨 먹어야 했고, 밤이 되면 아침에 아이를 깨우려면 제시간에 일어나기 하기 때문에 잠을 자야 했다.

아내의 육신이 세상을 떠났으니 세상에 있는 기록에서 아내가 존재를 지워야 했다. 하지만, 서류까지 정리하고 나면 진짜 아내가 사라진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에 주민센터에 사망신고를 하러 갔다. 병원에서 발급했던 사망확인서를 가져갔고,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신분증을 가져갔던 것 같다. 사망신고를 한 후에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를 신청하겠냐고 해서 신청했다. 사망자의 예금, 보험, 부동산 등의 각종 재산정보를 조회해 달라고 신청하는 건데 이후 1~2주 동안 여러 기관에서 사망자에 대해 조회한 결과를 문자로 보내 주었다. 혹시 가족을 위해 잘 모아둔 돈이 없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내가 아는 것 외에 다른 돈은 전혀 없었다.

사망신고 후에 주민등록등본을 아내 기준으로 출력하면 아내 이름 옆에 사망이라고 표시된다. 사망확인서도 그렇고 이런 등본도 그렇고 볼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서류에 사망이라고 표시된 걸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다. 납골당에 표시된 아내의 이름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외에 결혼하기 전부터 결혼 후 얼마 후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냈던 국민연금을 원금에 이자 포함해서 받았다. 혹시라도 얼마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해야 했다. 받을 돈이 몇 억이 되더라도 그런 돈보다 아내가 있는 게 더 좋을 텐데, 돈 조금 받았다고 좋아하는 걸로 보인다면 정말 억울할 테니까. 그 외에 암보험 2개가 더 있었다. 생명보험사 상품이라서 암 진단 후에 보험금을 받고 끝난 줄 알았는데 입원비를 받기 위해 연락을 했더니 사망에 대한 보장이 없는데도 위로금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얼마 안 될 것 같아 귀찮아서 2년 넘게 청구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할 것 같긴 하다.

비싸진 않지만 공동명의로 된 집이 하나 있었는데 몇 달 후에 구청 세무과에선가 전화가 와서 오늘 안에 세금을 안 내면 가산세를 몇십만원 낸다고 해서 부랴부랴 조퇴하고 가서 냈던 적이 있다. 공동명의인데 배우자가 사망하면 자동으로 상속이 되긴 하는데 싼 집이라서 상속세는 없는 것 같은데 취득세인가 하는 세금이 있는 모양이었다. 구청 직원의 설명으론 배우자 외에 자녀 등의 상속자가 있는 경우는 상속도 배우자가 모두 받을지 다른 상속자와 쪼개서 받을지 전문가(세무사였나?)에게 확인해 보고 다시 신고하라고 했다. 아마도 자녀에게 바로 상속하는 것과 나를 거쳐서 상속하는 것의 상속세 차이를 계산해서 유리한 것을 선택하라는 것 같은데, 어떤 방법이든 상속세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두었다. 사실 귀찮기도 했다.

사망신고부터 상속된 재산을 받기 위해 창구에 방문하거나 전화할 때마다 너무 불편했다.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김에 빨리 처리하려고 하루에 한두군데씩 다녔는데, 창구에 가서 앉고 사망자에 대한 신고나 청구를 한다고 하면 직원은 바로 엄숙한 표정이나 목소리로 응대했다. 물론 그런 표정 외에 나에게 다른 표정을 짓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그런 표정을 자주 보는 나도 참 힘들었다. 그날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 오늘도 끝났다'하면서 안도하면서 이런 일처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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