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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관성의 법칙

by romainefabula 2022. 2. 3.

관성의 법칙이 물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도 작용하는 것 같다. 아내가 처음 암 선고를 받은 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언가를 집중해서 생각하거나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아내를 살려야 하고, 아내가 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은 아내가 말기로 접어들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머리로는 알아서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다니고 영정사진과 납골당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아내를 살리고 싶어 했다. 이 마음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까지 이어졌다. 임종을 보고, 화장하는 과정까지 보고, 유골을 납골당에 넣고 왔는데도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듯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아내는 죽었어. 이제 그만해'라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떠난 후 1년 반 정도까지는 계속되었던 것 같다.

아내가 투병하는 동안 까치하고 보름달이 참 수고가 많았다. 까치를 보면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얘기가 있으니까, 까치에게 아내가 완치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가져다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집에서 창밖을 보거나 운전하다가 하늘을 보다가도 보름달이 보이면 항상 아내가 꼭 완치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첫 번째 수술 후에 암이 재발하고 점점 희망이 사라져 갈 때는 10년만 살게 해 달라고 빌었고, 더 안 좋아지면 아이가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살게 해 달라고 빌었고, 그보다 더 안 좋아졌을 때는 아이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4라는 숫자가 죽음을 의미한다는 이유로 이 숫자를 피하기 위해 모든 행동을 조심했다. 지하철을 탈 때도 4가 들어가는 문은 피해서 탔다. 1-4, 2-4, 3-4, 4-4, 5-4 번 문으로는 타지도 내리지도 않았다. 모든 행동을 할 때 4박자로 움직이는 것도 피했다. 설거지를 할 때에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해서 4박자로 닦는 게 편한데 5번이나 6번, 아니면 8번 닦으면서 4박자로 움직이는 걸 피했다. 양치질을 할 때도 보통 위쪽 앞니 4번, 위쪽 왼쪽 어금니 쪽 4번 이런 식으로 닦은데 일부러 여기에 한두 번 더 닦는 방법으로 4박자를 피하려고 했다. 아내가 떠나고 1년 정도 지난 후에는 4박자로 닦거나 움직이는 건 서서히 무시하면서 살게 되었다. 사실 신경 써서 세어 보면 우리 생활에서 4박자로 움직이는 게 참 많은데 그걸 피하는 게 참 힘들다. 지하철도 4가 들어가는 1-4, 2-4, 3-4 같은 문으로 타고 내리는 건 별 신경 안 쓰고 하게 되었다. 하지만, 4-4번 문은 아직도 조금 버겁다.

천주교 신자이긴 했지만 아내가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성당에 매주 가려고 노력은 했지만 띄엄띄엄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암에 걸린 후엔 1년에 한두 번 정도 빼곤 매주 성당에 갔다. 매주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께 아내를 살려 달라고 기도했고, 아이도 매주 성당에 가서 엄마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한주라도 성당에 가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불안해져서 일주일 내내 주말을 기다리다가 가장 우선순위로 성당에 갔다. 아내가 떠난 후에도 매주 아이와 성당에 갔는데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감염위험 때문에 안 가기 시작했다가 요즘은 못 가고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가야 할 텐데 그때만큼 간절하게 가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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