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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아이

by romainefabula 2022. 2. 3.

평균 생존기간이 18개월이라는 삼중음성 유방암에 걸린 아내가 4년 반 동안 살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아내가 떠나고 남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고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14년 넘게 같은 집에서 살고 매일밤 침대 옆자리에서 자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저 멀리 있어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죽은 후에 죽음이라는 것이 바로 내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마음먹고 문 하나만 열면 바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말이다. 아이는 이런 나를 뒤에서 꼭 붙들고 못 가게 하는 존재이다. 아내가 투병 중에도 열심히 먹이고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아이니까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최대한 메우기 위해 열심히 먹이고 신경 쓰고 챙길 수밖에 없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자리 잡을 때까지 엄마가 해 줘야 하는 일들을 내가 해내야 한다. 이것이 아내가 나에게 남기고 간 의무이고, 내 남은 생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다.

아이는 엄마가 아플 때부터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딱 한 번만 울었다. 엄마가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 다음날 아침에 운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내가 떠나고 2년 정도 매주말에 엄마의 납골당에 가자고 할 때마다 싫다는 소리 없이 따라 나서는 걸 보면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 같긴 한데 일부러 물어보진 않았다.

딱 한 번 우연히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걸 알게 된 일이 있긴 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아내의 핸드폰을 살려 두고 요금을 계속 내고 있었다. 가끔씩 광고문자나 뒤늦게 아내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이 보내는 문자들이 오곤 했다. 아내가 없어 적적한 집에 문자가 올 때마다 소리가 나는 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문자가 왔나 내가 아내의 핸드폰에 온 문자들을 확인하다가 엄마가 죽고 4개월 정도 지난날 밤에 아이가 엄마 핸드폰에 보낸 문자를 발견했다.

"엄마 사랑해요. 오늘 꿈에서 나와주세요"

이 문자를 보고 가슴이 무너졌다.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으면 꿈에 나와 달라고 했을까? 이 일 이후로는 당연히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하고 지내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보통 아이를 키울 때는 부부가 서로 상의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방향을 정하고 분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홀로 결정하고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내 생애 처음으로 아이를 키우는 거라 서툴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 말수가 적어져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를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시로 실없는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물론 대답으로 돌아오는 말은 아주 적다. 그나마 대답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예전 드라마를 보면 홀아비가 된 사람들이 아이를 키울 사람이 필요해서 재혼하는 일이 많았다. 나는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식도 힘든데 남의 자식을 키울 자신이 전혀 없다. 그런데, 내 자식을 남에게 키워 달라고 맡기는 건 말이 안 된다. 최대한 내가 아이를 챙기려고 노력하고, 내가 아이를 챙길 수 없을 때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장모님이 도와 주신다.

아이도 다른 사람이 키우는 건 전혀 원하지 않는 눈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계모나 양엄마가 아이를 학대하고 죽이는 일이 많았다. 이런 뉴스가 TV에서 나올 때마다 아이는 신경질적으로 TV 리모컨을 집어 들어 채널을 돌리곤 했다. 사춘기가 되면서 키가 훌쩍 커 버린 아이를 누가 학대하겠냐마는, 나도 재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어서 둘의 마음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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